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정원] 내 이름이 ‘펌글’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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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글 쓰고 강의하며 살아왔다.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 보았더니 맨 마지막에 필자인 내 이름 대신 '펌글'이라고 쓰여 있다.
내가 펌글이라고? 처음에 이 글을 보았을 때는 분명히 밑에 내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아내에게 이 펌글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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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생 글 쓰고 강의하며 살아왔다. 방송도 오래했고 대학교에도 있었고 공직에도 있었지만 늘 하는 일은 글 쓰고 강의하는 일이다. 이게 나의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보람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내 강의를 듣고 새로운 눈을 뜨게 됐다는 분도 있고 운명이 바뀌었다는 분도 계시니 큰 기쁨이 아닐 수 없다. 나 또한 강의를 통해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되어 내 삶이 더 건강해지고 윤택해졌다. 나는 이를 강연(講緣)이라고 부른다. 강의로 맺은 아름다운 ‘인연’이다.
강의를 잘하려면 자기만의 색채와 향기로 강의 콘텐츠를 만들어 내야 한다. 예술가가 독창성이 있어야 제대로 평가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글쓰기도 역시 많은 글을 읽고 사색하고 융합하고 새롭게 창조해야 자기 글이다. 이 과정은 산고(産苦)나 마찬가지다.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꿈속에서까지 씨름을 하기도 한다.
남의 글을 옮길 때는 출처를 밝혀야 하는 게 상식이다. 지식재산권 이전의 상식이고 매너다. 그런데 내가 쓴 글을 출처도 밝히지 않고 옮겨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내가 쓴 글을 통째로 베껴서 자기 이름으로 신문에 기고하거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리는 사람도 있다. 다행히 포털에 뜨는 글은 검색하면 곧바로 찾아낼 수 있다. 항의를 하고 지적을 하면 반응도 가지가지다.
“내용이 너무 좋아서 널리 알리려다 보니 이렇게 되었습니다.”
“그럼 남의 물건을 몰래 가져가고 나서 물건이 좋아서 그랬다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
오늘 아침 눈을 뜨고 나서 카톡방을 보니 내가 쓴 글이 올라와 있다. 반가운 마음으로 열어 보았더니 맨 마지막에 필자인 내 이름 대신 ‘펌글’이라고 쓰여 있다. 내가 펌글이라고? 처음에 이 글을 보았을 때는 분명히 밑에 내 이름이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굳이 이걸 빼고 글을 옮기다 보니 어디선가 퍼온 글 ‘펌글’이 되고 만 것이다. 이걸 이곳저곳으로 다시 퍼 나르다 보면 원래 글 쓴 사람이 누군지를 모르게 된다. 오죽하면 글 쓴 사람에게까지 ‘좋은 글’이라고 도로 날아오겠는가.
아내에게 이 펌글을 보여주었다. 위로의 말이라도 한마디 들을 심산이었다. 내 속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내는 아침 식탁을 차리며 싱글벙글이다. 식탁으로 오라고 부르는데 기가 막힐 소리가 들린다.
“펌글씨, 와서 식사하세요.”
이래저래 억울하기 짝이 없는 날이다.
식탁에 앉아 곰곰 생각해보니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글을 많이 쓰는 사람 이름이 떠오른다. 바로 ‘펌글’이란 사람이다. 어쩌다가 대한민국이 ‘펌글 천지’가 되었나. 그렇다고 밥 먹을 때 화를 내면 나만 손해다. 곧바로 감사기도를 드렸다.
“비록 펌글이라는 필명으로 읽힐지라도 제 글이 널리 퍼지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부디 세상에 도움이 되게 해주시옵소서.”
윤은기 한국협업진흥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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