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속 살벌한 학원가 우리 얘기, 살아남으려면…" 고백 [대치동 이야기⑬]
성공하는 학원이 지닌 세 가지 공통점
스타 강사·똑똑한 학생·참신한 콘텐츠
'중3' 대신 '예비 고1'이란 단어 통해
명문대 노리는 학생들 긴장감 자극
※ 한국경제신문과 한경닷컴은 매주 월요일 대치동 교육 현실의 일단을 들여다보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지난 7일 대치동에서 만난 한 학원 입시전략소장은 “최근 히트한 tvN 드라마 ‘졸업’ 속 살벌한 학원가의 모습이 여기선 결코 과장이 아니다"라며 입을 열었다. “학원마다 살아남기 위해 쉴 틈 없이 경쟁하는 곳이 대치동이예요. 여기서 한 번 이름을 알리면 경기 분당·평촌 학원가에 진출하는 건 따 놓은 당상이지요. 학령인구가 줄어들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그런 대치동에서도 요즘 가장 경쟁이 치열한 곳은 중등 학원들이다. ‘2028 대입개편안’이 올해중 3 학생들부터 적용되기 때문이다.
중등 학원은 '스타강사'의 데뷔 무대
요즘 대치동 중등 학원들 사이에선 “삼박자가 맞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중등 사교육은 고등학생·재수생을 대상으로한 대입 입시 시장보다 인터넷 강의가 덜 활성화했다.
학원과 강사 입장에서는 대입 학원보다 비교적 진입 장벽이 낮은 편이란 얘기다. 실제로 젊은 대치동 ‘스타’ 학원 강사들 중에는 유명 중등 학원에서 경력을 시작하는 사람이 많다.
요즘 대치동 학원장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는 강사는 ‘교사 출신’ 강사다. EBS 수능 강사로 출연하는 학교 선생에게 대치동 학원이 러브콜을 보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결국 시험 문제는 학교 선생들이 출제하는 점을 감안하면, 공교육 생태계를 경험해봤던 강사가 사교육 시장에서도 활약할 공산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실제로 한티역, 대치역 주변 학원 앞에서는 ‘전)휘문고 교사’, ‘전)세화여중 교사’ 등의 홍보 문구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학원 원장은 보통 시강(시범강의)을 통해 강사를 발탁한다. 더 우수한 강사를 확보하기 위해 계약 체계도 손본다.
대치동에서는 비율제로 강사의 임금을 책정하는 경우가 많다. 학원과 강사가 학생수에 따라 발생한 매출을 나눠 갖는 식이다.
대체로 강사와 학원이 5대5로 시작해, 강사의 능력에 따라 6대4, 7대3까지 비율을 조정한다. 여러 학원에 출강하는 스타강사는 8대2로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
‘레테’가 어려워지는 진짜 이유
두 번째는 ‘레테(레벨테스트)’ 경쟁력이다. 전국 단위의 연합학력평가를 치르지 않는 중학생에겐 학원 레테가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늠자다.
요즘 대치동 학원들은 유행처럼 입학시험 혹은 반 재배정 시험을 매우 어렵게 출제한다. 이유는 단순하다.
똑똑한 아이를 다른 학원보다 먼저 알아보고, 데려오기 위해서다. 학원 원장의 입꼬리를 올라가게 하는 소문 중 "○○중 전교 1등이 이 학원 다닌다며?"를 능가하는 건 없다.
중등 사교육 시장에서 대세가 된 ‘선행 n회 반복’ 역시 어려운 레테를 통과한 우수한 학생만 따라갈수 있다. 레테가 어려우면 학생의 학원에 대한 자부심도 커진다.
이 영향으로 지금 대치동에서는 레테가 어려운 학원들이 선호되는 분위기가 있다. 영어의 경우 최선·삼보·선경·kns·함영원 등이 유명하다. 이들은 문법 수업에 주력하는 경향이 짙다.
