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직원 사찰 프로그램’ 방조했던 이진숙
사측, 직원들 모르게 노조 대화 등 파일 수백개 열람
대법, 당시 이진숙 본부장 등 “공동불법 행위자” 인정
“공영방송, 공영언론의 다수 구성원이 민(주)노총의 조직원입니다. 정치권력, 상업권력의 압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먼저 그 공영방송들이 노동권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독립시켜야 합니다.”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 내정자(사진)는 지난 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인사말을 통해 이같이 말했다. 언론노조가 공영방송을 좌지우지하고 있다는 평소 인식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하지만 언론·시민사회·노동단체 연대체인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은 지난 5일 기자회견을 열고 “노조 불법사찰 혐의로 2016년 대법원에서 노동권 침해 유죄를 받은 인사가 노동권력 운운할 자격조차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언론장악저지공동행동이 언급한 대법원 판결은 2012년 언론노조 MBC본부 파업 당시 김재철 사장, 이진숙 기획홍보본부장 등이 직원 사찰 프로그램(트로이컷) 운영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방조했기 때문에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는 내용이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7일 1·2·3심 판결문을 보면 MBC본부는 2012년 1월부터 7월까지 170여일에 걸쳐 ‘MBC 정상화와 공정방송 실현’을 내걸고 파업을 벌였다. 그해 3월 김재철 사장의 부적절한 법인카드 사용이 MBC본부 기자회견을 통해 외부로 알려지자 회사 임원들 사이에선 보안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차재실 MBC 정보콘텐츠실장은 ‘정보기술(IT) 보안강화 방안’을 만들어 안광한 부사장, 이진숙 본부장 등에게 보고했다.
이후 차 실장은 5월 관제 서버에 트로이컷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MBC 인트라넷에 접속하는 컴퓨터에 이 프로그램이 설치되도록 했다. 트로이컷 프로그램은 정보 유출 차단, 탐지 기능뿐 아니라 회사 컴퓨터 사용자가 회사 외부로 전송한 파일이 회사의 중앙 서버에 저장되게 하는 기능도 있다.
차 실장은 8월23일까지 트로이컷을 이용해 MBC본부 간부 등이 회사 컴퓨터로 발송한 파일 등 525개를 열람했다. 해당 파일에는 파업일지, 인사위원회에 제출할 소명서, 노조 대의원 간담회 비밀대화 등도 포함돼 있었다. 대법원은 2016년 5월 트로이컷 운영이 직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뿐 아니라 노조의 단결권·단체행동권도 침해했다고 봤다.
대법원은 차 실장뿐 아니라 김재철 사장, 이진숙 본부장 등도 “공동불법 행위자”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피고들도 차 실장이 원고들의 사전 동의 없이 트로이컷을 설치해 개인정보를 일괄적으로 수집·보관·열람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묵인하거나 조장해 방조했다”고 밝혔다.
이 확정 판결 이후 MBC는 트로이컷 설치를 묵인한 김재철 사장, 이진숙 본부장 등 전직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 과정에서 지출한 변호사 비용을 물어내라는 소송을 냈다. 대법원은 2021년 6월 이들이 트로이컷 불법성을 알면서도 적절한 조치를 하지 않고 묵인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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