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석 문학상] 사람을 위로하는 건 결국 사람…인간 관계에 대한 통찰

김유태 기자(ink@mk.co.kr) 2024. 7. 7. 17:18
자동요약 기사 제목과 주요 문장을 기반으로 자동요약한 결과입니다.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첫 만남에서 주인공 혜재가 말했다.

은석이 혜재에게 다가설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의 큰 부분을 이루는 하나의 정체성이 그 사람의 모든 정체성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못할 과거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방류되지 못할 감정의 빗물 속을 걸어가면서도 한 사람을 새롭게 알아가는 일, 즉 이해의 시도야말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한순간임을 이야기한다.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최종심 진출작 안윤 '담담'
동성애인 수윤과 사별후
새로운 만남 시작한 혜재
서로를 알아가면서 치유

◆ 이효석 문학상 ◆

첫 만남에서 주인공 혜재가 말했다. "저는 바이예요."

'바이'는 바이섹슈얼(양성애자)의 약자다. 소개팅으로 만난 자리에서 상대가 이렇게 고백하면 어떤 마음을 품게 될까. 타자 앞에서, 인간은 늘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상대를 바라보는 데 익숙하다. 그 정체성이 새로 맺게 될지도 모르는 관계의 미래를 고민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혜재의 고백을 들은 은석의 답은 달라도 많이 달랐다. "혜재 씨한테는 그게(바이) 가장 중요한 정체성인가요?"

이효석문학상 최종심에 오른 안윤 작가의 단편소설 '담담'은 한 사람의 정체성에 관해 밀도 있게 질문하는 소설이다.

한 사람의 성 정체성은 그 사람을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지만 인간은 사실 성정체성만으로는 복잡성을 모두 설명할 수 없는, 여러 정체성 위에서 살아간다. 한 사람이 동성애자 혹은 양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하나의 틀 안에서 규정하는 건 일종의 편견일 수 있음을 이 소설은 묻는다. 소설 제목처럼 한 인간이 타자로부터 '담담'하게 이해되는 지점을 이야기한다.

사실 은석을 만나기 전, 혜재에게는 수윤이란 이름의 동성 애인이 있었다. 혜재와 수윤은 무려 11년을 만났다. 몇 번이나 헤어졌지만 다시 만났고, 이별과 재회는 반복됐다. 하지만 수윤은 이별 뒤에 췌장암 말기로 세상을 떠났다. 헤어졌지만 얼룩은 지워지지 않았다. 혜재를 보는 은석에게도 작별의 경험이 있었다. 이혼인가 했지만 사별이었다. 그래서인지 은석은, 지금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남편, 즉 '유가족'이란 정체성이 자신의 가장 큰 정체성이라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은석은 자신을 이루는 큰 정체성은 누군가의 유가족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믿고 있다. 은석이 혜재에게 다가설 수 있는 건, 자기 자신의 큰 부분을 이루는 하나의 정체성이 그 사람의 모든 정체성이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다.

헤어진 애인이 세상을 떠난 뒤의 혜재, 한때 사랑했던 아내를 잃고 유가족으로 살아온 은석은 비로소 서로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둘은 장거리 연애를 하고, 함께 몸을 섞는다. 두 사람의 사랑의 종착역은 어디일까. 담담하게 서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둘은 자기 자신의 존재를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무엇보다 이 소설은, 필연적으로 부재를 경험하게 될 모든 사람을 위로하는 건 결국 혼자의 힘이 아닌 상대와의 '상관관계' 위에서 가능함을 독자에게 일러준다. 정리되지 못할 과거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방류되지 못할 감정의 빗물 속을 걸어가면서도 한 사람을 새롭게 알아가는 일, 즉 이해의 시도야말로 인간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한순간임을 이야기한다.

심사위원 박인성 평론가는 "우리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부단한 대화처럼 보이는 소설"이라며 "잘라낼 수 없는 과거와 정체성에 대한 애도 불가능성, 그리고 담담해질 수 없는 문제를 담담하게 수용하는 태도를 구현하고 있다"고, 전성태 소설가는 "뭔가 이야기를 크게 벌이지 않음에도 미묘하게 관계를 이끌어가는 게 돋보인 작품이다. 존재를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부분에 주목하게 만든다"고 평했다.

[김유태 기자]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