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 하이닉스’ 맞나? SK온은 어디로 가나

2024. 7. 8.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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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포커스]

SK온의 미국 조지아 2공장. 사진=SK온



적자 수렁에 빠진 SK온이 ‘제2 SK하이닉스’로 거듭날 수 있을까. 지난 6월 SK그룹 최고경영자(CEO)들의 1박 2일 경영전략회의 이후 SK그룹의 리밸런싱 작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리밸런싱 작업의 핵심은 ‘SK온 구하기’다.

SK온은 2021년 출범 이후 올해 1분기까지 10개 분기 연속 적자를 냈다. 누적 적자가 2조5876억원에 달하며 2분기에도 3000억원대 적자가 예상된다. 올해 계획한 시설투자 규모만 약 7조5000억원에 달하지만 흑자전환에 실패하면서 유동성 확보가 시급한 상황이다.

SK온은 고강도 쇄신에 돌입했다. 비상경영을 선언하고 경영진의 거취를 이사회에 위임하고 흑자전환 때까지 모든 임원의 연봉을 동결하기로 했다. SK그룹이 향후 성장 전략의 방향을 인공지능(AI)과 반도체에 집중하기로 하면서 SK온의 배터리 사업도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빚내서 설비투자…재무부담 부메랑으로

SK온은 전기차 산업 성장 둔화에도 공격적 투자를 단행하며 올해 1분기 이자비용으로만 1780억원을 썼다. SK온의 연결 기준 순차입금은 2021년 말 2조9046억원에서 올해 3월 15조5917억원으로 급증했다. 같은 기간 부채비율은 166.4%에서 188.2%로 높아졌다.

문제는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하반기 전망도 그다지 밝지 않다는 점이다.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으로 배터리를 포함한 산업 전반이 위축된 데다 원자재 가격 하락까지 겹치며 수익성이 하락했다.

중국 배터리 업체들의 저가공세로 글로벌 배터리 시장 경쟁도 심화하고 있다. 미국 대선에서 친환경 정책 폐기를 공언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것도 변수다.

모회사인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 자회사 SK온을 지원하느라 재무부담에 휘청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올해 3월 높은 자본적지출(CAPEX)과 전기차 배터리 수요 둔화를 이유로 국제신용평가사 S&P글로벌로부터 신용등급이 기존 BBB-(부정적)에서 투기등급으로 분류되는 BB+(안정적)까지 강등됐다.

그간 시장에서는 SK온으로부터 시작된 재무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방안으로 모회사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SK온과 윤활유 생산회사인 SK엔무브의 합병, 분리막 생산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지분 매각 등이 거론돼 왔다. 이 중 SK아이이테크놀로지 지분 매각은 최근 잠재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티저레터(투자설명서)를 배포하면서 매각 작업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지난 3년간 SK온의 시설 투자에 투입된 비용은 20조원가량이다. 배터리업계 후발주자로서 공격적인 생산능력 확대를 위해 SK온에 천문학적인 자금을 쏟아부은 결과 SK온은 단기간에 글로벌 배터리 시장점유율 4위(올해 1~5월 기준)로 올라섰다.

그러나 고속 성장을 위한 공격 투자가 재무부담의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흑자전환이 늦어지면서 SK그룹 전체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물론 SK그룹의 그간 방만한 투자도 한몫했다. 지난해 말 기준 SK그룹의 차입금은 116조원에 달했다. 투자 확대로 빚은 늘었는데 주요 사업의 실적 부진으로 재무 상황이 악화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2020∼2023년 SK디스커버리 계열을 제외한 SK그룹의 현금 부족액은 50조원을 상회한다. 외부차입에 따른 재무부담 증가분 36조원 이외에도 주요 계열사 중심으로 17조원 이상의 자본성 자금을 조달한 것으로 추산됐다.

기업공개(IPO)와 공모 유상증자 금액 3조1000억원, 비상장법인 유상증자 금액 6조원, 상환전환우선주와 전환우선주 발행을 통해 각각 4조6000억원, 3조4000억원을 조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장수명 한국신용평가 수석연구원은 “SK그룹의 자본성 자금조달 가운데 일정 부분이 채무적 성격 또는 재무적 변동성이 내재한 걸로 판단하고 있으며 그 규모는 2023년 말 기준 약 11조원”이라고 했다.

2020∼2023년 상환전환우선주·전환우선주 발행을 통해 조달한 8조원 이외에도 과거 발행한 신종자본증권, 계약이 연장되고 있는 총수익스와프(TRS) 계약 3조원 등을 더한 수치다. SK온과 SK에코플랜트가 발행한 전환우선주에는 기업공개(IPO)와 연계한 약정도 체결돼 있다.

