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귀환 [김연철 칼럼]

한겨레 2024. 7. 7.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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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6월28일 미국 버지니아주 체서피크에서 열린 선거 유세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연단으로 향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김연철 | 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

트럼프가 돌아온다. 아직 미국 대선 결과를 예측하기는 이르지만, 정치적 양극화의 현실에서 공화당 지지층의 결집이 민주당보다 강해 보인다. 세계는 트럼프의 귀환 가능성으로 분주해졌다. 많은 나라들이 트럼프 쪽과 접촉하려고 줄을 서면서도 변화에 대응하려는 예방 외교를 시작했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트럼프 현상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다.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 정치가 반이민의 역풍에 시달리듯이, 세계화의 역풍이 미국 정치를 흔들고 있다. 트럼프 진영은 1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집권계획을 밝혔는데, 그중에는 노숙자 캠프의 운영, 미등록 이민자의 대규모 추방, 공무원의 신속한 해고 등 과격한 방안들이 포함되어 있다. 내전 같은 대결의 정치가 더욱 심해질 것이다.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는 외교적으로 개입의 축소와 비용의 떠넘기기가 핵심이다. 1945년 2월의 얄타 체제는 완전히 끝났다. 얄타는 잠시나마 전쟁 이후의 희망을 대변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이 희망했던 지속 가능한 평화의 시대는 실현된 적이 없지만, 그래도 국제사회의 포기할 수 없는 명분이었다. 이제 얄타 체제의 결과물인 강대국의 협력을 통한 분쟁 관리의 시대가 끝났다. 미국이 빠져나간 공백은 전후 체제에 억눌려 있던 ‘역사의 복수’를 깨울 것이다. 기후변화에 대한 공동 대응도 어려워졌다. 국제기구의 역할도 줄어들고 기능이 마비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다시 살아나지 않을 것이다. 구질서의 붕괴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트럼프의 귀환이 붕괴의 속도를 올릴 것이다. 경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국내 정치적인 보호 무역은 세계적인 경기침체를 부를 것이다. 트럼프 진영은 모든 중국산 제품에 60% 이상, 유럽에 대해서도 10%의 관세를 매길 것이라고 예고했다. 지정학적 불안정과 보호 무역은 공급 불안과 물가 인상으로 이어져, 대외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트럼프는 외교를 비용으로 접근한다. 미국의 세금을 다른 나라의 안보를 위해 쓰지 않겠다는 것이며, 각자가 스스로 안보 비용을 부담하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동맹의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말은 그렇지만 실질적으로 동맹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는 버리는 것이 좋다. 워싱턴 안보전문가들의 의견이 아니라 공화당 주요 지지층의 평균적인 인식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는 1기와 달리 자신의 지지층을 분명하게 대변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의 한반도 정책은 어떨까? 일부에서 판이 흔들리는 혼란이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희망하지만 근거가 없다. 하필이면 윤석열 정부가 아닌가? 기회를 찾을 능력도 해법을 마련할 의지도 없는데 혼돈은 그 자체가 재앙이다. 작전통제권을 가진 미국의 상황 관리 능력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도 걱정스럽다. 과거 클린턴 시절의 통미봉남, 즉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협상할 가능성을 기대하는 의견도 있으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2019년 2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러 관계를 비롯한 북방의 질서가 달라졌다. 트럼프 2기가 복잡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조율할 능력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트럼프 진영은 국제사회의 개입 축소에도 불구하고 대중국 정책에 대해서는 공세적이다. 미-중 대결의 격화는 한반도에서 외교, 협력이 아니라 군사 대결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가 몰고 올 혼돈이 한국의 핵무장 기회가 되리라는 전망도 근거가 없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핵무기 비확산 체제는 구질서의 붕괴 과정에서도 마지막까지 강대국의 공동 이해로 남을 것이다. 아마도 트럼프 2기는 미국의 핵우산, 즉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에 대해 비용을 요구할 것이다. 대폭적인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하는 미국과 이에 반대하는 국내 여론 사이에서 정부가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비핵화는 멀어졌고, 핵무장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협상의 실패가 가져온 비관적 현실이다.

경쟁에 규칙이 없고, 이익 추구에 규범이 없는 혼돈의 시대다. 안개가 자욱할수록 방향이 아니라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이란 중간의 위치가 아니라 치우치지 않는 움직임이다. 신중하고 유연해져야 한다.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처럼 말이다. 대나무는 강한 뿌리, 튼튼한 줄기, 유연한 가지가 특징이다. 우리 외교는 국익이라는 뿌리가 약하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외교인가? 지금은 과거의 익숙한 방향이 아니라, 혼돈의 시대를 헤쳐갈 유연한 균형을 준비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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