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참전’으로 더 벌어진 윤-한 분열 [아침햇발]
손원제 | 논설위원
윤-한 권력투쟁이 점입가경이다. 원래 내부 서열 싸움이 더 독한 법이긴 한데, 이번엔 수위와 강도가 통상적 수준을 넘고 있다. 대통령실은 국민의힘 당대표 경선에 대리인을 내세우고 한동훈 후보를 ‘절윤’으로 내친 걸로는 성에 차지 않는 모양이다. 김건희 여사가 총선 기간 명품백 수수 문제에 대해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는 문자를 보냈지만 한 후보가 ‘읽씹’ 했다는 폭로까지 나왔다. 한 후보가 김 여사 사과를 거부해 총선에 졌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 같다.
여권에선 사실상 김 여사가 참전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통령이 브이원(VIP1)이라면, 김 여사는 브이투(VIP2)가 아니라 브이제로(VIP0) 아니냐는 게 그간 이 정권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많은 국민이 갖는 인식일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김 여사의 참전은 윤석열 대통령 부부와 한 후보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브이제로가 직접 뛰어든 이상 봉합은 물 건너갔다고 보는 것이 상식적이다. 한때 한 몸처럼 움직였던 윤·김-한이 정치적으로 네가 죽느냐, 내가 죽느냐는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접어든 셈이다.
집권 3년차 여당 대표 경선이 후보 간 경쟁을 넘어 대통령과 유력 후보 간 정치 운명을 건 혈투로 흐르는 건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양쪽 다 여기서 밀리면 끝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윤 대통령은 한동훈 당대표가 들어서면 임기를 다 못 채울 수 있다는 두려움에 떠는 것으로 보인다. 이미 윤 대통령의 무능과 전횡에 대한 국민의 불신과 불만은 임계점을 넘은 지 꽤 됐다. 중도층은 물론 보수층 일부에서도 이대로 3년 더 갔다간 나라가 결딴날 수 있다는 우려를 품고 있다. 남은 건 결정적 격발 한방이다. 우리나라는 직무상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으로 탄핵 사유를 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채 상병 수사 외압 의혹은 여기에 정확히 부합하는 사안이라 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을 한 후보가 건드렸다.
대법원장 등 제3자 추천 방식의 채 상병 특검법 추진을 한 후보가 공언한 순간 대통령 거부권을 뚫고 특검 자체가 성사될 가능성은 비약적으로 높아졌다. 야당이 특검을 추천하게 돼 있는 기존 특검법안은 거부권으로 막아낼지 모른다. 그러나 제3자 방식의 수정안이 다시 밀려오면 막을 도리가 없다. 이미 개혁신당이 대한변협 추천 방식 법안을 제시했고, 조국혁신당도 야당의 특검 추천권을 포기해 수정도 가능하다는 밑자락을 깔았다. 이런 상황에서 한 후보가 대표가 되면 여야 합의 처리 가능성은 드라마틱하게 커진다. 설사 한 후보가 강성보수 당심에 막혀 떨어진다 해도, 이미 거부 명분이 약해진 만큼 찬성하는 여당 의원이 늘고 8석 방어벽이 무너질 수 있다.
일단 특검 문이 열리면, 어디서 뭐가 터져나올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차고 넘치는 갖가지 중대한 직권남용 의혹은 혐의로 확정될 가능성이 크다. 최근엔 ‘김건희 로비’ 의혹까지 제기됐다. 권력 비리이자 국정농단 사건으로 뻗어나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이미 다수 민심이 등을 돌린 상황이다. 언제 끓어 넘쳐도 이상할 게 없다. 민심의 폭발을 촉발하는 결정적 한방이 특검 수사로 채워질 수 있다. 친윤계에서 “특검을 하게 되면 탄핵으로 간다”(인요한 최고위원 후보)는 아우성이 나오는 이유일 것이다.
한 후보는 “윤 대통령 탄핵을 확실히 막겠다”며 특검과 탄핵의 연계를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국정농단 특검’으로 박근혜 탄핵 가결의 직접적인 명분과 정당성을 제공해준 경험이 있는 그가 특검이 탄핵의 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고는 상상하기 어렵다.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기에 승부수를 던진 것 아닐까. 윤 정권 치하 3년 한 후보의 가장 큰 숙제는 윤심의 강력한 견제와 위협을 버티고 살아남을 수 있느냐일 수밖에 없다. 탄핵은 이런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확실한 차별화를 통해 위협을 기회로 바꾸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니더라도, 경우의 수 몇가지는 따져보지 않았을까. 주도면밀한 정치검사의 대명사 아닌가.
정권의 위기를 가늠하는 지표로 민생 불만과 정치적 분노 고조, 집권 엘리트 분열 등이 꼽힌다. 지금은 셋 다 한계 수위다. 그나마 2년 만에 경고음이 울린다는 건 불행 중 다행이다. 더 망가지기 전에 정의를 바로 세우고 나라 꼴도 바로잡아야 한다.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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