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사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데이터로 읽는 미국 대선]

국승민 2024. 7. 8.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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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흔들리고 있다. 바이든의 대선 토론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걸까. 이번 토론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여론조사 결과는 바이든에게 전적으로 불리하다.

6월27일 밤은 미국 민주당 지지자에게 ‘재앙’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 부족한 날이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밤의 충격과 비슷한 정도라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바이든 현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하 모두 직함 생략)의 대선 토론이 열린 날에 대한 평가다. 많은 민주당 지지자들은 물었다. 어쩌다 민주당이 이 지경까지 왔는지, 그리고 바이든을 교체할 방법은 없는지.

‘슬로모션으로 진행되는 교통사고’라는 영어식 표현이 있다. 눈앞에서 재앙이 아주 천천히 펼쳐지는 것을 목격함으로써 모두가 재앙 같은 결과가 일어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상황을 뜻한다. 현재 민주당 지지자들이 이러한 상태에 도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후보 교체는 가능한지, 그리고 바이든 외 트럼프를 상대할 만한 후보가 있는지, 민주당의 위기 상황을 점검해보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오른쪽)과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6월27일 미국 애틀랜타 CNN 스튜디오에서 ‘2024 미국 대선’ 첫 TV 토론을 벌였다. ⓒREUTERS

바이든의 재선 도전은 나이 문제를 제외하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첫째, 미국 대통령은 대체로 재선에 성공한다. 미국 역사상 대통령이 45명 있었고, 이 중 35명이 재선에 성공했다. 현직 대통령이 78% 확률로 재선에 성공한다는 통계를 보면, 다시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둘째, 민주당은 2016년 트럼프에게 패배한 이후 세 번의 선거에서 승리하거나 선전했다. 2018년 중간선거와 2020년 대선에서 민주당은 승리를 거뒀고, 집권당이 불리한 2022년 중간선거에서 예상과 달리 선전했다. 굳이 장수를 바꿀 필요는 없었던 상황이다.

셋째, 바이든이 인프라법·반도체법·인플레감축법(IRA)과 같은 입법적 성공을 보였다. 전 세계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고전할 때, 미국의 경제 성적표는 상대적으로 좋은 편이었다. 좋은 통치 성적표가 유권자들에게 인정받을 것이라 믿었다.

민주당의 차기 주자들이 부족했던 것도 아니다. “미국 민주당에는 왜 이렇게 인물이 없나요?” 81세 조 바이든이 출마하는 현실을 두고 한국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다. 미국 민주당에 인물은 많다.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 미시간 주지사 그레천 휘트머, 캘리포니아 주지사 개빈 뉴섬, 교통장관 피터 부티지지와 같은 유력한 정치인이 여럿 있다.

이 같은 재능 넘치는 정치인들이 경선에 나설 수도 있었는데 왜 도전하지 않았을까? 역사적으로 현직 대통령에 대한 당내 경선 도전은 대체로 실패로 끝났으며, 경선에서 현직 대통령이 아슬아슬하게 이길 경우 본선에서 졌기 때문이다. 1992년에 팻 뷰캐넌이 아버지 부시 대통령에게, 1980년에 테드 케네디가 카터 대통령에게, 그리고 1976년에 레이건 당시 캘리포니아 주지사가 포드 대통령에게 도전했다. 치열한 경선이 펼쳐졌고 세 경선에서 모두 현직 대통령이 승리했지만, 본선인 대선에서 모두 현직 대통령이 재선에 실패했다.

경선 승리 가능성도 낮은데 자기 당의 대통령 재선을 실패하게 한 원흉으로 낙인찍히고 싶은 차기 정치인은 없다. 특히 공화당의 후보가 트럼프가 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트럼프 재선의 발판을 깔아준 정치인’이라는 낙인을 원하는 민주당 정치인은 없다. 강력한 경선 경쟁자는 현직 대통령이 약하다는 방증이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대통령이 약하다는 걸 알리는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심리도 깔려 있었을 것이다.

