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러피언 드림, 아메리칸 드림 그리고 코리안 드림[EDITOR's LETTER]
[EDITOR's LETTER]
‘투표는 회고적일까, 전망적일까?’
사람들은 과거를 근거로 투표하고, 미래가 바뀌길 원합니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투표가 가져올 결과는 희망하는 미래와는 방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올해 세계가 선거의 폭풍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고들 했습니다. 세계 인구의 절반이 투표를 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다른 나라 투표가 나하고 무슨 상관 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올해는 ‘세계화의 종말’이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치러지고 있어 큰 관심이 있겠냐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만, 한국은 물론 유럽 선거에서도 예상 밖 결과가 나오고, 금융시장과 모든 산업에 선거가 영향을 미치자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클라이맥스는 최고령 후보들이 재앙적 경쟁을 하고 있는 미국 선거가 되겠지요. 1차 토론만 했을 뿐인데 국채금리가 급등하며 시장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습니다.
최근 선거는 유럽에서 치러졌습니다. 유럽,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유럽에 대한 약간의 동경이 있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동의어로 각인됐습니다. 차가웠습니다. 약간은 따듯한 자본주의를 원하는 이들에게 특히 그랬습니다.
한국에만 그런 정서가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2004년 세계적 석학인 미국의 제레미 리프킨은 ‘유러피언 드림’이라는 책을 출간합니다. 유로화는 강했고 유럽 성장률이 미국보다 높았던 시절, 그 결과 세계 4대 은행 중 3개가 유럽 은행이었던 마지막 전성기였습니다.
리프킨은 “유럽은 개인의 자율보다는 공동체의 관계를, 문화적 동화보다는 다양성을, 부의 축적보다는 삶의 질을, 물질적 성장보다는 지속적 발전을, 일방적 권력행사보다는 세계적 협력을 우선시하는 사회다”라고 치켜세웠습니다. 미래도 낙관했습니다. 그때가 정점이었습니다.
그로부터 3년 후 아이폰이 나왔습니다. 세계 휴대폰 시장을 주름잡던 노키아의 이름은 사라졌고, 유럽은 미국의 디지털 식민지가 됐습니다. 2011년 유럽 재정위기가 터졌지만 수습을 위한 정치적, 정책적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이후 미국 빅테크들이 성장할 때 유럽은 제조업에 집착했습니다.
석유를 대하는 자세도 달랐습니다. 유럽은 환경을 이유로 새로운 에너지원을 개발하는 대신 러시아산 천연가스에 의존했습니다. 하지만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인센티브를 주며 셰일가스 생산을 독려했습니다. 새로운 공법이 개발되고 미국은 세계 1위 산유국이 됐습니다. 유럽의 빛은 시들해졌습니다.
혁신은 사라지고 성장은 정체됐습니다. 노년층과 난민 등 사회가 짊어져야 할 짐은 더욱 무거워졌습니다. 경제적 토대의 부실로 유러피언 드림의 핵심인 ‘문화의 공존과 지속가능한 발전’은 난관에 처했습니다. 일자리를 빼앗긴 젊은이들은 분노했습니다. 그 결과가 유럽을 휩쓸고 있는 극우의 열풍입니다(프랑스에서조차 극우정당이 의원 수를 두배로 늘리며 선전했습니다). 선거는 물적 토대의 반영이자 과거에 대한 평가라고 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미국은 잘나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현직 대통령 지지율은 추락하며 금융시장은 흔들리고 있습니다. 대선 결과에 승복하지 않겠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높아지고 있습니다. 그는 이민도 막아버리겠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또 미국인 5명 중 4명이 자신의 세대보다 자녀 세대의 삶이 더 나아질 것이란 점에 회의적입니다. 계층이동성의 제한, 이민자에 대한 높아지는 반감은 아메리칸 드림을 짓누르고 있습니다.
물론 유럽과 달리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갖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젊은이들을 끌어들이며 소수를 위한 아메리칸 드림의 명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유러피언 드림도 아메리칸 드림도 빛을 잃은 시대. 코리안 드림은 어디쯤 와 있을까.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태어나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고 한 해에 100만 명씩 태어난 부모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한국의 젊은이들, 그리고 고향을 등지고 돈을 벌기 위해 한국에 들어와 있는 240만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 이들에게 코리안 드림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사치스러워 보이기까지 합니다.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선거 결과와 이로 인해 변동하는 정치·경제 지형을 확인하며 한국의 전략과 코리안 드림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할 시간입니다.
김용준 기자 juny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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