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딥페이크 사건 범인 추적한 원은지 "니들은 다 잡혀"

문영훈 기자 2024. 7. 8.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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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0일, 2년간의 추적 끝에 범인이 잡혔다. 서울대생을 비롯한 60여 명을 대상으로 딥페이크 음란물을 만들고 유포한 혐의다. “나 잡으려고 텔레그램 가입했어?”라고 피해자들을 조롱하던 범인을 끝까지 추적해 경찰에 넘긴 ‘불꽃’의 원은지 씨를 만났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 착취 범인 밝혀낸 불꽃 원은지
2020년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텔레그램 아동·청소년 성 착취 사건의 끔찍한 실태가 드러난 뒤, 디지털 성범죄는 잊을 만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변주돼 우리를 찾아온다. 2022년, 호주 시드니에서 검거된 '엘’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도와주겠다며 접근해 성 착취물을 제작하는 등 피해자 가슴에 다시 한번 칼을 꽂았다. 5월에는 '서울대 딥페이크 성 착취 범죄’의 주범 박 모 씨가 지인 대상 딥페이크 합성물을 만들어 피해자를 협박하고 희롱한 혐의로 체포됐다.

이 모든 사건에 원은지 씨의 활동명 '불꽃’(구 '추적단 불꽃’)이 함께했다. 하루 5시간 끔찍한 사진과 영상이 업로드되는 텔레그램 대화방을 모니터링해 문형욱과 조주빈의 악행을 세상에 알리고, 자신을 사칭한 성 착취 범죄자에게 '엘’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추적했다. 서울대 딥페이크 성 착취 사건에서도 원 씨는 혁혁한 역할을 수행했다. 2년 전 피해자 제보를 받고 주범 박 씨와의 접촉에 성공한 그는 오프라인으로 박 씨를 유인해 법정에 서게 만들었다. 경찰은 박 씨가 100여 건의 음란물을 제작하고 1700여 건을 유포했다고 보고 있다. 박 씨 외에도 주범 강 모 씨와 공범 3명에 대한 수사가 진행 중이다.

6월 11일 만난 원은지 씨는 미디어 플랫폼 '얼룩소’에서 에디터 생활을 마치고 저널리스트로서의 새로운 발돋움을 준비 중이었다. 그는 "딥페이크 성범죄의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며 "그래도 피해자들의 노력으로 범인이 잡혀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2년간의 끈질긴 노력

3월 15일 오후 11시 서울대입구역 인근으로 속옷을 찾으러 나타난 범인.
서울대 딥페이크 성 착취 사건을 어떻게 뒤쫓게 됐나요.
2022년 7월 중순 처음 피해자로부터 제보가 왔어요. 그리고 다수의 피해자가 관할 경찰서에 피해를 신고했는데 사건 조사가 제대로 진행이 안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당시엔 단서를 찾지 못해 수사는 종결됐죠.

텔레그램의 특성 때문인가요.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죠. 피해자들은 각자 체념하고 있었는데, 동창회에서 한 명이 피해를 고백한 덕분에 피해 입은 사람이 여럿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사건을 모아 서울경찰청에 다시 신고했고, 사건은 관악경찰서로 배당됐어요. 관악서에서는 피해자들에게 함께 용의자를 찾아주면 좋겠다고 했대요.

왜 피해자가 용의자를 찾나요.
인물 특정이 돼야 강제 수사가 가능하다는 거죠. 그래서 피해자들이 모여 SNS 팔로 목록을 맞춰보고 함께 알고 있는 공통된 사람을 찾기 시작했어요. 딥페이크로 조작한 사진이나 영상 원본을 언제, 어디서 게시했는지 추적해 한 명을 특정했죠.

하지만 경찰은 지목된 서울대 졸업생 한 모 씨에 대해 혐의 없음 결론을 내렸고, 그는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피해자들은 서울중앙지검에 이의신청을, 서울고검에 항고를 제기했지만 기각됐다. 다시 서울고등법원에 재정신청을 했고 지난해 11월 21일 인용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한 씨와 별개로 다른 범인을 잡기 위한 피해자들의 노력은 계속됐다. 피해자는 언론사 인터뷰에 나서기도 했고, 온라인에 피해 사실을 연재하며 관심을 모았다. 지난해 12월 국가수사본부(국수본)에서 재수사 지시를 내리며 본격적인 수사가 다시 진행됐다.

그동안 주범과 연락을 계속했다고요.
2022년 제보를 받은 후 범인과 텔레그램으로 대화를 시작했어요. 그와 대화하다 보면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 같았죠. 범인은 자위하는 영상을 보내기도 했는데 손이나 주변 배경 등을 보고 그를 특정할 수 있는 정보를 수집했어요. 한동안 대화를 하지 않다가 서울경찰청에서 재수사가 시작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대화를 시작했어요. 윗선 지시로 수사가 시작되면 성과가 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거든요. 안도감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피해자가 애타게 도와달라고 할 때는 신경 쓰지도 않다가 국수본 지시로 제대로 된 수사가 시작된다는 사실에 허탈감이 들었어요.

