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로 만든 영화 욕하려다 빠져들었다"...부천영화제 'AI 쇼크' 현장
책상에서 캐스팅하고 '촬영'까지 일사천리
"제작비 절감 등 변혁 눈앞" "아직 보조 수단 "
“알아야 비판할 수 있으니까 참가했는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지난 3일 오후 경기 부천시 원미구 웹툰융합센터. 안영진 영화사진 대표는 ‘영화’를 만들고 있었다. 2일부터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에 참여해 동료 3명과 함께하는 작업이었다.
AI로 48시간 만에 영화 한 편 ‘뚝딱’
안 대표가 속한 팀의 이름은 ‘막차’. SF와 환경이라는 워크숍 제시 주제에 따라 지구온난화로 생긴 거대 곤충들이 인간을 습격하는 내용을 담았다. 곤충을 피해 추운 곳으로 향하는 마지막 열차를 타려 하며 벌어지는 아비규환을 그리기에 제목은 ‘설국 막차’다. 시나리오도 주연배우 캐스팅도 전날 다 마쳤고, 3일엔 책상 앞에 앉아서 종일 ‘촬영’ 중이었다. 전날 출시된 생성형 인공지능(AI) 영상 제작 프로그램 ‘런웨이 G3’를 활용한 작업이었다. 안 대표는 이리저리 장면들을 뽑아내며 동료들과 의논을 나눴다. 그는 “AI가 생성해내는 영상 수준이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AI영화에 대해 부정적이었는데 많은 가능성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가 주최한 ‘BIFAN+AI 필름 메이킹 워크숍’은 최근 영화계에 불고 있는 AI 열풍을 짐작하게 하는 자리였다. 지원자 600명가량이 몰려 당초 모집 인원 30명을 60명으로 늘려야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재학생 등 20대와 30대가 다수였으나 안 대표처럼 중견 영화인들도 적지 않았다. ‘부러진 화살’(2012)과 ‘소년들’(2023)의 정지영(78) 감독도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60명은 16개 팀으로 나눠 48시간 동안 AI영화 제작 방식을 학습하며 단편영화 한 편씩을 만들어냈다. 16편은 14일까지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상영된다.
5년 내 영화계 큰 변혁 있을 것
AI영화는 영상산업에 큰 변혁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2분짜리 SF영화 ‘설국 막차’가 인력을 대거 동원하지 않고, 컴퓨터그래픽(CG) 작업에 오래 의지하지 않은 채 짧은 시간에 완성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AI영화가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일 도깨비방망이가 될 수 있다.
워크숍 강사로 초청된 미국 유명 AI영화 감독 데이브 클락은 “로버트 저매키스 감독의 새 영화 ‘히어’ 속 톰 행크스의 젊은 시절 모습은 AI로만 구현해낸다”며 “할리우드 변혁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클락은 미국감독조합(DGA)에 소속된 유일한 AI영화 감독이다. 강제규 감독은 지난 5일 부천판타스틱영화제 주최 관객과의 대화 행사인 ‘팬터뷰’에서 “AI가 5년 내 영화계를 크게 바꿀 것”이라며 “엄청난 기회이자 위기가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AI영화가 넘어야 할 산은 아직 많다. 생성된 장면들이 한계를 지니고 있다. 영상 속 인물의 ‘불편한 골짜기(Uncanny Valley·인간을 많이 닮아 오히려 거부감이 느껴지는 이미지)’는 여전하다. 정지영 감독은 “작업 중 오류가 종종 생겨 아직은 AI에 온전히 기댈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며 “추가 촬영이 필요한 장면을 AI가 생성한 영상으로 대신하는 등 보조적인 장치로 쓰일 수는 있다”고 봤다.
AI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
AI영화는 영상산업 구조의 변화뿐만 아니라 여러 법적 다툼과 윤리 논란을 예고한다. 5~7일 부천아트센터 소공연장에서 열린 ‘BIfan+ AI 국제 콘퍼런스’는 이에 대해 진단하는 자리였다. 22개 강연과 토론 행사 등이 매번 만석(240석)이었다.
6일 열린 토론 행사 ‘AI는 영상산업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는 특히 AI영화의 법적 윤리적 문제를 짚는 행사였다. 우크라이나 AI음성합성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 리스피처의 안나 블라흐 윤리 책임자는 “AI를 다룰 때는 신뢰(Trust)와 통제(Control), 창의성(Creativity)이라는 세 단어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초상권과 지식재산권 등을 지킬 수 있게 AI를 통제하면서도 창의적인 콘텐츠를 생산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의미에서다. AI웹툰 제작 플랫폼 드리머스의 오상준 대표는 “AI로 더 다양하고 풍부한 세계를 상상할 수 있다”며 “데이터를 훔치거나 목소리를 허락받지 않고 쓰는 건 AI가 아니라 사람이 하는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wender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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