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데스크] 파산은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온다

신헌철 기자(shin.hunchul@mk.co.kr) 2024. 7. 7. 17:42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영국이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보수당은 데이비드 캐머런부터 리시 수낵까지 총리를 4번이나 바꾸고 유럽연합(EU) 탈퇴까지 감행하며 몸부림을 쳤으나 결국 정권을 내줬다.

벤저민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이 현대 영국 정치의 주류임은 분명했다.

보수당의 최대 장점은 국가 운영에 대한 노하우였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英, 브렉시트 택한 보수당 패착
佛 극우 르펜, 美 트럼프 귀환
각국 가보지 않은 길 향해
한국 여야도 파산위기 자초

영국이 14년 만에 정권 교체를 선택했다. 보수당은 창당 이후 190년 만에 최소 의석을 얻었다. 노동당은 1997년 토니 블레어가 18년 만에 정권을 되찾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압승을 거뒀다.

보수당은 데이비드 캐머런부터 리시 수낵까지 총리를 4번이나 바꾸고 유럽연합(EU) 탈퇴까지 감행하며 몸부림을 쳤으나 결국 정권을 내줬다.

20세기 이후 다우닝가 10번지의 주인이 된 26명의 총리 가운데 보수당이 19명, 노동당은 이번에 총리에 오른 키어 스타머까지 7명을 배출했다. 영국의 정치 지형은 대략 7대3의 비율로 보수 우위였다는 뜻이다. 벤저민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의 보수당이 현대 영국 정치의 주류임은 분명했다. 보수당의 최대 장점은 국가 운영에 대한 노하우였다. 2008년 글로벌 위기가 터지자 제조업 대신 금융업에 의존해온 영국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국민은 다시 보수당을 택했다.

그러나 보수당은 이미 예전의 능력 있는 정당이 아니었다. 이들은 구조개혁 정공법 대신에 '브렉시트'에서 엉뚱한 출구를 찾았다. 국가 명운은 의회가 아니라 국민투표에 맡겨졌다. 투표는 옛 영광에 대한 향수와 저소득층의 분노가 결정했다. EU를 떠나자며 찬성표를 던진 사람은 청년층이 아니라 노년층에서 더 많았다. 지역별로는 영국판 러스트벨트인 중북부의 '레드 월'이 브렉시트를 더 지지했다. 그러나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브렉시트가 성공했다는 답변은 9%에 그쳤다. 영국이 빠져도 EU는 돌아갔지만, EU를 떠난 영국은 외톨이가 됐다.

이번 총선 결과를 놓고 무능한 보수당의 실패이지, 유능한 노동당의 승리가 아니라는 해설이 나오는 이유다. 키어 스타머가 이끄는 노동당은 중도 좌파로 변신하며 불안감을 줄이긴 했다. 그러나 저성장, 고물가, 이민자 급증, 공공부문 부실화 등 총체적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명쾌한 청사진이 보이지 않는다.

가보지 않은 길로 향하는 나라들은 또 있다. 프랑스는 마린 르펜의 극우정당 국민연합(RN)의 승리를 중도와 좌파의 선거 연대를 통해 2차 투표에서 가까스로 막았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한 정당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역사상 네 번째 '코아비타시옹(동거정부)'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거의 30년 만에 출현하는 동거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가늠하기 어렵다.

세계 최강국 미국은 단 한 번의 TV토론으로 도널드 트럼프의 귀환이 유력해졌다. 그가 재집권하면 세계는 8년 전보다 더욱 기이한 공포물을 봐야 할지 모른다.

한국 정치도 위기이긴 매한가지다. 정치가 엉망이 아닌 적이 드물긴 하지만 요즘 상황은 관찰자 역할이 버거울 지경이다. 임기가 3년 남은 대통령은 과거에 스스로 발목이 잡혀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총선에서 참패한 국민의힘의 전당대회는 보수 재건의 방법론은 간데없고 음모론과 책임 공방이 도배했다. 거야 독주에 대한 대응책이라곤 26시간짜리 필리버스터와 항의 피케팅이 전부다.

더불어민주당은 벌써 승자의 저주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당 권력의 일원화, 무소불위의 국회 운영, 대통령 탄핵 청문회 등은 이재명 전 대표를 지키기 위한 조급증의 산물로 읽힌다. 여당이 '무인 정당'이라면 야당은 '1인 정당'이 됐다.

"어떻게 파산했나." "두 가지였지. 서서히, 그리고 갑자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의 명문장이다. 국민의힘이 서서히 무너져왔다면 민주당은 갑작스러운 파산을 걱정할 판이다. 어느 쪽이든 한국 정치는 지금 파산 위기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국민까지 그 밧줄에 끌려가는 게 안타까운 날들이다.

[신헌철 정치부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