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인] "다른 나무 죽인다" 낭설에 천대받는 산림녹화 일등공신

김재근 선임기자 2024. 7. 7.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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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시나무 오해·편견 그리고 진실
일제 때 들어온 '아카시아'라는 명칭으로 잘못 사용
온실가스 흡수·꿀 생산·목재 활용 등 이로운 품종
아까시나무는 꿀이 많이 나는 대표적인 밀원식물로 국내산 양봉 꿀의 74%가 아까시 꿀이다. 김재근 선임기자

"아까시나무에 대해 기사 좀 써주세요. 너무 하잖아요? 산림녹화의 일등공신이고 꿀도 엄청나게 선물하는데… "

얼마 전 본보에 꿀벌 실종을 다룬 기사가 나간 뒤 한 양봉농가로부터 걸려온 전화이다. 아까시나무를 쓸모 없는 나무로 여겨 홀대하고 마구 베어내는 게 말이나 되느냐는 것이다.

지금도 하천이나 도로, 논밭 주변에서 이 나무가 별 생각 없이 잘려나가는 게 현실이다. 생태나 환경, 경관적인 면에서 해로울 게 없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나쁜 나무'가 아닌데도 말이다.

이 나무는 이름부터 헛갈리게 한다. 일제 때 들어온 '아카시아'라는 명칭이 잘못 사용되고 있다.

아까시나무는 척박한 산성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나무로 햇빛을 아주 좋아하는 극양수에 속한다. 김재근 선임기자

□ '아까시'가 표준어, 아카시아는 전혀 다른 수종

'아까시'는 북미가 원산지로 일제 때 서울과 인천을 연결하는 경인선 철도변에 처음 심어졌다. 중국에서 들여와 철도공사로 토사가 드러난 곳에 심은 것이다. 콩과에 속하는 낙엽교목으로 흰 꽃이 피며 다 자라면 25m까지 큰다.

'아카시아'는 호주에 948종이나 자라고, 아시아 열대지역과 태평양 섬 등에도 분포한다. 사철 잎이 푸른 상록수이며 노란색 꽃이 핀다. 호주의 국화가 노란색 아카시아꽃이다.

아까시는 슈도 아카시아(pseudo acacia)와 펄스 아카시아(False acacia)로 불린다. pseudo와 False는 가짜 혹은 거짓이라는 뜻이다. 가짜 아카시아, 유사 아카시아라는 뜻이다. 우리나라는 가시가 있는 아카시아라는 의미로 '아까시'를 표준어로 정했지만 아카시아라는 이름이 계속 사용되고 있다. '과수원길'이라는 동요의 "아카시아꽃 하얗게 핀… "이라는 노랫말과 아카시아 껌 덕분에 '아카시아'가 국민들 뇌리에 깊게 새겨진 탓이다.

아까시나무 가시는 어릴 때는 길이가 2cm이지만 성장하면 1~2mm 정도로 작아진다.

아까시나무는 6.25 이후 우리 정부가 산림녹화를 하면서 전국적으로 널리 퍼졌다. 전쟁과 땔감용 나무 남벌로 황폐해진 산을 푸르게 하기 위해 아까시와 리기다소나무, 오리나무, 낙엽송, 미루나무, 플라타너스 등의 외래종을 심은 것이다.

아까시나무가 잘 정착한 것은 강인한 생명력 덕분이다. 이 나무의 뿌리에 붙어있는 뿌리혹박테리아는 공중의 질소를 고정시키는 능력이 있다. 굳이 질소비료를 주지 않더라도 헐벗고 메마른 땅에서 잘 자라는 것이다.

아까시나무 숲의 면적은 한때 30만㏊나 됐으나 현재는 3만6000㏊로 줄어들었다. 나무가 늙어 자연사하고 온난화 병충해로 말라 죽는 게 많아졌다. 특히 쓸모 없는 나무로 여겨 마구 베어버리는 게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손꼽힌다.

아까시나무는 콩과식물로 씨앗의 형태도 콩처럼 생겼다. 김재근선임 기자

□ 온실가스 흡수, 꿀 생산량 74%가 아까시꿀

아까시는 꽤 이로운 나무이다.

첫째, 온실가스 흡수능력이 매우 뛰어나다. 30년생 아카시아 숲 1ha당 연간 이산화탄소 흡수량이 13.8 CO₂톤이나 된다. 온실가스 흡수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상수리나무(14 CO₂톤/ha)와 비슷하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라는 아까시나무가 연간 약 250만 탄소톤(=917만 CO₂톤)을 저장한다고 한다. 승용차 약 380만 대의 온실가스를 흡수, 처리하는 것이다.

꿀 생산과 꿀벌을 통한 화분(꽃가루) 매개 기능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2004-22년 국내 벌꿀의 생산량 중에서 아까시꿀이 74%, 잡화꿀 18.4%, 밤꿀은 7.6%로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아까시나무 꽃이 양봉농가에 연 1000억원의 수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밤나무와 헛개나무, 피나무, 황칠나무, 유채, 옻나무, 벚나무, 때죽나무 등의 밀원식물이 있지만 아까시나무 꿀이 부동의 1위이다. 아까시꿀이 없으면 비싼 외국산 꿀을 수입해다 먹어야 할 것이다.