재임 기간 내내 언론 접촉 꺼린 바이든

이러한 민주당 내 분위기에서 바이든의 재선 출마를 막을 현실적 방법은 바이든 본인의 결심뿐이라고 할 수 있다. 바이든의 재선 의지는 확고했다. 출마와 정치적 결정을 함께하기로 유명한 질 바이든 여사도 재선 도전을 강력히 권했다고 한다. 또 다른 고려 사항도 있었다. 트럼프를 막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자기라는 바이든 스스로의 판단이었다. 차기 주자 중에서 가장 중도적이고, 민주당 내 여러 세력을 규합할 수 있으며, 트럼프에게 승리한 전력이 있다는 이유를 든다.

6월 28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질 바이든 여사가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에서 열린 선거운동 행사에 도착하고 있다. ⓒAFP PHOTO

바이든의 재선 출마 결심에는 또 다른 현실적 이유가 있다. 바로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가 강력한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바이든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 역사상 전례를 봤을 때 해리스가 경선에서 앞설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해리스의 지지도도 바이든만큼 안 좋은 편이고, 트럼프와 가상 대결에서도 바이든보다 더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많은 정치평론가가 이런 문제를 지적했고, 미국 언론 〈악시오스〉에서도 내부자 증언을 바탕으로 해리스의 정치적 약세가 바이든의 재선 출마 결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보도했다.

바이든의 대선 토론 재앙을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던 것일까? 바이든에게 출마하면 안 된다고 말한 사람이 민주당 내에 아무도 없었을까? 돌이켜보면 불안을 예고하는 징후와 예언자들도 있었다.

가장 대표적 사례가 슈퍼볼 때다. 시청자 1억명 이상을 끌어들이는 슈퍼볼은 매년 미국 방송의 최대 이벤트다. 이 행사 이전에 방송은 대통령을 초청해 단독 인터뷰를 하는 관행이 있는데, 지난해에 이어 선거가 있는 올해까지 바이든이 인터뷰 초청을 거절했다. 굉장히 많은 유권자에게 자기 메시지를 알릴 기회를 거절한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진보 진영의 유명 칼럼니스트인 에즈라 클라인은 이 사건을 계기로 ‘바이든이 후보를 그만두고 새로운 후보로 교체해야 한다’고 이미 썼다.

바이든은 재임 기간 내내 언론 접촉을 꺼렸다. 역사상 가장 적은 기자회견과 인터뷰를 한 대통령으로 꼽힌다. 재임 첫 2년간 바이든은 54회 인터뷰만 했는데, 이는 재임 첫 2년 트럼프의 202회와 오바마의 275회와 비교해서 매우 적은 횟수다.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같은 주요 일간지와도 인터뷰를 안했다. 돌이켜보건대, 이러한 행보는 모두 바이든 참모들이 대선 토론 때와 같은 바이든의 실수를 노출시키지 않기 위한 전략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6월27일 대선 토론 때 바이든의 숨겨진 모습이 전 세계에 공개됐다. 사실 이번 토론회는 공식 대선 토론이 아니었다. 근소하지만 꾸준히 트럼프에게 밀려왔던 바이든이 ‘역전 카드로’ 조기 토론을 추진했다. 할 필요 없는 토론을 굳이 요구해서, 유권자들이 우려하던 모습을 보여줬다.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패해 민주당 내 바이든 지지를 묶는 실이 풀어졌다. 민주당 지지자들은 바이든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뛰어난 정치인은 아니지만 결과로 증명해준다는 점 때문에 그를 지지했다. 2020년 민주당 경선 승리, 2020년 대선 승리, 초당적 입법 실적, 2022년 중간선거 선전, 공화당과의 성공적인 예산 협상, 나이 우려를 불식시킨 올해 국정연설 등등. 바이든은 결과로 보여주는 정치인이라는 게 바이든 캠프의 주장이자 민주당 지지자들의 믿음이었다. 그런데 결국 민주당 지지자들이 애써 외면해온 현실을 대선 토론에서 보게 됐다.

