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영 KERIS 원장 “AI교과서, 하이터치로 교실혁명…입시 체계 바꿀 것”
내년 3월 전국의 초·중·고교에 인공지능(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다. AI를 활용해 학습을 돕는 AI코스웨어는 한국 뿐만 아니라 선진국의 일부 교실, 또는 학교 단위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국가 주도로 공교육 전체에 AI를 도입되는 것은 한국이 처음이다.
AI교과서 도입이 세계 최초 사례인 만큼 기대와 오해가 공존하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과 능력치를 최대한 발휘하게 할 개별화된 학습에 대한 기대의 대척점에는 AI기술을 교육에서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느냐에 대한 우려가 있다.
정제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 원장은 “교사들의 하이터치 역량을 기반으로 한 교실혁명은 수업을 바꾸고 더 나아가 대학 입시와 인재 양성 체계를 바꿀 것”이라고 강조했다. KERIS는 AI교과서 도입의 핵심 역할을 맡고 있는 교육부 산하 기관이다.
-당장 내년부터 AI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된다. 개발사들이 교육부에 교과서를 제출해야 하는 시한도 다음달로 다가왔다. 현재까지의 준비 상황과 앞으로의 일정을 설명해달라.
▲AI디지털교과서는 내년 3월 학교 현장 적용을 앞두고 있다. 8월에 개발사들의 검정 신청 제출이 마감되면 11월까지 기술심사를 마친다. 검정심사는 내용심사와 기술심사로 구분됐다. KERIS는 기술심사를 담당한다. 심사 후 수정기간 등을 고려하면 11월 말에는 최종적인 AI디지털교과서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AI디지털교과서는 완전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게 아니라 상용화된 기술 중 선생님 입장에서 교수·학습에 활용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서 만드는 것이다. 때문에 기술적인 이슈는 없다.
KERIS는 AI디지털교과서 개발 가이드라인배포를 시작으로 개발사 지원, 검정기술심사체계 구축, 현장소통 지원, 교원 연수 등을 수행했다. 특히 AI디지털교과서 통합지원센터 운영으로 데이터 연계, 통합 인증, 교육과정 표준체계 관리 등을 지원했다. 각 기업이 개발한 AI디지털교과서를 연동하는 플랫폼을 테스트하고 있고 큰 문제 없이 진행 중이다.
-AI교과서 도입은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이다. 때문에 우려와 오해가 존재한다. 학부모 입장에서는 디지털 과몰입에 대한 우려가 있다.
▲서책형 종이 교과서가 사라지고 학생들이 디지털 기기에 과몰입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는 AI교과서와 관련된 가장 대표적인 오해다. 그렇지 않다. AI디지털교과서는 서책형 교과서와 병행해 사용된다.
AI디지털교과서는 지식교육에 일부 사용하지만 수업의 반 이상은 동료 학생들과 함께하는 활동 중심 수업을 강조하고 있다. AI디지털교과서의 도입은 창의적 교육, 미래 역량 강화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교실에서 교사의 역할 변화도 예상된다.
▲AI교과서를 통한 '하이터치(High Touch)' 시행의 주체는 교사다. 일부에서 AI교과서가 메인이고, 교사가 보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우려하는데 반대다. AI교과서가 교사를 보조한다.
AI교과서의 도입은 수업과 평가를 학생의 지식뿐 아니라 기술과 태도를 종합적으로 기를 수 있도록 혁신하는 계기다. 학생이 주도성을 갖고 자신의 수준과 속도에 맞는 개별화된 지식 학습을 하고 이를 기반으로 프로젝트 학습, 실험과 실습 등 활동 중심으로 고차원적 지식을 체득한다. 팀 프로젝트나 토의 수업 과정에서 인성, 사회성, 협력 역량과 창의성을 기를 수 있다.
이러한 활동 중심의 수업은 교사의 디지털 기반 역량이 중요하다. 때문에 AI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앞둔 교사 연수도 교과서 사용법을 배우는 연수가 아니라 수업을 어떻게 디자인할지, AI디지털교과서를 창의적인 수업으로 연결할 수 있을지를 다룬다.
-디지털 기술을 교육에 접목했던 시도들이 실리콘밸리의 알트스쿨을 비롯해 여러 차례 있다. 기존 실패사례와 차이가 있다면.
▲AI교과서에 대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알트스쿨(ALT School) 모델을 답습할 수 있다는 우려다. 알트스쿨은 구글 출신 엔지니어가 설립했던 미래형 학교다. 마크 저커버그 등의 투자를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알트스쿨에서 학생들은 디지털 도구로 수업하고 교사는 이를 관리하는 역할만 했다.
