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와 해운대, 부산 양대 온천…인기·수질 ‘백중세’
- 허심청으로 대표되는 동래온천
- 일제때 개발돼 지역 최고명소로
- 조금 늦게 각광받은 해운대 온천
- 관광·쇼핑 시너지로 이용객 급증
- 역사 1000년 넘는 부산 온천수
- 데우지 않아도 60~68도 뜨거워
- 다양한 스파 프로그램 개발·연계
- 목욕문화 되살려 상권부활 모색
예로부터 부산의 주요 온천이용 지역은 동래와 해운대로 양분돼 왔다. 개항 이후 일본인이 입탕식 문화를 들여온 것을 시작으로 1898년부터 동래온천이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1926년에는 목욕 시설을 갖춘 여관과 요정이 26곳에 이르면서 전국적인 온천명소로 이름을 떨쳤다. 해운대온천이 각광받은 건 이보다 조금 뒤다. 해운대 역시 1907년 전후로 근대식 온천이 생겨나기 시작했지만, 교통이 불편해 개발이 지지부진했다. 1930년대 초반까지도 규모가 동래온천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
해운대온천은 1935년 ‘해운대온천합자회사’가 대온천장·오락실·동물원 등이 포함된 온천 여관(일명 해운대온천풀)을 건립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일본 황족과 조선총독 등이 방문할 정도의 휴양지로 급부상하게 된 것이다. 동서대 권장욱(관광경영·컨벤션학과) 교수는 “1930년대 일본 철도성이 발간한 책자에서 한국 최고의 온천 11곳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이 모두 포함될 정도로 두 온천은 인기를 누렸다”고 설명했다.
부산 온천지는 해방 후에도 여전한 인기를 누렸다. 특히 1960~1970년대 들어서는 전국에서 손꼽히는 신혼여행지로 명성을 날렸다. 1967년부터 동래구 온천장을 지켜온 ‘만수온천’의 2대 대표인 이기희(62) 대표(한국온천협회 동래지회장)은 “벚꽃이 만발하는 계절이면 수학여행을 온 학생과 신혼부부로 온천숙소가 붐비곤 했다”고 회상했다.
▮동래·해운대 ‘온천이분지계’
‘이분지계’ 양상은 오늘날도 뚜렷하다. 2022년 기준 전국의 온천이용시설은 모두 575곳. 부산은 62곳으로 17개 시도 중 4번째다. 이중 동래온천이 16곳, 해운대온천이 15곳으로 부산의 절반을 차지한다. 이용객 면에서도 압도적이다. 2022년 부산지역 온천을 방문한 705만9000명 중 절반 이상(410만3000명)이 동래온천과 해운대온천을 찾았다.
두 온천의 ‘경합’은 백중세다. 같은 조사에서 동래온천을 찾은 손님은 185만4000명으로 나타난 데 견줘 해운대온천에는 224만9000명이 다녀가며 더 많은 손님을 모은 것으로 추산됐다. 다만 동래온천은 읍면동(동래구 온천동), 해운대온천은 그보다 상위인 시군구(해운대구) 단위로 집계됐다. 목욕이 관광·쇼핑 등 주변 상권과 연계해 방문객 유입이 많은 해운대가 점차 ‘목욕 세력’을 넓히고 있지만, 동래 역시 이에 밀리지 않는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동래온천의 대표 주자 ‘허심청’은 1991년 문을 연 이래 지금까지 약 2600만 명의 고객이 다녀갔다. 1300여 평의 면적에 40여 가지의 욕탕, 동시에 30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온천시설이다. 2011년 연재한 인기 웹툰 ‘목욕의 신’ 속 ‘금자탕’과 비슷한 모습으로 인터넷에서 화제를 불러모으기도 했다. 동래구 주민 박형윤(81) 씨는 “일본·필리핀에서도 온천을 즐겨봤지만 동래온천 수질이 가장 좋았다. 15년째 허심청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운대온천에서는 ‘클럽디오아시스’가 신흥강자로 떠오르고 있다. 스파·워터파크·찜질방 등 시설로 이뤄진 이곳에는 실내·외에서 즐길 수 있는 온천이 자리한다. 온천수는 최고온도 42도, 평균온도 38도. 지난 1월에는 부산 최초의 ‘국민보양온천’으로 지정됐다. 온도나 성분 등이 우수하고 주변 환경이 양호해 건강증진 등에 적합하다고 인정된 온천을 가리킨다. 지난해 7월 개장 이후 누적 관광객은 약 19만 명으로 추산된다.
