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등진 정부는 필패”... 프랑스·영국·이란 선거 보니

파리/정철환 특파원 2024. 7. 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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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치러진 이란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에서 당선된 마수드 페제시키안 전 보건장관이 6일 수도 테헤란에 있는 이란 초대 최고지도자 루홀라 호메이니의 영묘(靈廟) 인근에서 승리를 뜻하는 브이(V)를 손가락으로 표시하고 있다. 그는 미국 등 서방과의 대화 확대를 통한 경제난 돌파를 공약으로 걸었다./EPA 연합뉴스

지난 한 주간 프랑스·영국·이란에서 잇따라 치러진 선거를 통해 “민생에 실패한 정부는 필패한다”는 정치의 오랜 명제가 다시 한번 증명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프랑스에선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중도 여당이 극우 성향 국민연합(RN)에 패배했고, 영국에선 보수당의 14년 장기 집권이 역대 최악의 참패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슬람 공화국’이란 신정(神政) 체제 아래 정치적 자유가 제한된 이란에서조차 경제난 해소를 내세운, 사실상 무명의 개혁파 후보인 마수드 페제시키안(70) 전 보건장관이 대통령에 당선되는 대이변이 벌어졌다.

지난 4년여간 전 세계는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의 사태로 유례없이 큰 변화에 휩쓸렸다. 국제 무역에 지장이 초래되면서 공급망이 무너졌고 이후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최근 선거를 치른 프랑스·영국·이란은 인플레이션과 경기 침체에 사회적 불안까지 더해지며 국민의 불안이 특히 많이 누적된 나라로 꼽힌다. 집권 세력이 민생을 수습하기보다 당파가 추진해 온 ‘정치적 목표’에 더 집착했고, 결국 물가 상승과 경제난이 초래한 위기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결국 모두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지난달 30일부터 조기 총선을 치른 프랑스는 RN과 그 지지 세력이 1차 투표에서 33%를 득표해 마크롱의 집권 여당을 누르고 1위를 했다. 7일 결선 투표를 통해 원내 주요 정당 등극이 유력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2017년 집권 이후 경제·사회 개혁 정책을 추진했지만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했다.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고 근로시간 제한을 완화하는 한편 부유세 폐지, 법인세 인하 등 친기업 정책을 펼쳤다. 연금 고갈을 막고자 연금 개시 나이(정년)를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공공 부문 지출을 억제하는 재정 적자 축소에 나섰다.

‘국가를 위한다’는 마크롱표 개혁의 명분은 팬데믹과 전쟁으로 경제가 무너져 ‘먹고살기’가 더 급했던 국민에게 외면받았다. 경제난 와중에 난민과 불법 이민은 계속 늘어났고, 범죄율 상승과 이민자 폭동 등 사회적 불안까지 고조됐다. RN은 이런 민심의 흐름을 놓치지 않았다. 마크롱을 “유럽연합(EU)과 진보적 사고의 틀에 갇힌 엘리트주의자”라고 몰아세웠다. 그러면서 “이민 축소와 외국인 범죄자 추방, 프랑스의 이익을 앞세우는 정책으로 프랑스인의 삶을 개선하겠다”고 나서 유권자의 마음을 잡았다.

영국에서도 보수당의 오만이 철퇴를 맞았다. 코로나 봉쇄 기간 수차례 파티를 열고도 “몰랐다”고 거짓말한 보리스 존슨 총리의 ‘파티 게이트’로 보수당의 지지율이 30%대 초반으로 급락하며 처음으로 노동당에 역전됐다. 후임 리즈 트러스 총리가 들고나온 대규모 감세 정책은 물가 급등과 경기 침체, 의료 시스템 붕괴에 지친 국민이 아닌 당내 보수 강경파에 초점을 맞춘 것이었다. 보수당은 트러스의 실정(失政) 이후 지지율이 20%로 급락했고 결국 회복하지 못했다.

양인성

보수당이 주도한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2020년)는 무역 여건을 악화시켜 인플레이션에 기름을 부었다는 평가가 많다. 영국의 지난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6.8%로 세계 평균(5.8%)을 크게 웃돌았다. 결국 지난 4일 총선에서 보수당은 기존 의석의 3분의 1인 121석으로 몰락하며 412석을 획득한 노동당에 정권을 내줬다.

한편 5일 대통령 선거에서 개혁파가 ‘깜짝’ 당선된 이란은 핵 개발에 따른 수십 년간의 서방 제재로 경제가 파탄에 가까운 상태다. 미국 달러 대비 이란 리얄화의 환율은 최근 10여년간 약 20배로 상승(리얄화 가치 하락)했다. 지난 3년간 연 40% 안팎의 물가 상승률에 시달렸고, 식품 물가는 3년여 만에 약 2.5배 수준이 됐다. 청년 실업률은 20%에 달한다. 2021년 집권한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강경 보수 일변도 정책은 이란을 더 고립시켰고 경제난을 악화시켰다.

2022년 ‘히잡 시위(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여성이 의문사하면서 촉발된 시위)’가 전국적으로 확산하자 라이시 정부가 이를 유혈 진압하면서 국민의 불만은 더 커졌다. 유권자의 분노는 “서방과 관계 개선을 통해 경제난을 해결하겠다”고 약속한 개혁파 후보 마수드 페제시키안을 통해 분출했다. 1차 투표에서 1041만표를 얻어 결선에 진출한 페제시키안에게 이란 국민은 1638만표를 쏟아부었다. ‘민생 후보에게 그래도 희망을 걸어보겠다’는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소로 향하면서, 페제시키안은 결선 투표에서 1차 투표보다 무려 597만표(약 57%)를 더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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