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장이 필요한 건…한국 안보인가, 선거 앞둔 정치인인가
2024. 7. 8. 06:00
국민의힘 당권 경쟁서 나온 ‘핵무장론’의 실체와 가능성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불가능해 보인 일이 현실이 되고, 당연해 보인 일이 공상이 된다. 정치적 이상, 목표란 이름으로 포장된 ‘가능성’의 영역에서 이성적, 논리적 판단은 후순위로 밀린다. 속고, 속이고, 속아주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설사 불가능해도 지지층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비판은 부당한 ‘정치 공세’로 치부한다. 선거 때면 ‘가능성의 예술’ 외엔 설명할 길 없는 공약이 난무하는 것 역시 해당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이러한 가능성의 영역에 특화된 소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주기적으로 다시 제기된다는 점, 구체적 계획보다 선언적 수사가 앞선다는 점 등이다. 전제에, 전제에, 전제가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실현 가능하다는 것 역시 공통적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매번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나는 소재가 잊을 만하면 부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전제 중 하나만 새롭게 충족해도 가능성의 영역에서 다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국민의힘 당권 경쟁 과정에서 나오고 있는 ‘핵무장’론이다.
“6·25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합니다”. 여당의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는 나경원 의원이 지난 6월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지난 7월 1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핵무장 3원칙,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도 열었다. 나 의원은 이 자리에서 “당대표가 되면, 핵무장 3원칙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핵무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핵무장을 자신만의 차별화된 공약으로 만들며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다.
사실 핵무장은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든 탐낼 수밖에 없는 소재다. 이는 남북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북 강경책→북한과의 갈등 증폭→핵무장 추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구조를 이룬다. 이 구조는 그 자체로 지지층 결집을 만든다. 남북대결로 안보위협이 증가한 만큼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에도 논리적 결함이 없다. 다만 ‘주한미군과의 공존’, ‘국제사회 제재 가능성’, ‘핵무장에 필요한 비용 및 장소’, ‘동아시아의 핵도미노 현상’ 등 핵무장 시 반드시 따져봐야 할 요소들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핵무장이 매번 정치적 레토릭(수사)에서 끝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 의원의 핵무장 주장도 유사한 맥락에 있다. 그가 밝힌 방식은 ‘자체 핵무장’이다.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식의 핵 공유와는 차원이 다르다. 쉽게 말해 한국이 완전한 핵보유국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밝힌 3원칙은 ‘국제정세를 반영한 핵무장’, ‘평화를 위한 핵무장’, ‘실천적 핵무장’이다. 그런데 해당 원칙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북한과의 핵군축을 포함한 평화협상이 가능하고’, ‘확장억제를 안보의 기반으로 한 윤석열 정부를 움직여서’ 핵무장을 한다는 것이다. “핵무장을 추진하겠다”는 시원한 발언 뒤에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만드는 조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나 의원만의 특징도 아니다. 최근 나오는 핵무장 논의를 주의 깊게 보면, 대부분 이와 유사한 형태다.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선언적 발언은 크게 부각되는 반면, 함께 붙인 다양한 이름의 ‘조건’은 이해하기 어렵게 꼬아놓거나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식이다. 이유가 있다. 현재 제기되는 핵무장론 대부분은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는 불확실한 가정에 기반한다. 즉 ‘아니면 말고’식 시한부 주장을 하는데 세부사항까지 촘촘히 고려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핵무장에 관한 건전한 논의를 막는다. 찬성하는 쪽은 ‘문제없이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반대하는 쪽은 ‘우스갯소리’로 치부해 버리는 식이다. 그런데 조금만 따져보면 핵무장의 필요성, 실현 가능성은 선언적 수사에 휘둘릴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한국의 핵무장 논의에는 뿌리 깊은 역사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박정희 정부 당시 핵무장 논의다.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대외 군사개입에 한계를 느낀 미국은 1969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정책 전환을 시도한다. 핵심은 ‘한국 안보의 한국화’다. 미군에 안보를 의존하던 아시아 각국은 향후 당면한 위협에 스스로 대처하라는 것이다. 단, 이때도 핵 위협에 대한 핵우산은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이 직면한 위기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였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안보 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핵무기 개발을 들고나왔다.