수학은 생각하는황소·깊은생각·원수학·이든수학·생각하는수학(생수)·돌파수학의 레테가 어렵다. 국어의 경우 지니국어, 안보라국어 등이 유명하다. 레테는 따로 없지만 원장이 세화고·세화여중 국어교사 출신으로 알려진 산김영준 학원도 잘 알려져 있다.
대치동에 '중3'은 없다
중등 사교육 시장은 고등학교에 비해 학원 산업을 주도한다는 느낌은 덜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등학생보다 중학생이 비교적 여유 있는 건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종 목표는 SKY에 가는 것이지, 명문 고등학교에 진학하는 게 아니다. 대치동에는 외고 등 특목고·자사고보다 서울대를 더 많이 보내는 일반고도 존재하기에 유명 중등 학원에 목매진 않는다.
대신 수능의 밑거름을 일찍 쌓기 위해 노력한다. 대치동 학원가가 전략적으로 '중등'이라는 말을 버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치동 학원들은 중3이라는 단어보다, '예비 고1'이라는 단어를 선호한다. '곧 고등학생이 되니 진짜로 공부해야 한다'는 경고 메시지를 '예비'라는 말 한마디로 쉽게 전달할 수 있다.
'콘텐츠'가 곧 학원 경쟁력
끝으로 '정보 경쟁력'이 있다. 현재 중학생들은 2028 대입 개편안에 따라 지금의 입시와는 다른 입학 전형을 경험하게 된다. 이에 따라 대치동 중등 학원들은 입시전략가, 분석가를 따로 고용해 바뀔 대입 개편안을 다각도로 분석하게끔 한다. 입시설명회를 통해 이 내용을 주기적으로 알려 학부모에게 눈도장을 받는다.
15년 차 대치동 국어 강사 강동훈 씨는 "요즘엔 특정 과목만 잘 가르쳐서는 대치동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며 "바뀌는 입시 제도를 꼼꼼히 숙지하고, 나름대로 해석해서 전략까지 짤 수 있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중등 대상 대치동 유명 학원들이 쓰는 교재는 대부분 ‘자체교재’다. 여기엔 강사가 손수 만든 문제, 시중의 문제집을 전부 풀어보고 엄선한 편집본, 대치중·대청중·단대부중 등 이 일대 명문 중학교들의 기출 문제를 분석한 응용문제들이 담겨있다. 학부모들은 여기에 혹한다. 이 학원에 다니지 않으면, 이들의 성공 노하우가 오롯이 담긴 자체교재는 영영 못 보게 될 것만 같아서다.
동시에 학원 경영실에서는 방학 특강 시간표를 짜고, 중간·기말고사 내신 대비를 위해 한시적으로 반을 재배정한다. 시험 기간이 되면 학원은 학생들보다 더 자주 학교의 기출 문제를 들여다보고, 응용문제를 연구한다. 이 과정을 누가 더 빨리, 정확하게 해내느냐에 대치동 중등 학원가의 성패가 달려 있다.
정부의 사교육비 대책에도 사교육비는 매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습니다. 사교육을 받은 학생들과 그렇지 않은 학생 사이의 격차도 심화하고 있습니다. 다들 사교육이 문제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뭐가 문제일까요. 한국경제신문·한경닷컴은 사교육으로 대표되는 대치동의 속살을 살짝 들여다볼 수 있는 '대치동 이야기' 시리즈를 기획해 매주 월요일 게재합니다. 대치동을 긍정적으로만 평가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시스템을 모르면 한국 교육의 업그레이드도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대치동이 어디인지, 대치동의 왕좌는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그 안에서 살아가는 학생, 학부모, 강사들의 삶은 어떤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대치동 이야기를 써 내려갑니다. 아래 기자 페이지를 구독하거나 포털에서 [대치동 이야기]로 검색하면 더 많은 교육 기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김영리 한경닷컴 기자 smart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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