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 대화” 이란 개혁파 대통령 당선… 앞길은 지뢰밭
‘히잡 단속 완화’ 공약 여성들 지지
“강경보수에 염증… 개혁진영의 승리”
“하메네이 절대 권력 속 운신폭 좁아”
“서방과의 대화 재개와 종교경찰 활동 축소로 표심을 잡았다.”
이란 중도 개혁파 대통령 후보인 마수드 페제슈키안(70)이 5일 치러진 대통령 보궐선거 2차 결선 투표에서 강경보수 성향의 사이드 잘릴리 후보(59)를 꺾었다.
페제슈키안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대선에 출마했던 후보 4명 중 유일한 개혁파였다. 당초 그는 보수 세력의 견제와 중도 개혁 진영의 소극적인 투표 참여로 당선이 어려울 것으로 점쳐졌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1차 투표에서 깜짝 1위에 올랐고, 기세를 몰아 결선 투표에서도 승리했다. 반서방주의, 근본주의 이슬람 정책 등을 강조해 온 알리 하메네이 국가 최고지도자와 보수 세력에 대해 이란 국민들이 강한 반대 목소리를 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서방과의 대화를 통한 경제 살리기와 종교경찰 활동 제한 등을 주장한 페제슈키안의 유연한 정책에 젊은층이 호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신정일치 국가 이란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권력 서열 1위로 외교안보 분야를 중심으로 주요 국가 정책을 결정하는 구조라 ‘권력 2인자’인 대통령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 많다.
● “강경보수 막으려 청년 여성 표 몰려”
이란 내무부는 6일 “페제슈키안 당선인이 결선 투표에서 1638만4000여 표(득표율 54%)를 얻어 당선됐다”고 밝혔다. 하메네이의 외교 책사로 외교장관을 지냈고, 이란에서 ‘정부 위의 정부’로 통하는 혁명수비대(IRGC)에서 군복무를 했던 잘릴리는 1353만8000여 표(44%)를 얻는 데 그쳤다. 국영 IRNA통신은 “당선인은 22일부터 다음 달 5일 사이에 취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페제슈키안 후보는 당선 확정 뒤 이란의 신정일치 정치체제 창시자인 루홀라 호메이니의 묘소를 찾으며 공식 행보에 나섰다.
2021년 취임했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은 5월 갑작스러운 헬기 추락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보궐선거로 치러진 이번 대선으로 이란에는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정부가 들어섰다. 2013∼2021년 대통령을 지낸 하산 로하니는 온건 개혁파로 분류된다.
페제슈키안은 “서방과 대화를 통한 핵 합의 복원” 공약 등으로 보수와의 차별화를 꾀했다. 또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히잡 의문사’ 이후 누적된 여성 인권 탄압에 대한 불만 완화를 위해 히잡을 단속하는 종교경찰의 활동 축소도 공약으로 내세웠다. 로하니 전 대통령과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1997년 8월∼2005년 8월 재임) 등 온건 개혁파 인사들의 지지도 이끌어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당선 확정 뒤 페제슈키안의 고향인 타브리즈와 테헤란에선 춤추며 환호하는 젊은 유권자가 다수 목격됐다. 미 뉴욕타임스(NYT)는 “몇 년간 소외됐던 개혁 진영의 큰 승리”라며 “잘릴리의 당선을 막기 위해 투표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청년과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고 전했다.
● “개혁 추구하는 그의 앞길은 지뢰밭”
민심은 페제슈키안을 택했으나, 이란의 내정이나 대외 정책 등에 큰 변화가 나타나는 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비롯해 이란의 핵심 정치 요직은 대부분 보수 세력들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외교안보 분야에서는 최고지도자와 혁명수비대의 권한이 막강하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페제슈키안이 최고지도자의 뜻을 거스르진 못할 것”이라며 “특히 이스라엘에 대한 강경 노선을 바꾸기는 힘들다”고 내다봤다. 영국 가디언도 “페제슈키안의 개혁 앞엔 지뢰밭이 놓여 있다”고 진단했다.
이란 전문가인 미주리과학기술대의 메르자드 보루제르디 교수는 WP에 “보수 정치인들이 취임 첫날부터 모든 시도에 제동을 걸 것”이라고 분석했다.
최고지도자에게 수차례 충성을 맹세했고, 혁명수비대에 대해서도 지지 발언을 해 온 페제슈키안의 성향을 감안할 때 큰 변화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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