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뒷것’과 ‘뒷패’
요즈음 화제가 되었던 단어가 하나있다. 보통은 잘 쓰지 않는 단어이고 그 뜻도 잘 알지 못하는 ‘뒷것’이다. 판을 짜는 사람이지만 앞으로 나서지 않아 무대에 선 사람들, 주연과 조연 단역들 모두를 빛나게 해주고 철저하게 그들에게 이익을 돌려주고 그들의 무대를 끝가지 지켜주며 결코 앞으로 나서지 않지만 ‘뒷것’이라 말 할 수 없다. 그러나 스스로 ‘뒷것’이라 하나 그 또한 누구도 함부로 ‘뒷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삶 자체가 결벽하니 누구도 무엇이라 말하지 못하는 것이다.
행사장이나 마당극에서 ‘뒷것’과는 언듯 비슷하나 무대에 서는 ‘앞것’과 다르게 드러나지 않는 존재는 ‘뒷패’이다. 마당판을 만들거나 마당극을 할 때 또는 어떤 행사에서 우리가 말하는 ‘뒷패’라는 말과 비슷한데 모방송사 다큐에서 김민기 선배의 학전이야기를 다루면서 자신을 일러 ‘뒷것’이라 하면서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김민기는 ‘아침 이슬’ ‘상록수’ 등을 만들고 부른 빼어난 아티스트이고 본인은 부인할지 모르지만 군부독재시대에 후배들에게 세상 보는 눈을 뜨게 한 선구자적인 선배였다. 우리 문화라고 할 만한 것이 없었을 때 탈춤 마당극 우리소리 등 민중문화운동을 선도한 문화운동 1세대라 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음반 수익을 털어 1991년 학전을 세운 뒤로는 아티스트가 아닌 기획자로 살아왔다. 그가 말하는 ‘뒷것’은 바로 무대에 서지 않고 무대에 조명을 받는 배우들과 가수들의 뒤에서 기획한 자신을 그는 스스로를 ‘뒷것’이라 칭했다.
학전은 말 그대로 배움의 밭이었고 모를 논에 심기 전에 모를 키우는 못자리였던 것이다. 지금 이름을 이야기하면 모두가 알만한 배우 가운데 이 못자리 학전에서 연극을 한 사람이 한 둘이 아닌 것만 봐도 그의 존재감을 알 수 있다. 그런 김민기는 평소 자신을 ‘뒷것’이라고 말한다. 학전에서 공연하는 배우나 가수들에게 “나는 뒷것이야. 너희들은 플레이어 앞것이고, 나는 스태프 뒷것이야”라며 스스로를 낮춘다. 아이돌 그룹을 키워서 돈을 벌면서 자신을 그들의 어머니라고 하면서 아이돌보다 더 나서는, 김민기가 말하는 ‘앞것’보다 훨씬 더 나대는 그런 ‘뒷것’이 많아 좌향기성(坐享基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번다)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한국 문화예술사에서 ‘앞것‘보다 더 빛나고 아름다운 ’뒷것‘이 아닐까. 그는 인간이 존중받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그 가치를 자신의 삶에서 결벽일 정도로 지켜왔기에 ‘앞것’‘뒷것’을 떠나 아름다운 것이다. 그는 언제나 공허한 소리로 외치거나 자신의 잣대로 남을 비난하지 않았다. 과거의 업적에 매달리지도 않았다.
누구나 ‘앞것’이 되고 싶고 모두가 ‘앞것’에 환호하는 시대이지만 묵묵히 자신의 역할을 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그런 이들이 있다.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저마다 역할을 하며 세상을 돌아가게 하는 주역들이 박수를 받을 때 세상은 훨씬 더 아름다워 질 것이다.
광안대교의 아름다움과 편리함 이런 ‘앞것’과 더불어 태풍이 불 때나 겨울 눈이나 비가오고 날씨가 추울 때 다리를 보수하고 안전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뒷패’, 화려한 공연이 끝나고 무대 위의 배우들도 객석의 관객도 다 돌아가고 나면 그때부터 또 다른 일이 시작되는 ‘뒷패’. 이런 ‘뒷패’의 이야기가 기억될 때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 배우를 어릿광대로 만들어 세워놓고 자기욕심만 채우는 어두운 그림자가 아니라 철저하게 그들의 길을 지켜주며 나서지 않는 ‘뒷것’이 많아 질 때 문화판도 아름다워 질 것이다.
“진보나 좌파를 말하는 것과 진보나 좌파로 사는 것은 다르다”고 홍세화 선생은 말했다. 어쩌면 가장 진보적인 존재가 ‘뒷것’이 아닐까. 뒷패 또한 판을 짜고 판을 진행하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판을 정리하는 사람이라 그들이 없이 판을 짠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지금도 그리운 얼굴들, 그리고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먼저 드는 얼굴들은 선배인 내가 판을 열 생각을 하고 얘기를 하면 엄청난 경험을 바탕으로 판을 짜고 진행했던 내 곁을 떠난 스스로 ‘뒷패’라 하면서 그 드러나지 않는 역할을 감당했던 ‘뒷패’들이다.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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