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칼럼] 부산항, 코끼리가 될 것인가, 기린이 될 것인가
항만의 컨테이너터미널에는 기린과 코끼리가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열심히 일하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갠트리 크레인은 풀을 뜯어 먹기 위해 코를 내린 코끼리와 같고, 일이 없이 서 있는 갠트리 크레인은 오지 않는 연인을 기다리면서 고개를 들고 있는 기린과 같다고 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이다. 기린과 코끼리 이야기는 일본의 고베항에서 시작되었다. 1995년 일본 경제의 한 축이던 고베항을 엄습한 대지진으로 항만 시설은 엄청난 피해를 보았다. 이를 계기로 고베항을 허브항으로 이용하던 우리나라 등 동아시아 화주들은 부산항을 허브항으로 이용하기 시작했고 지금은 글로벌 항만네트워크의 위상이 비교가 불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일본 항만당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문제를 더 어렵게 한 것은 현대화된 터미널이 개장하고 화물처리의 신속화 등으로 환적화물이 돌아올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찬 지역 정치인과 건설업계였다. 이들의 요구를 반영해 허브 항만의 지위를 되찾기 위한 특별한 대책도 없이 일본은 새로운 컨테이너 터미널에 계속 투자했다. 믿는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20개 이상의 원양 컨테이너선사가 경쟁하고 있었고 일본선사도 3개가 존재했기 때문에 일부 선사가 고베항에 기항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보았다. 하지만 신규로 개장한 컨테이너 터미널은 가장 많은 돈을 들인 낚시터로 전락했다.
그런데 2025년 부산항에도 고베항과 같은 위기가 찾아올지도 모른다. 해운시장을 선도해 온 머스크와 하팍로이드가 제휴한 제미니가 부산항을 유럽항로 모항에서 제외하고 말레이시아의 탄중팰리파스에서 환적하기로 발표했기 때문이다. 세계 선복량의 22%를 차지하는 제미니는 싱가포르 상하이 등 12개 항만을 핵심 허브항만으로 하고 나머지 항만에는 피더서비스를 실시하기로 했다. 핵심 허브항에는 초대형선이 중심이 된 모선이 기항하고 허브항에서 환적된 화물은 피더항으로 소형선박이 수송하게 된다. 허브항에서 피더항으로 위상이 변화하면 리드타임과 취급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화주들은 허브항을 전제로 한 직항서비스를 선호하게 된다. 제미니의 발표에 부산항이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따라 2040년까지 12조 원을 투입해 21개 선석을 개발 예정인 부산진해신항의 갠트리 크레인은 ‘코끼리’가 아닌 ‘기린’이 될 가능성도 있다.
1995년과 2025년의 세계 해운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1995년 컨테이너선은 5000TEU가 등장하기 시작했고 평균선형은 그보다도 적었다. 2025년은 2만TEU이상의 초대형선이 출현했고 이들 대부분은 유럽항로 가운데 한정된 항만에만 기항이 가능하다. 선사들은 상위 10개로 과점화되었고 기항항만 수를 줄이고 취항노선도 합리화하는 극단적인 허브앤드스포크전략을 실시하고 있다. 머스크가 소속된 2M은 지난 5년간 기항항만을 73개에서 63개로 축소했고 그 대상은 주로 유럽과 북미항만이었다. 이제 그 차례가 아시아의 부산항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부산항을 허브항으로 하고 피더항으로 전락한 일본은 국가 차원에서 허브항의 지위는 고사하고 모선의 기항 횟수를 늘리기 위한 대책을 수립하고 인센티브를 제시하고 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지금까지 부산항은 북중국과 일본 항만을 대상으로 한 저렴하고 신속한 환적서비스를 기반으로 동북아중심항만전략을 실시한 결과, 글로벌 10대 항만, 동북아 관문항이라는 성공스토리를 만들었다. 하지만 북중국항만에서 부산으로 수송한 컨테이너를 다시 탄종팰리파스로 재환적을 하는 것 보다 북중국항만에서 바로 탄종팰리파스로 수송하는 것이 비용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유리하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제미니를 대체할 글로벌 선사를 유치하고 제미니가 발표한 허브항보다 더 저렴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산항과 한국해운의 문제점을 혁파할 수 있는 정부와 부산항만공사를 비롯한 이해관계자의 통 큰 대책이 절실하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