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 1당 저지' 마크롱 기사회생…조기총선 도박 '절반의 성공'
동거 정부 탄생 시 개혁 동력 약화 불가피…정부 구성 관건
(파리=연합뉴스) 송진원 특파원 = 7일(현지시간) 치러진 프랑스 총선 결선 투표 결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바람대로 극우 정당의 의회 1당 장악을 막아냈고 3위에 그칠 것이라는 그간 여론조사와 달리 범여권이 2위를 차지, 의회 소수당으로 전락하는 상황은 모면했다.
지난달 9일 종료된 유럽의회 선거에서 극우정당에 참패, 충격파 속에서 꺼내든 의회 해산·조기 총선이라는 '위험한 도박'이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1차 투표에서 1위를 차지하며 기염을 토했던 마린 르펜의 RN(국민연합)이 반(反)극우 연대 바람에 밀려 3위로 주저앉으면서 마크롱 대통령이 "2027년 대선 극우 집권을 막아달라"며 조기총선 승부수를 던지며 내걸었던 명분은 어느 정도 통한 셈이 됐다.
그러나 좌파 연합 신민중전선(NFP)이 의회 권력을 잡게 되면서 마크롱 대통령의 향후 국정 운영에는 상당한 제약이 따를 전망이다.
조기 총선을 치름으로써 나라 전체를 불안에 빠트렸고, 결과적으로 RN의 의석수를 키워준 장본인이 된 셈이라 이에 대한 책임론에서도 벗어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기 총선 도박 통한 새판짜기 시도, 절반의 성공? 일단 기사회생
유럽의회 선거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이 14.6% 득표에 그치고 극우 RN이 압도적 승리를 거둔 배경엔 마크롱 정부에 대한 심판론이 깔렸다.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회 선거 결과로 드러난 민심을 확인하고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이라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극우 진영의 부상을 저지하고, 정부에 대한 재신임을 물어 자신의 정치적 주도권을 되찾겠다는 판단이었다. 이 기회에 의회 판을 새로 짜 정치적 교착 상태를 풀겠다는 계산도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 결정은 극우 RN을 제외한 야당과 당내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특히 당내에선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낮은 상황에서 총선을 치르는 건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라는 반응들이 나왔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달 1차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만 해도 팽배했다. 당시 범여권은 득표율 20%에 그쳐 하원 전체 577석 가운데 60∼90석을 얻는 데 그칠 거란 전망이 나왔다. 2022년 총선에서 245석을 얻은 것에 비하면 엄청난 축소다.
이런 기류는 2차 투표를 앞두고 NFP와 범여권 사이에 반극우 전선을 형성하며 조금씩 달라졌다.
그리고 실제 투표함을 열어보니 누구도 예상 못 한 결과가 나왔다.
내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RN이 반극우 연대에 부딪혀 3위로 밀려났고, 참패가 예상된 범여권은 160석 안팎을 얻는다는 추정치가 나왔다. 1위는 좌파 연합이 차지했다.
마크롱 대통령으로서는 의회 1당 자리를 좌파 연합에 내주긴 했으나 애초 100석도 얻지 못할 거란 관측을 뒤엎고 예상을 뛰어넘는 성적표를 낸 셈이다.
특히 극우 1당을 저지했다는 측면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도박은 그 목적을 달성했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실제 마크롱 대통령의 측근들은 이날 선거 결과 이후 "오늘 결과는 의회 해산이 필요했다는 걸 입증했다", "중도 세력이 죽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중도 세력은 여전히 건재하다"고 평가하며 대통령의 선택이 옳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범여권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뒷받침할 의회 권력을 잃게 된 건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총선 결과에 상관없이 2027년까지인 임기를 지키겠다고 밝혔으나 의회 권력이 야당에 넘어가면 그가 주도권을 쥐고 나라를 운영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당장 좌파 연합에선 마크롱 대통령에게 정부 운영권을 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좌파에서 총리를 임명해야 할 경우 프랑스에선 역대 4번째 동거 정부가 탄생하게 된다.