어떻게 범인과 라포르를 쌓았나요.
서울대를 졸업한 미모의 아내를 가진 30대 남성 페르소나를 만들었어요. 범인도 서울대생을 대상으로 능욕을 한 거니까 저도 마치 그 코드를 공유하고 있는 것 같은 인물을 상정했죠.

가상의 아내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겠네요.
범인은 아내의 취미나 직업, 직장 위치나 자주 가는 카페 등 다양한 질문을 했어요. 본인이 몰래 아내를 훔쳐보고 오겠다는 말도 했고요. 그러면서 저에게 본인이 얼마나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지, 얼마나 흥분을 했는지를 보여주기도 했어요. 그러다 3월 중순쯤 아내 속옷 사진을 보여줄 수 있느냐고 물어서 사진을 보냈는데 그걸 자신에게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해주면 이를 통해 범인을 오프라인으로 나오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수사관에게 이 내용을 전달했어요.

그렇게 잡힌 건가요.
첫 번째와 두 번째 거래에서 이 사람의 신상 정보와 행적을 파악했어요. 그리고 영장이 나온 뒤, 팬티를 가지러 온 그가 체포됐죠. 수사관이 이 사람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텔레그램으로 메시지를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고, 수사관이 맞다고 알려줬어요.

범인을 놓칠 뻔한 일도 있었다고요.
수사관이 수사 과정에서 우연히 범인과 대화할 수 있는 텔레그램 방에 들어갔어요. 하지만 거긴 아무나 들어갈 수 없거든요. 수사관이 제게 전화해서, 저를 통해 링크를 전달받게 됐다고 전달해달라 부탁했어요. 하지만 범인은 의심했는지 저와 수사관 모두를 차단했어요. 다행히 저는 범인의 부계정 아이디를 알고 있었고 그 계정을 통해 추후 다시 연락할 수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범인이 잡히지 못할 뻔했네요. 대화는 힘들지 않았나요.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잡으려는 마음만 있으면 못 할 게 뭐 있나 싶기도 했고요. 사실 범인과 대화하다 보면 몸과 마음이 힘들기도 해요. 그래서 멘털 관리도 열심히 했어요. 낮에는 제 본래 일도 있으니 범인에게 밤 11시 이후에만 대화할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죠. 그럼에도 그 시간이 안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한 적도 있고, 대화가 2시간 이상 길어지면 힘들었어요. 그만둬야 하나 생각하면서 동시에 조금만 더 대화하면 정보를 더욱 많이 캘 수 있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놈이 무방비 상태처럼 보이는 순간도 있었고요. 순간순간 저 자신과 싸운 것 같아요.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웃음). 그런데 제가 안 하면 아무도 안 하니까요. 제보를 해주신 분들은 평생 불안에 떨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제보를 받고 피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간을 함께 보냈어요. 힘든 일이 생기면 서로 위로도 하고요. 그래서 외면할 수가 없었어요. 언제든 제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또 오기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국가가 제대로 피해자를 도와주지 않으니 '내가 해서 보여줄게’ 하는 마음이죠.

그러면서도 범인을 잡은 공을 피해자들에게 돌렸습니다.
피해자들은 범죄를 잊고 살 수도 있었죠. 그게 더 편한 분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피해자들은 자신 말고도 피해자가 계속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래서 본인이 할 수 있는 걸 다 했어요. 인터뷰를 하기도 하고, 피해 사실을 글로 써서 밝히기도 하고, 법적으로는 항고와 재정신청을 하기도 했죠. 그들이 함께하기에 제가 계속 범인을 추적할 수 있었어요.

망치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놈들

‘서울대 딥페이크 성 착취’ 사건의 주범 박 모 씨가 체포됐다.
‘서울대판 N번방’으로 불리는 것에 반대한다고요.
N번방 사건과 이번 사건은 텔레그램을 통해 벌어진 디지털 성범죄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범죄의 양태는 달라요. N번방 사건은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반면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성인이었죠. N번방에선 강제로 피해자가 사진과 영상을 촬영하게 하는 학대와 협박 과정이 있었죠. 딥페이크 사건의 피해자는 일상에서 어느 날 갑자기 피해자가 됐죠. 피해자 중 한 사람은 아이맥스 티켓을 구하려고 텔레그램을 깔았다가 피의자로부터 메시지를 받기 시작했어요.

새로운 방식의 범죄라는 거네요.
현재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디지털 성범죄 사건의 경우 시·도청 단위의 수사 기구가 있어요. 하지만 딥페이크나 불법 합성물 성범죄의 피해자가 성인인 경우 형량 자체가 낮다 보니 일선 경찰서에서 맡게 됩니다. 수사 스킬이나 인식 면에서 큰 차이가 나요. 관련 수사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사건이 배당되기도 하고요. 디지털 성범죄의 다양한 양태부터 파악하고 여기에 맞는 수사 능력을 길러서 대응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부르는 게 좋을까요.
‘서울대 딥페이크 성 착취 사건’이라고 부르면 좋겠어요. 가해자들은 딥페이크 사진과 영상이 피해자에게 어떤 공포심을 유발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성 착취라는 면에서는 N번방 사건과 유사하죠.

