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레이서 외국인 개발자가 ‘칸막이 연구소’ 바꿔
현대차·기아의 혁신을 이끌고 있는 연구·개발(R&D) 조직은 2018년 알버트 비어만이 연구개발본부장(사장)이 되면서 변화가 시작됐다는 이야기가 많다. 비어만은 그룹에서 외국인이 연구개발본부장에 오른 첫 사례였다. BMW그룹에 입사해 약 30년간 고성능차를 개발했던 그는 2015년 정의선 회장의 삼고초려로 현대차에 합류했고, 고성능 브랜드 N을 출범시켰다. 현대차 고성능차를 세계적 모터 스포츠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도록 이끌고, 전체 차종의 주행 성능과 상품성을 크게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구개발본부장을 맡은 비어만은 철저하게 ‘현장 중심’이라는 철학을 지켰다. 수시로 연구원들과 같이 차를 타고 남양연구소 내부 트랙을 돌며 임원급이 아니라 실무진의 의견을 들었다. 불필요한 보고도 최소화했다. 2018년 당시 기준 남양연구소 직원들이 소속된 단위는 맨 아래인 ‘그룹’부터 시작해, 파트·팀·실·센터·R&D 본부로 구성돼 있었다. 단위마다 매주 회의가 있었고, 매번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다. 비어만은 이를 2주에 한 번으로 줄였다. 차라리 “연구를 더 하라”는 취지였다. 임원 전용 식당도 없애며 수평적인 연구소 분위기를 조성했다.
카레이서 자격증을 갖고 있는 비어만은 취미가 드라이빙이었다. 실제 카레이서처럼 차를 몰고 분석할 줄 아는 실력에 남양연구소 연구원들도 비어만 사장을 인정했다고 한다. 19년 차 한 연구원은 “자기 성이 비어만이라 직원들이 ‘맥주(beer·비어)만’이라고 놀린다는 걸 알고, 직원 동호회 행사에 맥주 1만cc를 보낸 적도 있다”며 “계약직 비서 직원이 자기가 결혼할 때 외국인 직장 상사인데도 주례를 서달라고 요청할 정도였다. 연구소 역사상 비슷한 사람 조차 없었던 형태의 리더”였다고 했다.
2018년 내부 임직원들에게 메일을 보내 톱다운 문화, 근시안적 사고 등을 솔직하게 충고했던 비어만은 2021년 12월 퇴임 당시 지속적인 변화를 강조하는 메일을 보내면서 “연구소 인재들이 힘을 모은다면 우리 모두 최고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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