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선은 됐는데 마냥 웃을수 없네”…경제난·전쟁·트럼프에 ‘이 남자’ 가시밭길

김상준 기자(kim.sangjun@mk.co.kr) 2024. 7. 8.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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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파’ 페제키시안, 모두의 예상 깨고 깜짝당선
경제난 극복·히잡 단속 완화 등
샤이개혁·온건보수 지지 얻어
서방과 대화 물꼬 트일 전망
1인자 하메네이 전권 쥐고 있고
트럼프 당선땐 관계개선 ‘불가’
이스라엘과 신경전도 부담
이란 대선에서 승리한 마수드 페제시키안 [AFP = 연합뉴스]
경제난과 생활고, 탄압에 대한 반감과 울분이 이란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파 대통령을 탄생시켰지만, 신임 대통령 앞에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산적해 있다. 서방과의 관계 개선을 촉구할 수 있겠지만 실제 의사결정은 이란 최고지도자가 전담하고 있고,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미국과의 관계도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최고지도자 등 집권 세력이 선거 결과를 어느 정도는 감안해야 하기 때문에 ‘제한된 변화’는 기대할 수 있다는 평가다.

2005년 이후 19년 만에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는 이란 현지 매체와 외신들의 예상을 깨고 285만표 차이로 당선됐다. 1차 투표 이후 보수 성향 후보들이 2위 사이드 잘릴리 후보 지지 선언을 하는 등 보수 표심이 결집했지만 페제시키안 돌풍을 잠재울 순 없었다. 잘릴리 후보의 1차 투표 득표 수(947만표)에 3위 보수 후보 338만표만 합쳐져도 페제시키안 후보(1041만표)는 패배할 전망이었다.

1차 투표 결과를 보고 ‘샤이 개혁’ 성향의 국민들이 투표장에 나왔고, ‘온건 보수’ 성향 국민들도 페제시키안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1차 투표율은 이란 대선 이래 가장 낮은 39.9%를 기록했는데, 결선 투표는 이보다 약 10%포인트 높은 49.8%로 집계됐다.

이란 전문가인 메르자드 보루제르디 미국 미주리 과학기술대 학과장은 워싱턴포스트(WP)에 “서방에 적대적인 잘릴리는 많은 유권자들에게 ‘구시대의 엄격한 이념가’로 여겨졌다”며 “이에 반해 페제시키안은 온건 보수파와 개혁파 모두에게 지지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서방과의 관계 개선, 미국과의 핵 합의(JCPOA) 복원,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기준 이행, 히잡 단속 완화 등 공약을 내걸었다. 강경 성향 대선 후보들과 명확히 구별되는 정치 지향이었다.

이란 경제는 지난 50여 년에 걸친 미국과 유럽의 경제 제재로 파탄 지경이다. 코로나 팬데믹은 생활고에 기름을 부었다. 최근 10년 동안 달러 대비 환율은 20배 뛰었고, 인플레이션은 연 50%에 달했다. 청년 실업률은 20%를 앞두고 있다. 그럼에도 2021년 집권한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은 강경 보수 일변도의 정책을 유지했다.

보수 세력에 대한 반감은 최근 ’히잡 시위‘로 정점에 다다랐다. 지난 2022년 22세 여성 마흐사 아미니는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 갔다가 사흘 만에 사망했고 이란에서는 전국적인 시위가 발생했다. 라이시 대통령은 강경 진압으로 대응했고, 시위대 551명이 사망했다.

이란 국민들의 변화에의 열망은 뜨겁지만 변화는 미온적일 전망이다. 이슬람 신정체제인 이란에서 대통령은 최고지도자에 이은 권력 서열 2위다. 국정 모든 분야의 최종 의사결정은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에 의해 이뤄진다. 게다가 페제시키안 후보는 하메네이에 대한 충성을 밝힌 바 있다. 이란이 간접적으로 중동 분쟁에 참여하고 있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그는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의 군사 조직인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대한 지지도 밝혔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페제시키안 후보가 서방과의 관계 재정립을 위해 주창한 핵심 공약인 핵 합의 복원은 실행하기 어렵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전임 버락 오바마 정부와 이란의 하산 로하니 정부가 타결한 양국간 핵 합의를 2018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초강력 제재를 동원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하메네이 최고지도자 등 이란의 실질적 집권 세력이 이번 대선 결과를 아예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다.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페제시키안을 활용해 서방 제재를 완화하는 전략을 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서방은 이란 핵 프로그램이 확대되고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 예멘 후티 반군의 도발이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페제시키안을 도울지 강력한 제재를 유지할지 판단을 내려야 하게 됐다”고 전했다.

AP통신은 외교 부문에서 해외 국가들이 처음 접촉하는 인물이 페제시키안 차기 대통령인 만큼 일정 부분 분위기가 누그러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AP는 “비록 하메네이가 외교에서도 최종 결정권자이지만 페제시키안은 외교 정책 노선을 서방과의 협력 방향으로 기울일 수는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 중동에서 이란과 패권 경쟁을 펼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실권자 무함마드 빈살만 왕세자는 페제시키안 후보에게 보낸 당선 축전에 “양국과 국민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관계를 발전시키고 심화시키고 싶다”고 밝혔다.

미국은 페제시키안 후보의 당선을 평가절하했다. 이란에 대한 신중론이자 페제시키안 후보를 자극하기 위한 전략으로도 풀이된다. 미 국무부는 이날 AP 등에 “이란 정책은 최고지도자가결정한다”며 “이란이 근본적으로 방향을 바꾸거나 인권을 더 존중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란이 미국의 이익을 진전시킬 때 이란과 외교를 추구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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