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상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빠르게 흐르는 강가에 서 있는데 물에 빠진 사람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요. 강물에 뛰어들어 그를 물가로 끌어올린 다음 인공호흡을 하죠.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다시 도움을 요청하는 외침이 들려요. 또다시 강에 뛰어들어 구조하고 인공호흡을 하는데, 그가 숨을 쉬기 시작하자마자 또 다른 구조 요청이 들립니다.
그래서 다시 강으로 들어가 손을 뻗고, 잡아당기고, 인공호흡을 하고, 숨을 쉬게 하고, 또다시 구조 요청, 이게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어요. 저는 뛰어들어 사람들을 끌어내고 인공호흡을 하느라 너무 바빠서 상류에서 누가 사람들을 밀어 넣고 있는지 알아볼 시간이 없어요.”
지역사회 활동가 사울 알린스키 혹은 의료사회학자 어빙 졸라가 들려준 우화라고 한다. 그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눈앞에 벌어진 문제 대응에 급급하다 보니 근본적 문제를 다루기 어렵다는 딜레마, 그리고 상류에서 벌어지고 있는 근본적 문제를 찾아 해결하지 않으면 비슷한 희생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비판을 드러낸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상황 그대로이다.
지난 6월24일, 경기 화성시 (주)아리셀 리튬배터리 제조 작업장의 화재 사고로 23명이 사망했다. 이 중 20명은 하청업체 ‘메이셀’ 소속이었고, 그중에서도 18명은 이주노동자였다.
사고 후 원인 분석이 잇따랐다. 폭발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대량으로 작업 공간에, 그것도 출구 쪽에 쌓아놓아 탈출을 가로막는 등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 리튬전지의 열폭주는 일반 소화기로 대응할 수 없는데 특수 소화 설비를 갖추지 않았고, 노동자들이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이런 분석에 따르면 재발 방지책은 자동으로 나온다. 설비를 잘 갖추고, 안전교육을 잘하고, 노동자들이 안전수칙을 제대로 지키기만 하면 된다. “참 쉽죠!” 그런데 이상하다. 이 쉬운 답을 왜 맞히지 못하는 것일까? 왜 어디서 본 듯한 비슷한 사고가 계속해서 반복되는 것일까?
2008년 1월, 경기 이천시에 건축 중이던 코리아냉동 물류창고의 화재 사고로 40명이 사망했다. 당시 절반 이상이 임시 노동자였고 13명은 이주노동자였다. 2020년 4월, 역시 이천시의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건축 현장에서 화재가 발생해 38명이 사망했다. 모두 하청 노동자였다.
화염과 유독가스가 노동자들의 근로계약서와 여권을 일일이 살펴본 후에 공격하는 것도 아닌데, 사고 희생자의 대부분은 불안정 노동자, 이주노동자들이다.
김위상 의원(국민의힘)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사고성 산업재해로 사망한 노동자는 총 812명, 그중 10.4%인 85명이 이주민이었다. 올해 3월까지의 사망자 213명 중에서는 24명으로 11.2%에 달했다. 국내 취업자 중 이주노동자 비중은 3.2%에 불과하지만 산재사망은 서너 배나 높다.
이번 사고를 보면 그 이유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피해 노동자들이 소속된 하청업체는 서류상 배터리 제조업체로 등록되어 있지만 사무실조차 없다. 대표가 스스로 밝혔듯 노동자들에게 작업 지시를 내리기는커녕 서로 얼굴을 본 적도 없다. 그날 그날 인터넷 구인광고를 통해 사람들을 모아 버스에 태워 아리셀에 보내는 ‘불법파견’이었던 것이다. 아리셀은 노동자 안전교육을 제대로 할 이유가 없다. 애초에 그걸 안 하려고 불법파견을 활용하고 ‘싼값에’ 일용직 이주노동자를 쓰는 것 아닌가. 그러니 리튬에서 아르곤, 메탄올로 위험물질이 바뀌고, 배터리 제조공장, 건설현장, 조선소, 비닐하우스로 작업 현장이 바뀌어도 희생자는 항상 비슷하다.
이쯤 되면 당장 팔을 걷어붙이고 강 상류로 뛰어 올라가야 한다. 위험의 외주화가 ‘국룰’이 된 노동시장 질서를 바꾸지 않는 한, 하류로 떠내려오는 엇비슷한 노동자들의 구조 요청을 계속해서 듣게 될 것이다.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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