장 수석연구원은 “SK온은 2026년 말까지 적격상장완료 조건이 존재하며 SK온의 기업가치가 적정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경우 모회사 SK이노베이션이 IPO를 연기하고 콜옵션을 행사할 수 있는데 이때 SK이노베이션에 대규모 자금 소요가 불가피하며 만약 콜옵션을 포기하고 투자자들의 동반매도청구권이 행사되면 SK이노베이션이 보유한 SK온의 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며 “SK온의 성공적 IPO 완료는 재무적 불확실성 해소뿐 아니라 배터리 사업의 재무 안정성을 확보한다는 차원에서 중요하며 궁극적으로는 그룹 전체 재무부담 수준을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태원 하이닉스 신화’ 재창조 기대감도

일각에서는 SK온을 매각해야 한다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다만 배터리 사업은 오너 일가가 미래 먹거리로 집중 지원해왔다는 점에서 매각 가능성은 사실상 제로(0)라는 의견에 힘이 실린다.

배터리 사업은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그룹 수석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최 수석부회장은 일찍이 배터리 사업의 미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해 사업 기획과 투자 확대를 주도해 왔다. 특히 SK그룹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을 초기 단계부터 이끌며 총책임자 역할을 맡았다.

최 회장에게 SK이노베이션의 정유·석유사업을 대체할 유망 산업으로 전기차 배터리 사업 투자 확대를 권유한 것도 최 수석부회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의 전기차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분쟁에서 양사가 2년이 넘는 법적 공방 끝에 2021년 4월 SK 측이 LG 측에 2조원을 지급하는 조건으로 극적으로 합의한 것도 오너의 결단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총 2조원의 합의금 중 5000억원씩 두 번에 걸쳐 1조원을 지급하고 남은 1조원은 아직 분납하고 있어 그렇지 않아도 어려운 SK온의 재무부담을 더 키우고 있다.

최재원 SK그룹·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 사진=SK온



 

 ‘배터리맨’ 최재원의 핵심 승계 스토리…매각 가능성 ‘0’

SK온의 성공은 최 수석부회장에게 단단한 승계 스토리를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SK그룹은 그간 사촌경영 체제를 유지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지만 유력한 차기 회장으로는 최 수석부회장이 꼽힌다.

재계 관계자는 “최태원 회장이 2012년 성장 가능성을 보고 하이닉스 인수 결단을 내려 에너지·화학·통신 등 내수 중심이던 SK그룹 사업 포트폴리오를 반도체로 확장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했다”며 “SK온이 위기를 딛고 일어선다면 ‘하이닉스 신화’ 재창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SK그룹에 편입된 하이닉스는 최 회장의 공격 투자에 힘입어 기술 격차를 벌리며 앞서가기 시작했고 올해 고대역폭메모리(HBM) 훈풍에 힘입어 글로벌 빅5 진입이 예상되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해 10월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된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그룹 경영권 승계에 대해 “나만의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아직 공개할 시기는 아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최 회장의 세 자녀가 SK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지만 아직 지주회사인 SK(주) 지분이 없어 지분을 물려주는 방식으로 3세 경영에 나서기는 현재로서 사실상 어렵다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최 수석부회장은 수시 인사를 통해 SK이노베이션 수석부회장으로 선임돼 경영 전면에 나섰다. SK그룹 사업 포트폴리오 재편 과정에서 에너지·그린 사업을 총괄하는 중책을 맡게 됐다. 이번 인사로 SK이노베이션과 SK E&S의 합병 가능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실제 합병이 추진된다면 SK E&S의 액화천연가스(LNG) 및 발전자회사 등은 SK온에 넘기며 중복사업을 정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유업 특성상 국제유가의 등락에 따른 높은 이익 변동성이 불가피한데, 이번 합병을 통해 다소 안정적인 이익 창출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배터리 자회사 및 무탄소 에너지 등 신규 사업에 대한 투자에서 주요 재원 확보도 기대된다.

다만 합병 과정에서 현재 SK이노베이션 주식가치의 희석은 불가피하다. SK E&S는 지주회사 SK(주)가 지분 90%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향후 합병 비율에 따른 SK(주) 주주들의 반발을 어떻게 해소할지가 풀어야 할 과제다. SK E&S 자기자본의 약 절반인 3조원 상당의 상환전환우선주(RCPS)를 보유한 KKR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어떤 논의가 오갈지도 관심이 쏠린다.

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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