대선 토론은 어떤 결과를 낳게 될까? 정치학 연구는 대선 토론이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하지만, 이번 토론에서 바이든의 퍼포먼스는 역사적으로 이례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판단하기 이르다. 여론조사 결과는 바이든에게 전적으로 불리하게 나오고 있다.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CNN이 발표한 조사가 대표적이다. 세 조사에서 모두 트럼프가 바이든에게 6%포인트 앞서는 것으로 나왔다. 〈뉴욕타임스〉가 트럼프에 대한 여론조사를 처음 실시한 2015년 이후 가장 큰 우세 폭이다. 모든 여론조사의 추세를 보여주는 파이브서티에이트(FiveThirtyEight)나 〈뉴욕타임스〉에서도 TV 토론 직전까지 팽팽하던 흐름이 다시 트럼프 우위로 변했다.

민주당 내부를 강타한 결과는 바로 민주당 계열 정치컨설팅 회사 오픈랩스(OpenLabs)의 내부 조사 결과다. 토론 이후 모든 격전지에서 트럼프 우위가 2%포인트 가까이 증가했다. 뉴햄프셔, 버지니아, 뉴멕시코 같은 민주당이 상대적으로 우세하다고 여겨지는 주에서도 바이든이 오차범위 내로 열세를 보인다.

바이든을 대체할 만한 후보군의 강세도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다. CNN 조사에 의하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트럼프에게 2%포인트 차이로 지고 있다. 바이든이 트럼프에게 지는 격차가 6%포인트다. 개빈 뉴섬 주지사, 그레천 휘트머 주지사, 그리고 피터 부티지지 장관도 트럼프에게 4~5%포인트 차이 패배를 보여주는데, 모두 바이든에 비해 앞서는 수치다.

오픈랩스 조사 결과도 대체 후보들이 월등히 바이든을 앞서고 있다. 바이든을 비호의적으로 보는 유권자가 그렇지 않은 유권자보다 21.2%포인트 더 많다. 그에 비해 휘트머 주지사, 부티지지 장관은 2~3%포인트 정도 호의적 견해가 더 강하다. 물론 이들에 대한 견해가 아직 없는 유권자의 비중이 높지만, 바이든이 가진 부정적 이미지의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트럼프와 1대 1 대결을 놓고 대체 후보들의 지지율을 보면 4명이 바이든보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휘트머 주지사와 부티지지 장관은 전국에서 50% 이상 지지율을 보였으며, 선거를 좌우할 펜실베이니아주에서도 휘트머와 부티지지가 각각 49.7%와 49.6%로 가장 경쟁력이 높게 나왔다.

자진 사퇴하지 않는 이상 교체 어려워

바이든 토론의 가장 치명적 후폭풍은 민주당 지지자들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대선에서 바이든이 이길 가능성이 높을지 대체 후보가 이길 가능성이 높을지 물으니, 75%가 대체 후보의 가능성을 높게 봤다.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절반이 넘는 56%가 대체 후보의 가능성을 높다고 평가했다. 비백인 유권자는 70%, 18~34세 젊은 유권자의 82%가 대체 후보가 더 유리하다고 봤다. CBS가 유고브(YouGov)에 의뢰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바이든이 국정 수행을 할 만한 인지적·정신적 건강을 갖고 있느냐는 질문에 전체 유권자의 72%가 ‘아니다’라고 봤고, 민주당 지지자는 41%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특히 같은 질문에 대한 민주당 지지자들의 답변은 6월 초의 29%보다 12%포인트 증가한 수치다. 위기가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드러나고 있다.

