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갈빗집’이 어쩌다가…노조 파업에 루머까지 시달리는 ‘이 기업’ [방영덕의 디테일]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byd@mk.co.kr) 2024. 7. 7.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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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 삼성사옥. [사진출처 = 연합뉴스]
“기자와의 소개팅은 좀...”

수년 전 한 후배로부터 삼성맨과 소개팅을 하려다 거절(?) 당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유는 후배의 직업 때문. 뭐든지 캐내는 ‘기자’였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내막을 확인하기는 어려웠지만 당시 삼성 신입 직원들에겐 기자와의 개별적인 접촉을 삼가란 가이드 같은 게 있었다고 합니다.

신입 직원들부터 사내 정보보호 관련 보안 의식을 강조하는 삼성의 ‘관리력’과 또 자발적으로 이 같은 가이드라인을 지키려고 한 직원의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수년이 지난 지금, 삼성전자는 각종 루머들로 홍역을 치루고 있습니다. 기사 때문만이 아닙니다.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위기론과 실제로 불어닥친 위협 요인들이 합쳐진 결과로 보입니다.

최근 삼성전자 직원들에게는 공지가 하나 떴습니다. “내부 정보 유출로 회사의 시장 경쟁력을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달라”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급기야 반도체 사업을 담당하는 DS(디바이스 솔루션) 부문에선 매달 ‘보안의 날’을 따로 정해 운영하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7월부터 매달 첫 월요일을 보안의 날로 정한 것인데, 이 날에는 특별히 부서장 주관으로 정보보호 교육을 하고 보안 가이드를 안내한다고 합니다. 내부 보안관리 수준을 더 높이겠다는 취지에서입니다.

‘관리’의 삼성이 최근 내부 입단속에 적극 나선 데에는 반도체 사업을 둘러싸고 퍼진 지라시(정보지) 소동과 무관치 않아 보입니다.

지난달 26일 삼성전자는 반도체 부문 임원진 회의를 앞두고 ‘파운드리 반도체 대량 결함 폐기설’이 퍼져 곤혹을 치러야 했습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사업부의 반도체 웨이퍼(반도체 재료가 되는 얇은 판) 생산 과정 중 사고가 발생해 20만장 전량 폐기를 검토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피해규모가 1조원에 달한다는 ‘썰’이었습니다.

삼성 측에서는 “며칠 전 돌았던 지라시가 또 다시 도는 것 뿐”이라며 “전혀 근거 없는 괴담”이라고 일축했으나 여의도 증권가에서 나돌기 시작한 루머는 일부 매체에서 기사화까지 돼 삼성전자 주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당일 삼성전자 주가는 개장 직후 8만원선이 깨졌지요.

앞서 지난 5월말에는 로이터통신에서 소식통을 인용, 삼성전자의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미국 엔비디아의 퀄 테스트(품질검증)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보도해 홍역을 치뤄야했습니다.

당시 삼성전자는 현재 테스트가 진행 중이라며 반박문까지 냈습니다만 주가에 악영향을 미쳤고, 내부 직원들 사이 사기를 떨어트리고 말았습니다.

근거없는 소문이 자꾸 만들어지고 확산하는 배경에는 삼성전자 안팎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위기론이 반영돼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삼성전자는 현재 AI(인공지능)시대 필수재인 HBM에서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선수를 뺏겼습니다. 뒤로는 미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은 마이크론 테크놀로지의 추격을 당하는 샌드위치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HBM3E의 엔비디아 품질 인증 통과는 아직이고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는 대만 TSMC와의 격차는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위기입니다.

직원들의 사기는 크게 떨어진 상탭니다.

각종 기업 평가 사이트나 직장인 커뮤니티 등에는 “언제 1등 자리를 뺏겨도 이상하지 않을 회사”라거나 “진짜 위기가 온 듯하다” 등 삼성전자 직원들부터 ‘위기론’을 언급하는 글들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내부 직원들의 자조섞인 말들이 또 다른 루머를 만들어 내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직장인들 사이 삼성전자는 ‘수원갈빗집’이라고 불립니다. 일종의 업계 은어인데 왕갈비로 유명한 수원에 공장이 포진해 있다보니 자연스럽게 얻게 된 것입니다. 업계 최고 대우를 보장하는 삼성전자를 상징합니다.

문제는 최근 실적 악화로 성과급 등을 둘러싼 불만이 DS 부문 직원들 사이 커지면서 노사간의 갈등마저 불거진 점입니다. 삼성의 또 다른 위기를 야기하는 요인이지요.

삼성은 창립 이후 줄곧 무노조 경영을 고수해왔습니다. 그러나 2020년 5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당시 부회장)은 무노조 경영 폐지를 선언했습니다.

이후 성과급 불만 등으로 가파르게 늘어난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전삼노)는 지난 5월 사상 초유의 파업을 선언했고, 조합원들에게 6월 7일 연차 소진을 독려한 바 있습니다.

전삼노는 오는 8~10일 사흘간 총파업을 또 벌일 계획입니다. 임금 협상과 관련해 노조의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무임금 무노동 총파업’에 나선다고 밝혔는데요. 도무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노사 갈등이 삼성의 리스크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고 했습니다. 내부 직원들 입에서부터 거론되는 위기론에, 외부에서 떠도는 근거없는 소문들까지 합쳐져 지금의 삼성은 위태로워보입니다.

과거 ‘1등 기업’ 삼성이 가지고 있던 치열함과 구성원들 스스로 가졌던 자부심은 어떻게 하면 다시 되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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