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 식용 종식법을 ‘김건희법’이라 부르지 말라 [한겨레 프리즘]
이유진 | 오픈데스크팀장
지난달 23일 대통령실이 “별칭 ‘김건희법’이라 불리는 개 식용 종식법이 올해 2월 제정된 이후 윤석열 대통령에게 오던 외국인들의 민원 편지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밝힌 뒤 누리꾼들의 반응은 크게 세 갈래였다.
우선, 관련 내용을 다룬 한겨레 기사 제목대로 ‘낯 뜨거운 공치사’라는 반응이 가장 많았다. 두번째는 ‘김건희법이라길래, 김건희 특검법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달 13일 더불어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로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김건희 특검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정치권이 이 이야기로 한창 시끄러운데 갑자기 ‘김건희법’이라니 헷갈릴 만도 하다.
세번째는 ‘대통령실은 왜 ‘여사’를 안 붙이고 ‘김건희법’이라고 하느냐’는 반응이다. 지난 2월 국회의원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에스비에스(SBS) ‘편상욱의 뉴스브리핑’에서 ‘김건희 특검’을 언급하며 ‘여사’를 생략했다는 이유로 행정지도인 권고를 결정했다. 그런데 대통령실이 앞장서서 여사를 생략한다? 이 역시 누리꾼들이 헷갈릴 만하다.
이런 반응과 별개로, 나는 진심으로 김 여사가 개 식용 종식법에 자신의 이름이 붙는 걸 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8월 개 식용 종식을 촉구하는 동물보호단체 기자회견에 깜짝 방문했을 때도 김 여사는 ‘동물단체의 활동에 격려를 하고 싶다’며 참석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날 “불법 개 식용은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김 여사가 2000년대 이후 개 식용 종식을 위해 헌신한 동물보호단체들의 활동을 모를 리가 없다고 믿는다.
지면이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소개해보자면 동물보호단체들은 2014년 7월 중복날 보신탕을 즐겨 먹는 어르신들이 밀집한 서울 종로 탑골공원에서 수박과 얼음물을 나눠주며 “이제 개고기를 먹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 2017년 여름에는 개고기 시장을 24시간 무려 3개월 동안 감시한 적도 있었다. 개 식용에 관련한 기본 상식과 여러 정보를 담은 누리집을 만든 것도 동물보호단체였고, 불법 개 도살장을 급습해 죽음 직전의 개를 구조한 것도 이들이었다. 개 식용 종식법 제정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넣고, 세계 시민 88만여명의 서명을 모아 청와대에 전달했던 것도 동물보호단체들이었다.
2019년 8월11일 말복날 서울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개 식용 종식 촉구 집회에는 직접 취재를 나가기도 했다. 그날 어찌나 더웠던지 뜨겁게 달아오른 계단에 엉덩이를 1분 이상 붙이고 앉아 있는 일부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또 당시에는 개 식용 종식법 제정이 머나먼 미래처럼 느껴졌다. 그런데도 그날 집회에 참석한 시민 500여명은 “뜬장에서 물 한 모금 없이 도살 날만 기다리는 동물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고 한목소리로 외쳤다.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개 식용 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에서는 3살 때부터 엄마를 따라 집회를 다녔다는 초등학생이 시민 발언대에 올라 큰 호응을 받기도 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지금까지 여전히 개 식용 금지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제가 더는 집회에 나오지 않도록 법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었다. 누구 한명을 콕 집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이들의 노력이 이 학생의 소원을 이뤄줬다고 생각한다.
여론의 변화도 빼놓을 수 없다. 2000년만 해도 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10명 가운데 9명 가까이(86.3%)가 개 식용에 찬성했었다. 하지만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가 실시한 ‘2023 개 식용에 대한 국민인식조사’에서는 응답자의 93.4%가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없다고 답했다. ‘이제는 때가 됐다’는 동물보호단체들의 목소리가 맞았다.
그러니 개 식용 종식법은 ‘김건희법’이 아니다. “천재적 아부”(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를 할 게 아니라면 더는 쓰지 말 것을 권한다.
yj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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