사퇴 여론이 증폭되는 상황에서 후보를 교체할 방법이 있을까? 민주당의 후보 공식 지명이 8월19~22일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그렇지만 주별 경선을 통해 선정된 대의원들이 바이든에게 투표하게끔 되어 있어서 바이든이 자진 사퇴하지 않는 이상 후보 교체는 어렵다. 당 내부에서 공개 사퇴 요구를 해도 쉽지 않은데, 아무도 먼저 이러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렵다.

특히 상하원 원내대표나 차기 주자들은 자칫 잘못 이야기했다 백래시를 경험할 수 있어서 더더욱 조심스러워하는 모양새다. 전형적인 ‘집단행동 문제(여러 개인이 특정 행동으로 이익을 얻을 순 있지만 관련 비용 부담이 커 개인 혼자서 수행·해결할 수 없는 상황)’로, 모두가 같이 사퇴를 요구하지 않는 이상 누구도 나서지 않고 있다. 토론 다음 날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바이든을 옹호하는 트윗을 올린 것도 민주당 내부 사퇴 여론이 공개적으로 터져 나오지 않게 하는 데 일조했다.

바이든은 자부심이 굉장히 강한 정치인이라 공개 압박이 통하지 않는다는 걸 민주당에선 잘 안다. 결국 바이든이 귀를 기울이는 가족 그리고 핵심 측근만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대선 토론 후 주말에 바이든의 가족회의에서 배우자 질 바이든과 아들 헌터 바이든이 후보직 유지를 강력히 권했다는 뉴스가 일제히 보도되었다. 그렇지만 민주당 정치인들도 점점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텍사스 출신 로이드 도깃 민주당 하원의원이 처음으로 바이든의 후보 사퇴를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바이든 캠프와 민주당 정치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시작되었다.

민주당 내 대안 후보군에 대한 이야기도 꾸준히 나온다. 개빈 뉴섬 주지사, 그레천 휘트머 주지사,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피터 부티지지 장관(왼쪽부터). ⓒAP Photo

바이든을 둘러싼 뉴스가 빠르게 변해가는 상황이므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긴 어렵다. 그렇기에 민주당 내부에선 대안 후보군에 대한 이야기가 꾸준히 나온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준수한 외모와 젊음, 진보적 색채와 뛰어난 토론 실력으로 하마평에 계속 오른다. 그레천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격전지 출신이라는 점에서 경쟁력이 있다. 또한 재선 레이스에서 11%포인트 차이로 공화당 후보를 이겼고, 민주당이 미시간주 상하원을 모두 석권할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호평받는다. 또한 낙태 이슈를 선도적으로 이끌 수 있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도 주목받는다. 피터 부티지지 교통장관은 2020년 민주당 대선 첫 경선지인 아이오와주에서 승리한 데다, 〈폭스뉴스〉에 나가 논리적으로 앵커들을 비판하는 언변을 보여줬다. 1982년생 젊은 나이 때문에 차기로 꾸준히 언급된다. 이러한 대체 후보들이 바이든에 대한 충성과 야심 둘을 놓고 줄타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대선 토론에서 바이든이 보인 모습은 선거 광고로 꾸준히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대선뿐만 아니라 상원·하원·주지사 등 전국 모든 선거에서 공격의 소재로 활용될 것이다. 재선 레이스가 이전보다 더 힘들어진 마당에 바이든 캠프는 수성전 모드에 돌입했다. 트럼프와 경쟁하기도 바쁜 와중에 민주당 내부 싸움도 동시에 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올여름은 민주당 잠룡들과 민주당 성향 언론인·활동가·지지자들이 바이든 캠프와 치열한 눈치 싸움을 벌일 것이다. 바이든이 대선후보 자리를 유지하거나, 사퇴하고 부통령 카멀라 해리스가 후보가 되게끔 지지해주거나, 아니면 모든 잠룡이 뛰어들어 경쟁하는 전당대회가 펼쳐지거나, 민주당의 미래는 셋 중 하나로 결정될 것이다.

국승민 (미시간 주립대학 정치학과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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