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돌려놔”… 멍든 가슴 뻥 뚫는 치유의 목소리[주철환의 음악동네]

2024. 7. 8.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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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골 약국에 오십 년 경력의 베테랑 약사가 근무한다.

어느 날 아내가 외출 중 눈 주위를 부딪는 사고를 당했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 아가씨'(이미자 1964)가 올해 환갑을 맞았고 '소양강 처녀'(김태희 1970)도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중략)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애를 태운 지 반세기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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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철환의 음악동네 - 김현정 ‘멍’

단골 약국에 오십 년 경력의 베테랑 약사가 근무한다. 어느 날 아내가 외출 중 눈 주위를 부딪는 사고를 당했다. 시퍼렇게 멍이 들어서 약국을 찾았는데 그분 표정이 심상치 않더란다. 그럴싸 그러한지 그날 이후 길에서 만난 약사 할머니의 눈길이 왠지 편안하지 않다. “제가 때린 거 아니거든요.”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해명할 수도 없고 약국을 지날 때마다 뭔가 거북했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음악동네에도 멍든 사람이 많다. 대부분 가슴에 멍이 들었는데 그 역사 또한 유구하다.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 아가씨’(이미자 1964)가 올해 환갑을 맞았고 ‘소양강 처녀’(김태희 1970)도 ‘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중략)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애를 태운 지 반세기를 넘겼다. 하지만 지금 소개하려는 이 사람에 비하면 둘 다 갓난아기에 불과하다.

‘어디다 던지는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는 돌인가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우노라’.(고려가요 ‘청산별곡’) 작중 화자는 시대를 잘못 만난 사람이지만 무심코 아니 무작정 돌 던지는 사람은 연대를 초월해 존재한다. ‘누구야 누가 또 생각 없이 돌을 던지느냐 무심코 당신은 던졌다지만 내 가슴은 멍이 들었네’.(오은주 ‘돌팔매’ 1990) 그래도 이 사람 끝까지 할 말은 다 한다. ‘당신이 내 인생에 무엇이길래 당신이 내 앞길에 무엇이길래 (중략) 당신은 내 인생의 방관자면서 당신은 내 인생의 제삼자면서’ 그러나 그뿐이다. 상대에게 ‘내 가슴을 울리는 사람’이라 원망할 뿐 스스로 ‘하소연할 곳 없이’ 서러운 사람으로 규정짓고 체념할 뿐이다.

멍들어도 멍하니 바라만 보는 사람이 많다면 세상은 활력을 잃을 것이다. ‘돌팔매’로부터 10년 후(2000) 이 노래가 나타나면서 드디어 항쟁이 시작된다. ‘너 나를 쉽게 봤어 그렇지 않니 너는 몰라 너무 몰라 사랑을 안돼 니 맘대로 나를 떠날 수 없어 끝낸다면 내가 끝내 기억해’.(김현정 ‘멍’)

노래 속에 멍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등장하진 않지만 노래 곳곳에 주고받은 멍 자국이 선연하다. ‘잘못이었어 너를 만난 건 너는 사랑 따윈 관심도 없던 거야 다만 넌 니 뜻대로 모두 맞춰줄 너 하나밖에 모르는 내가 필요했을 뿐’ 자각과 성찰 후에는 보상과 요구가 뒤따른다. ‘다 돌려놔 너를 만나기 전에 내 모습으로 추억으로 돌리기엔 내 상처가 너무 커’ 그리고 이렇게 도장을 콱 찍어버린다. ‘바랄게 다음번에 너 누굴 사랑한다면 너 같은 사람 꼭 만나기를’ 원곡 가수 김현정은 시원시원한 가창과 율동으로 멍든 사람들의 소염진통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때마침 6인조 아이콘(iKON)의 메인보컬 구준회가 솔로 미니앨범(2024년 7월)을 냈는데 우연찮게도 타이틀이 ‘멍’이다. 원래 멍은 먹(먹물)에서 유래했다. 정밀한 시선으로 보면 ‘상처와 치유’(김치수 평론집 제목)를 모두 보듬고 있는 단어다. 누가 때려서 든 살갗 속의 멍은 시간이 지나면 차츰 사라지지만 맞아서 생긴 가슴 속의 멍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다.

‘하루에도 몇 번씩 아파 내 멍든 가슴은 온통 너로 가득 차’.(이승철 ‘사랑 참 어렵다’) 이렇게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것을 ‘저장 강박’이라고 한다. 마음속에 원한을 쌓아두면 결국 그 멍이 멍에가 된다. 근래에 멍 때리기가 유행인데 잘 생각해 보라. 누구를 때려서 멍들게 하는 사람보다 스스로 멍을 때려서 본연의 자아를 되찾는 것이 슬기로운 삶 아닐까. 작가

프로듀서·노래채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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