동거 정부에선 정당이 서로 다른 대통령과 총리가 서로 견제하는 만큼 대통령의 운신 폭이 좁아지고 각종 정책 추진이 더딜 수 있다. 마크롱 대통령의 개혁 정책 상당수는 철회되거나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대표적인 게 연금 개혁이다. 좌파 연합은 마크롱 대통령의 정년 연장을 폐기하고 정년을 오히려 60세로 낮추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좌파의 제동으로 마크롱 대통령의 남은 임기가 3년이지만 권력 누수 현상인 레임덕이 일찌감치 올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마크롱 대통령이 조기 총선을 결정함으로써 의회 내 RN의 의석수를 키웠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어 보인다.
다만 일각에서는 자기 주도적인 정치를 펼쳐온 데다 승부사 기질이 있는 마크롱 대통령이 쉽사리 국정 주도권을 놓진 않을 거라는 관측도 내놓는다.
이번 총선 결과 범여권과 좌파 연합의 의석수가 큰 차이 나지 않을 경우 우파 공화당에 손을 내밀어 의회 다수파를 형성한 뒤 본인이 원하는 총리를 임명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마크롱 대통령이 1년 뒤 다시 의회를 해산할 수도 있다. 헌법상 프랑스 대통령은 1년에 한 차례 의회 해산이 가능하다. 물론 그 경우 정치적 부담은 오롯이 마크롱 대통령 본인이 져야 한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조기 총선 결정으로 당내 지도력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었다.
의회 해산으로 의원직이나 장관직을 잃게 된 여권 인사들은 그 책임을 대통령에게 돌리는 분위기다.
프랑스 헌법상 대통령은 한 차례밖에 연임하지 못해 마크롱 대통령은 차기 대권 주자도 될 수 없다. 그를 중심으로 여권이 결집할 요인이 없는 셈이다.
최연소 대통령 돌풍서 반대 여론 커진 마크롱, 다시 한번 시험대에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프랑스 정치판에 파란을 일으키며 서른아홉이라는 젊은 나이로 프랑스 대권을 거머쥐었다.
공화당과 사회당이라는 거대 양당 구도에서 기존의 좌·우를 뛰어넘어 새로운 중도정치를 펼쳐 프랑스를 개혁하겠다는 마크롱 대통령에게 유권자들은 기대를 걸고 표를 줬다.
그러나 마크롱 대통령의 인기는 시간이 지나며 사그라들었다. 개혁 추진 과정에서 민심이 등 돌린 게 크다.
마크롱 대통령은 첫 재임 기간인 2018년 11월 유류세를 인상하려다 민심을 건드려 노란 조끼를 입은 반정부 시위대와 이듬해 봄까지 갈등을 빚었다.
유류세 인상 방침을 철회하며 성난 민심을 겨우 가라앉힌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엔 연금 제도를 손보겠다고 나서 2019년 12월 전국의 대중교통이 마비되는 총파업이 벌어졌다.
2020년 초 코로나19 위기가 닥치면서 연금 개혁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마크롱 대통령이 재임에 성공한 뒤인 지난해 1월 다시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마크롱 대통령은 헌법 조항을 이용해 하원 표결을 생략해가면서 정년 연장을 골자로 한 연금 개혁을 밀어붙였고, 이에 반발해 노조를 중심으로 프랑스 전역에서 반발 시위가 벌어졌다.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2017년 취임 당시 약 10%였던 실업률을 2022년 7.1%까지 떨어뜨렸다.
그러나 노동자 측에서는 마크롱 정부가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펼치며 해고 규정을 완화하고 실업 수당 수령 기준을 강화했다는 불만이 있다.
친기업적 정책에 더해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정치대학(시앙스포)과 국립행정학교(ENA)로 이어지는 엘리트 코스를 밟은 이력 덕에 서민들 눈엔 마크롱에 대해 '부자들의 대통령'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고물가가 이어지며 서민 생활이 팍팍해진 것도 정부에 대한 불만을 가중했다.
여기에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를 이어 '유럽의 지도자'로 입지를 다지기 위해 내치보다는 외치와 대외 행보에 더 무게를 둔다는 비판도 있다.
이런 여론의 불만은 마크롱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변화로 명확히 드러난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만 해도 60%대 지지를 받았으나 지금은 30%대 중반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이번 총선을 통해 최악의 고비는 넘겼지만, 마크롱표 국정운영의 동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여기에 향후 정부 운영 향배 등에 따라 레임덕에 처할 가능성도 적지 않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오른 상황이다.
s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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