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직업의식 재고가 필요한 시대

2024. 7.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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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인철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1995년 여름, 영국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을 때 뜻하지 않은 난관에 직면했다. 입국 심사를 통과한 후, 장거리 비행으로 지친 나는 빠르게 숙소로 이동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하철 노조 파업으로 전철을 이용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유일한 교통수단인 블랙캡(택시)을 타고 시내로 들어가야 했다. 처음 방문한 영국에서 지하철 대신 택시를 이용한다는 것은 가난한 유학생에겐 무척 부담이었다. 이후 유학을 마칠 때까지 한 번도 블랙캡을 타본 적이 없다. 노조 파업이 블랙캡을 탈 수 있는 호사를 만들어 준 셈이다. 지하철 노조는 가난한 외국 학생을 힘들게 한 파업을 유학생활 내내 반복했다. 노동 운동에 관해 부정적인 시각은 없지만, 이때부터 직업윤리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됐다. 행복한 사회가 되려면 직업의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기 때문이다.

직업은 개인 적성과 능력에 따라 일정 기간 특정 분야에 종사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과거와 달리 직업 선택의 자율성이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는 평생직장이란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한 직장이나 직업에 머무르기보다 개인의 목적에 따라 직업을 자주 바꾼다. 직업 만족도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 그렇다고 직업을 선택하는 젊은이를 나무랄 이유는 없다. 시대적 변화가 직업에 대한 의식 자체를 변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직업들이 생겨났고 또 유망했던 직업이 어느덧 사라졌다. 기성세대가 가치 없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던 직종이 주목받는 직업이 됐고, 컴퓨터 공학은 더 많은 종류의 직업과 세상을 만들고 있다. 이러한 변화에 순응하고 따라가려면 우리는 직업에 대한 의식을 새롭게 정립할 수밖에 없다.

직업의 종류와 유형이 변해도 직업의 개념과 가치관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직업이 생계를 위한 활동이라는 점은 여전하다. 직업이 주변 사람들과 사회 구성원의 삶을 하나로 연결하고, 사회가 발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점도 변함없다. 인간의 생산 활동이 사회 구성원을 위한 봉사와 소명이라는 관점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우리가 직면한 직업의식의 문제가 무엇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우리의 직업의식이 경제 논리에 함몰되는 측면이 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직업 선택은 경제 논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개인의 경제 유익만 추구한다면 건설적 직업의식은 사라질 뿐 아니라 직업 선택과 활동도 위축된다. 사회 곳곳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불협화음은 이익 추구의 갈등이다. 동일 직종에 종사하는 사업자 간의 갈등 역시 더 많은 이익을 추구하려는 욕망에서 비롯됐다. 불법 주차로 인도 통행을 방해하고, 교통 대란이 발생한 것도 물질 집착의 결과이다. 의과대학 정원 확대와 관련된 지루한 논쟁과 분쟁 역시 국민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이익 대변에 불과하다.

우리 사회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려면 직업의식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직업을 통해 경제적 유익을 얻어야 하지만, 우리 각자 직업에 대한 태도와 가치관을 명확히 해야 한다. 직업의식이 부족하면 본인 직업에 대한 신념과 가치관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건전한 직업관을 가지려면 성장 위주의 경제관을 넘어 직업이 가진 고유의 의미를 바르게 설정해야 한다. 이러한 측면에서 젊은 세대는 직업을 선택할 때 자아실현을 우선해야 할 것이다. 고도성장과 경제적 부가 행복을 결정한다는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선진국 젊은이들은 직업을 선택할 때 경제적 이익보다 자아실현을 우선한다. 그들도 좋은 직업을 구하려 하지만, 자기 적성에 맞고 자아실현이 가능한 직업을 우선 선택한다. 더 나아가, 직업은 사회 참여 수단이다. 개인은 직업을 통해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따라서 직업이 생계유지뿐 아니라 자아실현, 사회참여라는 요소와 균형을 이룰 때, 개인과 사회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이미 세계를 선도하는 선진국이 됐기 때문이다.
신인철 한국침례신학대학교 신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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