요즘은 꿀 생산 못지 않게 꿀벌에 의한 꽃가루(화분) 매개 기능을 매우 중시하고 있다. 꿀벌이 사과와 복숭아, 배, 자두, 수박, 참외, 딸기, 오이 등의 꽃을 옮겨 다니며 꽃가루를 수정해준 덕분에 열매가 맺힌다. 숲과 들의 식물도 벌 덕분에 열매와 씨앗을 맺고 종족 번식 기능을 유지하게 된다. 아까시 꽃의 풍부한 꿀이 벌의 삶을 도와 농업생산 및 자연생태계 유지에 큰 몫을 하는 것이다.

□ "다른 나무 전부 죽인다" 근거 없는 낭설

아까시나무가 산림녹화에 기여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연료림 채취로 황폐해진 민둥산을 비롯 철도와 고속도로, 산업단지 건설 현장에 심겨진 아까시는 빠른 속도로 푸른 숲을 만들었다. 장마철 많은 비를 흡수하여 홍수도 예방했다.

이러한 아까시나무를 홀대하고 무시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오해와 편견, 선입견이 멀쩡한 나무를 천덕꾸리기, 애물단지로 만든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나무가 번식력이 너무 강해 다른 식물을 죽여버린다고 여긴다. 아까시 나무 옆에는 소나무와 참나무, 때죽나무, 싸리나무, 버드나무 등의 토종나무가 자라지 못한다는 것이다. 아카시나무는 극양수로서 햇빛이 강한 곳에서는 잘 자라지만 숲이 어느 정도 우거지고 그늘이 드리우면 기를 펴지 못한다. 민둥산이나 황폐한 곳에 적합하고 오히려 숲 생태계가 안정된 곳에서는 밀려난다. 이런 이유로 토종식물을 위협하는 생태교란종에서 빠져있다.

아까시는 땅이 비옥해지면 다른 나무와의 경쟁에서 도태된다. 뛰어난 적응력과 왕성한 질소 고정 능력으로 척박한 땅을 기름진 토양으로 만들어놓고 퇴장하는 게 아까시의 일생이다.

수명도 원산지인 북미에서는 100년 정도이지만 한국에서는 대개 50~60년이 되면 고사한다. 50~70년대 산림녹화용으로 심은 아까시나무가 요즘 수명이 다하고 퇴화돼, 사라지는 이유이다.

아까시가 무덤을 침범하여 관 속까지 파고들어 간다는 것도 근거 없는 낭설이다. 이 나무는 오리나무나 낙엽송처럼 뿌리를 얕게 내린 채 사는 천근성 식물이다. 뿌리가 얕고 약해서 나무가 커지면 태풍이나 비바람에 잘 쓰러진다.

다만 이 나무는 줄기를 베어내도 잘 죽지 않는 특성이 있다. 성목을 베면 가지치기 효과로 옆으로 뻗은 뿌리에서 새순이 더 왕성하게 올라온다. 햇빛이 잘 드는 묘지 주변의 아까시나무를 제거하려면 밑둥이나 뿌리를 자르고 거기에 특수 성분을 가진 제초제를 발라주는 게 효과적이다.

단단하고 아름다운 아까시 집성목 합판.

□ 목재는 가구·장난감 제조에 … 사료로도 활용

아까시나무가 쓸모 없다는 것도 편견이다.

이 나무는 단단하고 휨강도가 높아 목재로서 가치가 꽤 있다. 국내에서는 아까시 목재를 별로 활용하지 않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바닥재와 가구, 장남감, 놀이기구 제조에 널리 사용한다. 무늬도 아름다운 데다 단단하고 잘 썩지 않는 점이 인정을 받는 것이다.

아까시 잎은 단백질 함량이 높은 양질의 가축사료이다. 예전에는 염소와 소, 토끼, 돼지, 닭의 사료로 썼다. 줄기를 베어 말리면 잎이 떨어지는 데 이걸 가축에게 먹였다. 미국에서는 가시 없는 아까시나무를 길러 가축 사료로 쓴다.

헝가리는 미국에서 아까시나무를 들여다 다양한 수종을 육성했고, 전체 산림의 23%에 이 나무를 심어, 가꾸고 있다. 아까시나무에 대한 오해가 사라지면서 우리 산림청에서도 2017~18년 매년 150ha씩 450ha에 이 나무를 심었다.

100여년 전부터 유입된 아까시나무는 여러 세대를 거치면서 상당히 토착화가 이뤄진 귀화식물이다. 망초나 토끼풀, 달맞이꽃처럼 익숙한 식물이 된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성공적으로 산림녹화를 이뤄냈다. 아까시나 오리나무 등이 없었다면 이처럼 빠르게 푸른 산을 만들 수 없었을 것이다.

일부러 아까시나무를 심을 필요성은 낮아졌지만 앞으로도 무너진 산이나 절개지, 공사현장 등에 심을 가치는 충분하다. 특히 기왕에 심어 잘 자라고 있는 아까시를 일부러 베어 없앨 까닭은 전혀 없다.

일찍이 아까시처럼 천대, 비난받은 수종이 없었던 듯하다. 무더운 여름 척박한 땅에서 부지런히 푸른 숲을 이뤄가는 아까시나무의 볼멘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왜 나만 미워해요! 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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