神政 일치, 혁명수비대…‘개혁 대통령’ 선택한 이란, 개혁 힘든 이유
“이란이 새장에 갇힌 나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지난 5일 있었던 이란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에서 개혁 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70) 전 보건장관의 당선이 6일 확정됐다. ‘새장’은 페제시키안이 유세 내내 이란의 상황을 빗댄 단어로, 그는 당선될 경우 미국과 대화를 재개해 고립된 이란의 상황을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핵개발에 따른 각종 제재로 서방 세계와 단절돼 경제적 고통을 겪어온 이란의 유권자들은 지난 5월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의 헬기 사망 사고로 치러진 이란 대통령 보궐선거 결선투표에서 개혁파 인사를 선택했다. 페제시키안이 54%를 득표해 경쟁자인 강경·보수 성향 사이드 잘릴리(59) 전 핵 협상 대표(44% 득표)를 큰 표 차로 이겼다.
페제시키안은 아제르바이잔 출신 아버지와 쿠르드족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이란 사회 ‘비주류’로 꼽히는 인물이다. 군 복무 후 의대에 늦깎이로 입학해 심장외과 전문의가 됐고 타브리즈 의대 총장으로 일했다. 1997년 하타미 대통령 시절 정치에 입문해 보건장관(2001~2005년 재임)을 지내고, 2008년 타브리즈에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5선을 했다.
이날 투표 결과는 제재와 인권 탄압에 시달려온 이란 국민의 변화에 대한 갈망이 반영된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앞서 페제시키안은 ‘고립 탈피’와 함께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단 이유로 잡혀갔던 이란 여성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 이후 촉발된 ‘히잡 시위’를 의식한 듯 “당선되면 히잡 단속을 완화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개혁을 약속한 그의 계획은 그러나 신정(神政) 일치 국가인 이란의 정치 체계를 감안할 때 순탄치 않으리라는 전망이 많다. 이란은 종교 지도자인 ‘라흐바르(최고 지도자)’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대통령은 행정부 수장 역할을 맡는다. 종신직인 최고 지도자는 1989년부터 알리 하메네이(85)가 맡고 있다. 미국과의 핵 협상 등을 추진할 외교부 장관의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긴 하지만 하메네이의 뜻을 거슬러 독단적인 노선을 추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란 대선 결선투표의 투표율은 약 50%로 1차 투표(약 40%)보다 눈에 띄게 높아졌지만 여전히 절반 정도는 투표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권한에 대한 이란 유권자들의 회의(懷疑)를 반영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대통령의 통제를 벗어난 군 권력인 이란의 ‘이슬람 혁명수비대’ 또한 페제시키안의 입지를 제한하는 변수다. 초대 최고 지도자인 루홀라 호메이니가 정규군을 믿지 못해 1979년 창설한 친위대 격인 혁명수비대는 최고 지도자를 수호하는 동시에 중동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광범위하게 작전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정규군보다 훨씬 막강하다. 중동 해역에서 서방의 선박을 공격하는 예멘의 후티, 레바논의 헤즈볼라 및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이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하마스 등 이른바 ‘저항의 축’이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페제시키안은 ‘외교가 곧 경제’라는 기조 아래 친서방 전문 외교관들을 총동원해 서방과의 관계 회복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라며 “하지만 혁명수비대가 반(反)이스라엘 기조 아래 국가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반서방 기조로) 움직인다면 페제시키안의 외교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일각에선 아무리 ‘국가 서열 1위’인 하메네이라도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는 페제시키안의 정책 기조를 완전히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페제시키안 당선 확정 후 하메네이는 “대통령과 선거 캠프에서 일한 열정적인 청년들에게 축하를 전한다”고 했다. 호세인 살라미 이란혁명수비대 사령관은 성명을 통해 “최고 지도자가 제시한 정책 청사진의 틀 안에서 차기 행정부와 협력하겠다”며 하메네이의 ‘명령’이 최우선임을 확실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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