그러나 학생들이 학습에 몰입하지 못하고 사회성과 인성도 길러지지 않으면서 폐쇄됐다. 알트스쿨의 사례가 잘못됐다는 것을 알고 있고, 반면교사 삼아 하이터치 개념을 도입했다.
또 AI코스웨어를 잘 아는 일부 전문가도 AI교과서가 도입되면 학교에서 문제풀이만 시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하는데 AI교과서는 활동 중심 교육의 효과를 높이기 위해 활용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국의 교육 정책에서 입시를 빼놓기는 어렵다. AI교과서의 도입이 궁극적으로 입시 제도의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
▲학교에서 배우는 것은 지식, 기술, 인성과 태도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수능시험은 지식에만 초점을 맞춰져 한계로 지적된다. 지식 중심의 학교 평가제도 혁신이 입시제도 혁신의 중요한 부분이다.기술과 태도가 종합적으로 평가돼야 우수한 인재를 양성할 수 있다.
AI교과서 도입은 대입제도 개선을 위한 '빌드업'이다. AI교과서는 학생이 지식뿐 아니라 기술과 태도를 종합적으로 기를 수 있도록 혁신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물론 AI교과서 도입이 당장 수능을 대체할 수는 없다. 수업과 평가 혁신 결과가 데이터로 축적되고 개인 학생의 학습 포트폴리오가 전형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때 수능을 대체할 것으로 생각한다.
수업 활동의 결과물을 디지털화하고, 어떤 데이터를 모아 어떻게 평가해야 하는 지를 논의해야 한다. 3~4년 정도 AI교과서로 빌드업을 하면 데이터 중 어떤 전형요소가 대입에 활용되는 게 타당한지를 합의할 기회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들의 민감한 개인정보인 학습데이터 보호도 중요하다. 민간에서 데이터가 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는데.
▲사교육업체가 학습데이터를 가져다 쓸 수 있다는 우려도 대표적인 오해다. AI교과서를 위한 클라우드와 제작사의 사교육 상품을 위한 클라우드는 분리된다. 데이터 이동은 철저하게 제한된다. 클라우드 구분을 준수했는지는 AI교과서 채택을 위한 검정심사 항목에 반영됐다. 심사 이후에도 준수사항 위반이 발견되면 관련 법령에 따라 자격을 취소할 수 있다.
데이터는 비식별처리돼 AI교과서 고도화를 위한 용도로만 제공된다. AI교과서를 통해 축적된 데이터를 사교육 업체가 활용하는 것은 범죄다. 민간기업이 학습데이터를 저장하고자 하는 경우도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라 정보 주체가 동의한 범위 내에서만 활용이 가능하다.
-AI는 이미 검증된 기술이고, 생성형AI 같은 신기술도 있다. 교육에서 AI를 활용할 때는 어떤 점을 고려해야 하나.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의 발전을 역량 개발에 활용하는 가운데 발생하는 문제들로부터 사용자를 보호하는 것이다. AI에도 비교육적인 기능이 있다. 예를 들어 생성형AI에게 정답을 물어보는 것이다. AI가 과정과 결과를 다 알려주는 건 교육이 될 수 없다. 생성형AI가 화두지만 AI자체의 할루시네이션(환영효과)도 있어 교육적으로 쓰기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는 최신 기술보다는 검증된 적정 수준 기술을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AI교과서도 생성형AI가 아니라 학습 경로를 예측해주거나 피드백해주는 검증된 기술을 중심으로 반영됐다.
○…정제영 KERIS 원장은
이화여대 교육학과 교수로 이화여대 기획처장, 미래교육연구소장 등을 역임했다. 서울대 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교육행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3년 교육과학기술부 사무관으로 입직했으며 4급 서기관으로 진급한 뒤 이화여대로 자리를 옮겼다. 교육부 재직 시절에는 학제개편과 외고 등 특목고를 포함해 고교체제 개편 정책을 맡았다. 이화여대에서는 AI융합교육연구지원센터장, 창의교육거점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디지털 교육의 이해', 'AI 교육혁명' 등 디지털 교육 관련 저서를 집필했다. 빅데이터, 머신러닝을 이용한 맞춤형 교육시스템 등을 연구하는 등 대표적인 AI교육, 디지털 교육 전문가다. 교육부와 KERIS가 내년부터 도입할 AI디지털교과서 정책 추진의 적임자로 꼽힌다.
최다현 기자 da2109@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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