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촉사고땐 곧장 한방병원"…'허리 삐끗' 보험금 2500만원 챙겨

유준호 기자(yjunho@mk.co.kr) 2024. 7. 7.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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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차보험 한방진료비 1조5천억 육박 역대 최대
양방병원서 엑스레이 진단후
한방병원 가서 '세트진료'
교통사고 환자 평균 진료일수
한방 가면 19일…안가면 8일
보험사 합의금 더 받는데 유리
한방병·의원 먹거리로 부상
4년새 한방병원 81% 급증
차보험에 가입한 '나이롱환자' 10명 중 7명이 한방 진료를 이용해 과잉 진료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 시내 한 한방병원이 교통사고 입원을 내걸고 영업 중인 모습. 이충우 기자

정차 대기 중 후미 추돌사고로 허리가 삐끗한 A씨가 지금까지 통원 치료를 받은 일수는 총 397일에 달한다. A씨가 이용한 수도권 소재 B한방병원은 통원 때마다 한방 물리치료와 침술, 부항술 등을 해주고, 일평균 5만원 이상의 비용을 청구했다. 뒤 범퍼의 도색이 벗겨지는 수준의 사고였지만 보험사는 A씨에게 치료비로만 2517만원을 지급했다. A씨는 현재까지 B한방병원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C씨는 진로 변경 차량을 추돌하는 방법으로 고의로 자동차 사고 20건을 일으켰다. 범행에는 C씨의 배우자와 자녀까지 가담했다. C씨는 동승한 배우자와 자녀를 특정 한방병원에서 치료받게 해 보험금 2억400만원을 편취했다가 금융당국과 수사기관에 덜미가 잡혔다.

한방병·의원에서 자동차보험이 과잉 진료와 도덕적 해이의 통로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벼운 접촉사고로 경상을 입은 환자들은 양방병원을 방문해 엑스레이 정도만을 찍어 부상 정도를 확인한 뒤, 치료는 한방병원에서 받는 구조가 확산된 것이 이런 현상들을 키운 것으로 보인다. 한방병·의원과 경상 '나이롱환자'들의 이해가 맞물리면서 차보험 한방 진료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 연 1조5000억원에 육박한다. 일부 한방병·의원에서는 사고 정도를 구별하지 않고, 일률적인 세트 치료(침술·부항·구술·약침·추나·온냉경락요법 등을 동시에 시행하는 방식)를 시행해 진료비 규모를 키운다. 경상 나이롱환자들은 한방 진료를 받으면 진료·입원 일수가 양방 대비 늘어나 교통사고 합의금을 지급하는 보험사를 상대로 협상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노리고 있다.

7일 송언석 국민의힘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차보험 한방 진료비는 2014년 2722억원에서 지난해 1조4888억원으로 10년 새 5.5배 늘었다. 차보험 한방 진료비는 2020년 1조1238억원으로 처음 1조원을 넘은 이후 지난해까지 매년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특히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은 최근 5년간 연평균 10%에 육박하는 진료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약침과 물리요법은 2018년 821억원에서 2193억원으로 최근 5년 새 2.7배 늘었고, 첩약도 같은 기간 1843억원에서 2782억원으로 51% 증가했다.

보험업계 안팎에서는 한방병·의원의 '돈벌이' 수단으로 세트 청구가 무분별하게 이뤄지면서 한방병원 진료비의 빠른 증가세가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분석한다. 대형 손해보험사인 D사가 경상환자(상해등급 12~14급)의 한방병원 진료비 청구건을 분석한 결과 2014년까지만 해도 17%에 불과했던 세트 청구 비중은 지난해 73%까지 높아졌다.

최근 들어서는 한방병·의원의 내원·입원 교통사고 환자 수가 양방 진료 숫자를 역전하기도 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9년 양방병·의원 교통사고 환자 수는 197만429명으로 한방병·의원 132만9836명 대비 64만명가량 많았다. 하지만 2022년부터 한방 환자 수가 양방 환자 수를 추월했고, 지난해는 한방이 162만8905명, 양방이 145만265명으로 한방 진료 환자 수가 17만명가량 많았다.

환자 수 증가와 한방 진료비 규모는 한방병원의 확장과도 관계가 깊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차보험을 청구하는 전체 의료기관(양·한방 포함)은 2018년 1만9650개소에서 지난해 2만594개소로 4.8% 늘었다. 같은 기간 한방병원은 295개소에서 534개소로 81% 늘어났다. 지난해 연말 기준 신고된 한방병원은 총 559개소로 이 중 95.5%는 자동차 사고 환자를 받아 진료비를 청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대형 손보 D사가 국내 병원(양·한방 전체)에서 청구한 치료비 청구 금액을 분석한 결과 상위 10개 병원 중 8곳을 대형 프랜차이즈 한방병원이 차지했다. 특히 보험사가 지급하는 향후치료비(합의 후 치료에 들어갈 비용, 일종의 합의금)는 교통사고 경상환자들의 발길을 한방병원으로 이끄는 촉매제가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경상환자와 보험사 간 합의 기간이 길어질수록 1인당 치료비와 1인당 향후치료비가 높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보험개발원이 2018~2023년 종결된 사고를 대상으로 파악한 결과 4주 이내에 합의한 교통사고 건은 1인당 평균 치료비가 30만9043원, 평균 향후치료비는 60만9258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합의 기간이 석 달가량 걸린(14주) 교통사고 건의 경우 1인당 평균 치료비는 101만7877원, 평균 향후치료비는 97만8604원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방 이용 환자들의 1인당 진료 일수는 18.9일로, 한방 미이용 환자들의 8.3일에 비해 두 배 이상 높은 상황이다.

전용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교통사고와 상해 유형의 변화, 의료환경 변화를 반영하지 못한 제도적 문제점과 보험회사, 일부 한방병·의원의 이해관계가 결합돼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경상환자에 대한 보편타당한 보상 기준이 없다 보니 과잉 진료가 발생하고 있고, 이는 선량한 보험 가입자들의 부담으로 전가되는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송언석 의원은 "경미한 교통사고 환자에 대한 과잉 진료와 치료는 결국 자동차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들의 경제적 부담을 초래한다"며 "정부는 합리적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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