당시 결정이 실제 핵무장에 초점이 맞춰졌느냐, 협상의 지렛대였느냐를 두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다만 그 결과는 박정희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사일 개발에 전념하면서 양국 간 치솟던 갈등이 완화됐다는 것이다. 1975년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은 그 증표로 남았다. 북한의 위협 증가, 미군 철수 위협 등의 대외관계 변화 속에 시작된 핵무장 시도는 미국의 핵 비확산 기조에 동조하며 끝났다.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한국의 핵무장 주장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북한의 위협증가로 이어지는 대외정세 변화, 주한미군 철수로 인한 안보위기가 명분이다. 나 의원의 핵무장 주장 역시 “북핵은 고도화되고 있으며, 북·러 협력 등 국제정세도 대한민국 안보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로 시작한다. 문제는 1960~1970년대는 눈앞에 당면한 위기에 대한 대처였다면, 2024년의 위협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점이다. 즉 만성적인 북핵 위협을 차치하면 아직 눈앞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반면 핵무장으로 가는 길은 5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길이 됐다.
실제로 핵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나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 뒤 주한미군 철수 혹은 한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것, 또 다른 하나는 국민이 NPT 탈퇴 및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을 정확히 인지하고 정부를 믿고 이 기간을 버티는 것이다. 이중 후자는 핵무장을 주장하는 정치인 중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는 핵무장 주장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 전략센터장에게 물었다.
정 센터장 역시 핵무장은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핵무장에 필요한 조건 자체가 달라진다”며 “이 경우 자체 핵무장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다는 첫 번째 가정하에 2기 행정부 구성에 관한 두 번째 가정이 붙는다. 미국 정부가 우선주의(고립주의)를 주장하는 인물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 센터장이 주목하는 두 인물은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부 장관 대행,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다. 정 센터장은 “두 사람 모두 미국의 국방비 지출을 과도하다고 보고, 해외 주둔 미군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한국의 자체 핵 보유에 대해서도 열린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트럼프 2기 내각에 다수 입각한다는 가정하에 세 번째 가정이 붙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추진하거나 이와 관련한 비용을 한국 정부에 전부 청구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기본 가정이다.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다. 한국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방위비 분담금에 관한 협상을 하거나 자체 핵무장을 하는 것이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핵무장론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 단계를 지나면서 정 센터장과 보수 정치인의 핵무장 주장이 여전히 같은 궤도에 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정치인 중 예상되는 문제에 관해 언급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핵무장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NPT 탈퇴와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부과될 국제사회 제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만 승인하면 끝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유엔안보리 제재와 관련해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중국이나 러시아, 이에 동조하는 세력의 독자 제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미국이 ‘핵 비확산’ 기조를 깨고 한국만 특별 승인할지도 불분명하다. 한국의 주변국 역시 핵무장을 요구하는 ‘핵 도미노‘ 현상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에 정 센터장은 이스라엘의 핵무장 과정을 따를 것을 충고한다. 핵에 관한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아님) 방식을 통해 제재를 최대한 경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 방식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만약 한국의 핵무장이 시작된다면 국민의힘 당론으로 공개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핵무장의 안보효과도 따져봐야 한다. 핵무장의 기본 가정은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 요구에서 시작한다. 이는 역으로 핵무장이 주한미군 완전 철수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확장억제 등이 약화하는 방향이다. 