딥페이크 성범죄의 범인을 찾기 힘든가요.
그럼에도 수사 기관이 열심히 수사를 하면 됩니다. 예컨대 이런 거예요. 피해자들이 이 사건을 신고하러 가면 "텔레그램은 해외에 서버가 있어서 못 잡아요" "영장 요청해도 언제 답변 올지 몰라요" 같은 이야기를 먼저 듣습니다. 하지만 이런 말이 2차 피해의 시작이 돼요. 피해자들에겐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피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주고 수사를 열심히 하겠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필요해요. 만나본 피해자 중엔 수사 상황만 잘 공유해주고 수사가 진척이 없더라도 그 이유만 잘 말해줬으면 괜찮았을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경찰 처지에서는 인력이 부족하다고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 인력도 부족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이해도나 심각성에 대한 공감이 떨어지는 경우도 많아요.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디지털 성범죄는 기술 발전과 함께 진화해요. 불법 촬영물과 성 착취물을 도박 사이트로 이용하는 대가로 제공하는 일은 더 기승을 부리고요. 가해자는 해외에 서버를 두고 있어 특정하기도 어렵죠. 그럼에도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돼야 해요. 대통령이 '마약과의 전쟁’을 선언한 것처럼 '디지털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면 좀 상황이 나아질까요.

최근 디지털 성범죄의 양상을 보면 피해자의 범위가 더 확장되고 있습니다.
특히 딥페이크를 이용한 성범죄의 경우 누구나 다 피해자가 될 수 있어요. 심지어는 피해자라는 사실조차 모를 수도 있고요. 가장 무서운 특성이죠.

2년간 범인을 추적해오면서 두렵지는 않았나요.
자신을 서울대생이라고 속이고 사실은 거대 범죄 집단에 속한 사람일까 봐 두려웠어요. 어쨌든 피해자 주변 인물이었다는 게 드러났고, 그 사람이 현재는 구속돼 마음이 편해졌죠. 피해자분들도 사실은 실체가 없는 사람에게 테러를 당한 셈이라 그 부분을 가장 힘들어했어요. 지금은 적어도 누가 자기에게 그런 일을 했는지 알게 된 거죠. 왜 그랬는지에 대해선 재판 과정에서 밝혀질 일이죠.

왜 범인은 이런 범죄를 저질렀을까요.
일단 잡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거고요. 또 텔레그램 대화방 이름을 이렇게 만들어요. 예컨대 '원은지 인생 조지기’ '원은지 인생 X창 내기’ 같은 거죠. 그러니까 피해자의 인생을 본인이 망칠 수 있다는 희열을 즐기는 거예요. 심지어는 범죄라는 인식조차 없는 경우도 있어요.

"피해자와의 연대로 고통 이겨낸다"

원 씨는 피해자를 돕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 활동가 역할을 하면서 세상에 이를 알리는 저널리스트로서의 삶을 오갔다. 그는 "이번 사건 재판을 계속 지켜보면서 기사를 쓸 예정"이라며 "앞으로도 계속 쓰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했다.

왜 계속 쓰려고 하시나요.
범인을 잡기 어려운 딥페이크 범죄의 특성상 재판까지 가는 일이 적어요. 다른 피해자분들에게도 이 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알려드리고 싶어요. 주범이 당당하게 본인은 절대 잡히지 않을 거라고 이야기하다가 첫 재판에서는 벌벌 떨기도 했거든요. 그의 행동이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하나하나 기록을 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저널리스트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신가요.지금 당장은 딥페이크 성 착취 범죄 피해자분들의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그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취재를 이어나갈 예정이고요. 앞으로는 여성·젠더 분야를 넘어 정치와 경제 분야의 글도 써보고 싶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가 있나요.
N번방 사건 피해자 어머님을 인터뷰했던 기사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사건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이후에 피해자나 그 가족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많지 않았거든요. 피해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일부 여론도 있었고요. 사건이 어떤 식으로든 일단락된 후 이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했고, 그 이야기를 사회에 들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피해자 어머니와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그분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한마디 때문에 취재를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정말 뿌듯했겠네요.
힘들지만 저는 어쨌든 혼자 일하는 게 아니라 피해자분들이랑 소통하면서 일하잖아요. 그래서 서로 안부를 묻고 힘든 점은 지지해주고 같이 화도 내죠. 그러면서 범죄를 추적하며 생기는 우울한 감정도 덜어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주범이 검거되고 피해자를 만났을 때 1년 만에 처음 보는 밝은 표정이었어요. 다음 주에 여행 간다고 하면서 "이제는 좀 쉴 수 있겠다"고 말했는데, 그때의 뿌듯함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마지막으로 범죄자들과 수사 당국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범죄자들에게는 "그래봤자, 너는 잡힌다. 네가 안 잡힐 것 같아?"라고 해주고 싶어요. 또 수사 기관엔 피해자에게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이를 꼭 지키라고 말하고 싶어요.

#원은지 #불꽃 #딥페이크 #텔레그램성착취 #여성동아

사진 홍태식 뉴스1 
사진제공 서울경찰청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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