일단 멈춰선 돌풍…프랑스 극우, 의회 1당의 꿈 문턱서 좌절
르펜 "승리 늦춰진 것일 뿐…극우 물결는 계속 높아질 것"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프랑스 극우 정당이 권력의 문 앞에서 또다시 좌절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를 통해 강렬한 존재감을 각인, 2022년 총선 때보다 의회 내 몸집을 키우면서 확실한 주류 정치 세력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는 평가도 있다.
프랑스의 대표 극우 정치인 마린 르펜이 이끄는 국민연합(RN)은 지난달 9일 치러진 유럽의회 선거에서 31.5% 득표로 압승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극우의 약진에 놀란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극우의 상승세를 꺾기 위해 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조기 총선을 결정하는 극약처방식 정치적 모험을 감행했다.
RN의 상승세는 지난달 30일 1차 투표에서도 입증됐다.
당시 RN은 33.2% 득표로 1위를 차지해 창당 52년 만에 처음으로 의회 권력을 쥘 가능성을 키웠다. 잘하면 절대 과반을 차지해 정부 운영에 참여할 수 있다는 기대감까지 새어 나왔다.
RN은 2차 투표를 앞두고 좌파 연합과 범여권이 대거 후보 단일화를 한 상황에서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줄곧 1위로 예측됐다. 다만 의석수는 1차 투표 결과 당시 예상치보다는 떨어지긴 했다.
마린 르펜 의원은 두 반대 진영의 정치적 야합을 비판하면서 RN이 절대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면 정부를 운영할 수 없다며 유권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했다.
그러나 프랑스 민심은 다시 한번 프랑스 정치에 극우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던졌다.
RN은 절대 과반 의석 확보의 꿈이 좌절된 데서 나아가 지지율 1위에서 3위로 떨어졌다.
그나마 의석수가 2022년 총선으로 얻은 89석에서 140석 이상으로 늘어난 건 고무적인 결과다.
1·2위를 차지한 좌파 연합과 범여권의 의석수에 비춰도 크게 밀리지 않는 규모다. 전통적인 우파인 공화당 의석수(40여석)보다는 3배가량 많다.
프랑스 정치권에서 극우 정당이 명실상부한 주류 세력이 됐다는 걸 방증한다고 볼 수 있다.
르펜 의원도 이날의 결과에 대해 "우리 승리는 늦춰졌을 뿐"이라며 "의석수를 늘렸으니 실망할 것 없다"고 긍정적으로 해석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과 극좌의 부자연스러운 동맹이 아니었다면 RN이 절대 과반이었을 것"이라며 "(극우의) 조수는 계속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총선에서 승리할 경우 차기 총리로 유력하게 꼽힌 조르당 바르델라 RN 대표도 "불명예스러운 동맹이 프랑스를 극좌의 품에 던지고 있다"며 두 진영의 연대를 비판했다.
르펜 의원의 말대로 이번 총선에서 NFP와 범여권의 반극우 연대가 성사되지 못했다면 선거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높다.
1972년 창당한 극우 정당은 반(反)이민, 민족주의, 반EU 정책 노선 탓에 한동안 주류 정치권에 끼지 못했다.
특히 나치의 통치를 받은 뼈아픈 역사를 안고 있기에 프랑스인들은 극우의 부상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그러나 르펜 의원이 2011년 부친 장마리 르펜에 이어 당 대표에 오른 뒤 '탈(脫)악마화' 전략을 펴면서 급진적 이미지를 상당 부분 완화했다.
당내 반유대주의나 인종차별 발언을 통제하고, EU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탈퇴를 요구한 과거 극단적인 노선에서도 벗어나며 외연 확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당 정책에도 변화를 꾀했다. 세금 감면, 복지 확대, 프랑스 경제 보호 등 포퓰리즘적 정책을 내세워 중산층과 노동 계층의 지지를 끌어 올렸다.
또 반이민 기조를 유지하면서도 이를 인종차별적 접근이 아닌 국가 안보, 국가 정체성 보호 차원으로 포장해 중도층에 접근했다.
RN의 이런 노선은 특히 2015년 파리 테러 등으로 사회 불안이 커지면서 더 지지받게 됐다.
RN의 'EU 회의론'도 과도한 EU 차원의 규제나 시장 개방에 불만을 품은 농민 표심을 얻는 데 효력을 발휘했다.
이런 변화에 힘입어 RN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올라갔다.
마린 르펜은 2012년 대선 1차 투표에서 17.9%를 얻는 데 그쳐 결선에 진출하지 못했으나 5년 뒤인 2017년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겨룬 대선에선 결선까지 진출해 33.9%를 얻었다.
2022년 마크롱 대통령과의 재대결에선 결선에서 41.5%를 얻어 격차를 더 좁혔다.
RN은 소셜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젊은 층의 지지세도 확보했다.
특히 28세의 젊은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가 젊은 감각과 깔끔한 외모, 세련된 태도 등으로 SNS상에서 자신의 노출을 극대화해 '극우=꼴보수'란 이미지를 희석했다.
르펜 의원은 2027년 대선에선 반드시 권력을 잡겠다고 벼르고 있다. 의석수 확대를 발판으로 반이민 등 노선을 의회에서 더 세게 밀어붙일 것으로 보인다 .
그동안 RN의 지지세가 상승세를 탄 점을 감안하면 3년 뒤 집권 가능성도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지만, 이번 총선에서 의회 1당을 장악, 확고한 대선 승리의 교두보를 마련하겠다는 전략에는 일단 차질이 빚어진 측면도 없지 않다는 관측이다. 여기에 이번 결선 투표 과정에서 파괴력을 입증한 반극우 연대 세력의 결집력도 변수로 꼽힌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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