지난 3년, 한·미 안보협력 강화를 최대 성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와도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게다가 핵은 안정-불안정의 역설을 만든다. 핵을 보유한 국가끼리는 핵전쟁을 피하는 ‘안정성’이 나타나지만, 국지 도발과 같은 제한적 도발은 오히려 증대되는 ‘불안정성’이 초래된다는 의미다. 안보상 역설은 이뿐만이 아니다. 핵 도미노 효과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는 주변국 모두가 핵을 보유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안보가 강화된 것이 맞는지 근원적 의문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핵무장에 필요한 비용과 핵실험, 무기 보관 등에 사용할 장소 문제다. 예를 들어, 나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을에 핵무장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할 것이냐다. 원자력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짓는 것조차 극렬한 반대에 직면한다. 선거를 앞두고 핵무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 예상되는 문제의 해결책도 함께 발표돼야 한다. 하지만 핵무장 주장 외에 예상 문제를 언급한 사례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핵무장을 국민의힘 당론으로 채택한다는 것은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국과 직접 합의한 ‘워싱턴 선언’을 뒤집겠다는 의미냐”며 “미국이 ‘핵무장해라, 대신 주한미군은 전부 뺀다’고 해도 정치권이 기존 주장을 유지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핵무장 주장은 대통령 선거가 아닌 여당 당대표 선거에서 나오고 있다. 실현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설익은 논의로 핵무장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정당이 감당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정치는 가능성의 예술이다. 불가능해 보인 일이 현실이 되고, 당연해 보인 일이 공상이 된다. 정치적 이상, 목표란 이름으로 포장된 ‘가능성’의 영역에서 이성적, 논리적 판단은 후순위로 밀린다. 속고, 속이고, 속아주는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설사 불가능해도 지지층이 원하는 대로 말하는 것’이다. 실현 가능성에 대한 비판은 부당한 ‘정치 공세’로 치부한다. 선거 때면 ‘가능성의 예술’ 외엔 설명할 길 없는 공약이 난무하는 것 역시 해당 맥락의 연장선에 있다.
이러한 가능성의 영역에 특화된 소재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주기적으로 다시 제기된다는 점, 구체적 계획보다 선언적 수사가 앞선다는 점 등이다. 전제에, 전제에, 전제가 완벽히 맞아떨어져야 실현 가능하다는 것 역시 공통적이다. 역설적으로 이는 매번 불가능한 것으로 결론 나는 소재가 잊을 만하면 부활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러 전제 중 하나만 새롭게 충족해도 가능성의 영역에서 다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정치에서 이를 보여주는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국민의힘 당권 경쟁 과정에서 나오고 있는 ‘핵무장’론이다.
핵무장과 당대표 선거
“6·25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핵무장을 해야 합니다”. 여당의 유력 당권주자로 꼽히는 나경원 의원이 지난 6월 25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이다. 지난 7월 1일에는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핵무장 3원칙, 대한민국 안보의 새로운 비전’이라는 주제로 토론회도 열었다. 나 의원은 이 자리에서 “당대표가 되면, 핵무장 3원칙을 당론으로 채택하고 핵무장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핵무장을 자신만의 차별화된 공약으로 만들며 가능성의 영역으로 끌고 들어온 것이다.
사실 핵무장은 보수를 표방하는 정치인이라면 누구든 탐낼 수밖에 없는 소재다. 이는 남북관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대북 강경책→북한과의 갈등 증폭→핵무장 추진’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순환구조를 이룬다. 이 구조는 그 자체로 지지층 결집을 만든다. 남북대결로 안보위협이 증가한 만큼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 자체에도 논리적 결함이 없다. 다만 ‘주한미군과의 공존’, ‘국제사회 제재 가능성’, ‘핵무장에 필요한 비용 및 장소’, ‘동아시아의 핵도미노 현상’ 등 핵무장 시 반드시 따져봐야 할 요소들을 언급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핵무장이 매번 정치적 레토릭(수사)에서 끝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 의원의 핵무장 주장도 유사한 맥락에 있다. 그가 밝힌 방식은 ‘자체 핵무장’이다. 미국 전술핵의 한반도 재배치나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식의 핵 공유와는 차원이 다르다. 쉽게 말해 한국이 완전한 핵보유국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밝힌 3원칙은 ‘국제정세를 반영한 핵무장’, ‘평화를 위한 핵무장’, ‘실천적 핵무장’이다. 그런데 해당 원칙을 다르게 표현하면 이는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미국을 포함한 국제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고’, ‘북한과의 핵군축을 포함한 평화협상이 가능하고’, ‘확장억제를 안보의 기반으로 한 윤석열 정부를 움직여서’ 핵무장을 한다는 것이다. “핵무장을 추진하겠다”는 시원한 발언 뒤에는 실현 가능성에 의문을 만드는 조건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것이다.