▮보일러 필요없다… 펄펄 끓는 온천
두 온천은 유난히 뜨겁다. 최고온도가 동래온천이 68도, 해운대온천이 60도 수준이다. ‘온천’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다. 온몸을 감싸는 뜨뜻한 수증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뽀얀 물방울…. 부산온천의 인기 비결이다.
모든 온천이 부산온천처럼 뜨겁지는 못하다. 통념과 달리, 국내 대부분의 온천수는 ‘미지근한’ 물이다. 현행 온천법은 ‘지하로부터 솟아나는 섭씨 25도 이상의 온수’를 온천으로 정의한다. 행정안전부 ‘2023 전국 온천현황’을 보면 국내에서 이용 중인 온천공 560개 중 절반 (274개, 48.9%)은 25~30도의 저온형 온천이다. 흔히 우리가 떠올리는 45도 이상 고온형 온천은 126개(22.5%)에 불과하다.
두 온천은 생성 원리가 다르다. 온천은 크게 ‘화산성’과 ‘비화산성’으로 나눠진다. 화산이 없는 우리나라 온천은 비화산성으로 분류된다. 바다를 낀 해운대온천은 땅 아래에서 섞인 해수와 담수가 열원을 통해 데워지며 형성됐다. 반면 해안과 10㎞가량 떨어진 동래온천은 지하 암반 속에 갇혀있던 먼 과거의 바닷물이 금정산에서 기원한 담수와 만나 생겨났다. 두 온천을 끓인 열원은 암석 내 우라늄 등 자연방사성 물질이 붕괴할 때 생긴 열로 추정된다.
두 온천수를 사용하는 목욕탕은 보일러는커녕 물을 식히는 데 시간과 돈을 쓴다. 만수온천 이 대표는 “우리 목욕탕 펌프에서는 55도가 넘는 온천수가 나온다. 손님 목욕물로 쓰려면 한 김 식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1000년 온천수, 마르진 않을까
부산온천은 10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한다. 신라 제31대 신문왕 2년(682년)에 충원공이라는 재상이 동래온정에서 목욕했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남아있다. 해운대온천의 경우 천연두를 앓던 신라 제51대 진성여왕이 온천욕으로 병을 치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오랜 시간 사랑받아온 터라, 물이 동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역설적으로 제기되기도 한다. 2018년에는 동래온천 인근 대단지 아파트 착공을 앞두고 “온천수의 유출이나 수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번지기도 했다. 일본에선 점차 현실화하는 문제다. 2022년 11월에는 “온천에서 용출량 감소·온도 저하 등 이상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현지 보도가 나왔다.
실제 동래온천은 매년 수위가 내려가고 있다. 2018년 대한지질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동래온천 수위는 매년 약 1.11m씩 하강 중이다. 연구는 온천수 이용량이 높은 겨울철에는 온천수위가 하강하고 상대적으로 적은 여름에는 상승하는 양상을 보이는 만큼, 이용량이 늘수록 동래온천의 수위는 점점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온천학회 정찬호 학술부회장은 “지하 깊은 곳의 온천수가 데워지려면 수십 년에서 수백 년이 걸려 수질이나 온도에 즉각적인 변화가 나타나지는 않는다. 다만 온천수는 한정된 자원인 만큼 언젠가는 고갈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다시 기지개 펴는 부산온천
지난 3월, 109년간 유성온천을 지켜온 대전 ‘유성호텔’이 경영난 끝에 폐업했다. 온천업계 대불황을 표상하는 사건이다. 부산온천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앞서 2022년 허심청을 운영하던 호텔농심이 영업적자로 법인 청산절차를 밟았다. 농심 모성종 호텔사업부 팀장은 “개장 이래 꾸준히 90만 명 내외를 유지하던 허심청 연간 이용객 수가 팬데믹 시기 들어 40만 명 수준으로 50% 이상 급감했었다”며 “다행히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직전의 80% 수준으로 회복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분위기는 영세 목욕탕에서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만수온천은 코로나가 확산된 이후로 대중탕 영업을 중단했다. 이 대표는 “팬데믹 이후 손님 발길이 끊겨 지금은 개인·가족탕만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온천산업이 부활하기 위해서는 목욕시설 이상의 잠재력에 주목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권장욱 교수는 “팬데믹 이후 변화한 목욕문화로 인해 앞으로는 개인·가족 단위의 온천수요가 점점 커질 것”이라며 “온천의 의학적 효능이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있고 부산은 양질의 온천수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마사지·피부관리와 같은 웰니스 프로그램과 연계해 온천 콘텐츠를 개발한다면 부활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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