이는 나 의원만의 특징도 아니다. 최근 나오는 핵무장 논의를 주의 깊게 보면, 대부분 이와 유사한 형태다.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선언적 발언은 크게 부각되는 반면, 함께 붙인 다양한 이름의 ‘조건’은 이해하기 어렵게 꼬아놓거나 언급 자체를 하지 않는 식이다. 이유가 있다. 현재 제기되는 핵무장론 대부분은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는 불확실한 가정에 기반한다. 즉 ‘아니면 말고’식 시한부 주장을 하는데 세부사항까지 촘촘히 고려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행태는 핵무장에 관한 건전한 논의를 막는다. 찬성하는 쪽은 ‘문제없이 핵무장을 할 수 있다’고 믿고, 반대하는 쪽은 ‘우스갯소리’로 치부해 버리는 식이다. 그런데 조금만 따져보면 핵무장의 필요성, 실현 가능성은 선언적 수사에 휘둘릴 만큼 이해하기 어려운 수준이 아니다.
핵무장의 전제조건
한국의 핵무장 논의에는 뿌리 깊은 역사가 있다.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박정희 정부 당시 핵무장 논의다. 베트남 전쟁을 거치며 대외 군사개입에 한계를 느낀 미국은 1969년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며 정책 전환을 시도한다. 핵심은 ‘한국 안보의 한국화’다. 미군에 안보를 의존하던 아시아 각국은 향후 당면한 위협에 스스로 대처하라는 것이다. 단, 이때도 핵 위협에 대한 핵우산은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이 직면한 위기는 주한미군 철수 문제였다. 당시 박 전 대통령은 안보 공백에 대한 대안으로 핵무기 개발을 들고나왔다.
당시 결정이 실제 핵무장에 초점이 맞춰졌느냐, 협상의 지렛대였느냐를 두고는 해석이 엇갈린다. 다만 그 결과는 박정희 정부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미사일 개발에 전념하면서 양국 간 치솟던 갈등이 완화됐다는 것이다. 1975년 한국의 핵확산금지조약(NPT) 가입은 그 증표로 남았다. 북한의 위협 증가, 미군 철수 위협 등의 대외관계 변화 속에 시작된 핵무장 시도는 미국의 핵 비확산 기조에 동조하며 끝났다.
반세기가 훌쩍 지났지만 한국의 핵무장 주장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여전히 북한의 위협증가로 이어지는 대외정세 변화, 주한미군 철수로 인한 안보위기가 명분이다. 나 의원의 핵무장 주장 역시 “북핵은 고도화되고 있으며, 북·러 협력 등 국제정세도 대한민국 안보에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로 시작한다. 문제는 1960~1970년대는 눈앞에 당면한 위기에 대한 대처였다면, 2024년의 위협은 아직 도래하지 않은 위협에 대한 선제적 대응이라는 점이다. 즉 만성적인 북핵 위협을 차치하면 아직 눈앞에 보이는 변화는 없다. 반면 핵무장으로 가는 길은 50여 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길이 됐다.
실제로 핵무장을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하나는 미국에서 트럼프가 재집권한 뒤 주한미군 철수 혹은 한국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것, 또 다른 하나는 국민이 NPT 탈퇴 및 핵무기 개발로 인한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을 정확히 인지하고 정부를 믿고 이 기간을 버티는 것이다. 이중 후자는 핵무장을 주장하는 정치인 중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현재 정치권에서 나오는 핵무장 주장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정성장 세종연구소 한반도 전략센터장에게 물었다.
정 센터장 역시 핵무장은 ‘트럼프가 재집권한다’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한다면 핵무장에 필요한 조건 자체가 달라진다”며 “이 경우 자체 핵무장은 어렵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한다는 첫 번째 가정하에 2기 행정부 구성에 관한 두 번째 가정이 붙는다. 미국 정부가 우선주의(고립주의)를 주장하는 인물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 센터장이 주목하는 두 인물은 크리스토퍼 밀러 전 국방부 장관 대행, 엘브리지 콜비 전 미 국방부 전략·전력 개발 담당 부차관보다. 정 센터장은 “두 사람 모두 미국의 국방비 지출을 과도하다고 보고, 해외 주둔 미군을 축소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한국의 자체 핵 보유에 대해서도 열린 입장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과 같은 생각을 가진 인물들이 트럼프 2기 내각에 다수 입각한다는 가정하에 세 번째 가정이 붙는다. 트럼프 행정부가 실제로 주한미군 철수 혹은 감축, 한·미연합훈련 축소를 추진하거나 이와 관련한 비용을 한국 정부에 전부 청구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기본 가정이다. 진짜 문제는 다음부터다. 한국에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와 방위비 분담금에 관한 협상을 하거나 자체 핵무장을 하는 것이다. 후자를 선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것이 핵무장론자들의 생각이다. 그런데 이 단계를 지나면서 정 센터장과 보수 정치인의 핵무장 주장이 여전히 같은 궤도에 있는지가 불분명해진다. 핵무장을 주장하는 정치인 중 예상되는 문제에 관해 언급한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핵무장의 손익계산서
핵무장을 위해서는 가장 먼저 NPT 탈퇴와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부과될 국제사회 제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미국만 승인하면 끝이라는 주장도 있다. 이는 유엔안보리 제재와 관련해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다만 중국이나 러시아, 이에 동조하는 세력의 독자 제재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게다가 미국이 ‘핵 비확산’ 기조를 깨고 한국만 특별 승인할지도 불분명하다. 한국의 주변국 역시 핵무장을 요구하는 ‘핵 도미노‘ 현상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이에 정 센터장은 이스라엘의 핵무장 과정을 따를 것을 충고한다. 핵에 관한 NCND(Neither Confirm Nor Deny·긍정도 부정도 아님) 방식을 통해 제재를 최대한 경감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이 방식은 국민의힘 당대표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만약 한국의 핵무장이 시작된다면 국민의힘 당론으로 공개적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핵무장의 안보효과도 따져봐야 한다. 핵무장의 기본 가정은 트럼프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주한미군 감축 혹은 철수 요구에서 시작한다. 이는 역으로 핵무장이 주한미군 완전 철수의 명분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주한미군의 인계철선, 확장억제 등이 약화하는 방향이다. 지난 3년, 한·미 안보협력 강화를 최대 성과로 내세운 윤석열 정부의 국정기조와도 정확히 반대 방향이다. 게다가 핵은 안정-불안정의 역설을 만든다. 핵을 보유한 국가끼리는 핵전쟁을 피하는 ‘안정성’이 나타나지만, 국지 도발과 같은 제한적 도발은 오히려 증대되는 ‘불안정성’이 초래된다는 의미다. 안보상 역설은 이뿐만이 아니다. 핵 도미노 효과는 한반도를 둘러싸고 갈등하고 있는 주변국 모두가 핵을 보유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는 안보가 강화된 것이 맞는지 근원적 의문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핵무장에 필요한 비용과 핵실험, 무기 보관 등에 사용할 장소 문제다. 예를 들어, 나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동작구을에 핵무장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할 것이냐다. 원자력발전소, 사용후핵연료 처분장을 짓는 것조차 극렬한 반대에 직면한다. 선거를 앞두고 핵무장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 정도 예상되는 문제의 해결책도 함께 발표돼야 한다. 하지만 핵무장 주장 외에 예상 문제를 언급한 사례는 지금껏 찾아볼 수 없다.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핵무장을 국민의힘 당론으로 채택한다는 것은 여당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4월 미국과 직접 합의한 ‘워싱턴 선언’을 뒤집겠다는 의미냐”며 “미국이 ‘핵무장해라, 대신 주한미군은 전부 뺀다’고 해도 정치권이 기존 주장을 유지할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핵무장 주장은 대통령 선거가 아닌 여당 당대표 선거에서 나오고 있다. 실현 가능성을 차치하더라도 설익은 논의로 핵무장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정당이 감당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김찬호 기자 flyclos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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