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황스러워"…제지공장 19세 사망 현장, 유해가스 검출 '반전'[르포]
회사 측 "동일 조건 현장 검증…당황스럽다"
"4~5ppm 검출됐습니다."
전주페이퍼에서 홀로 원료를 점검하러 간 A(19)군이 사망한 지 21일째다. 회사 측은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현장 검증 자리까지 마련했지만, 사망 현장에선 황화수소가 검출됐다.
"결백하다" 검증 자리…검출된 유해가스
생산팀에 들어서자 썩은 달걀 냄새가 은은히 코끝을 때렸다. 아주 간헐적으로 눈 따가움 증상이 느껴지며 불쾌감을 주긴 했지만, 여느 공장과 특별하게 다른 점은 느껴지지 않았다.
회사 측 생산 본부장과 공장장 등 근조 리본을 단 회사 직원 20여 명은 "5회 조사 모두 황화수소는 단 한 번도 검출되지 않았다"고 밝히며 연거푸 억울함을 호소했다. 앞서 유족 측이 A군의 사망 배경에 황화수소 노출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많은 인원이 몰려 2개 조로 편성한 후 사고 현장 검증이 시작됐다. 시작 후 5분이 지날 무렵 대한산업보건협회 안전관리자가 검증을 위해 가져온 황화수소 측정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측정기가 울린 이유. 현장에서 황화수소가 4ppm~5ppm 사이로 측정됐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 지침 등에 따르면 10ppm 이상의 황화수소가 검출되면 작업자는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
예상과 달리 황화수소가 사고 현장에서 검출된 탓에 회사 측은 당혹감을 숨기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는 "5차례 조사 당시 미검출된 황화수소가 갑자기 측정돼 솔직히 당황스러운 심정이다"며 "A군이 당시 작업했을 때보다 높아진 기온 탓에 황화수소가 검출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현장 검증은 회사 측의 주도로 시작됐다. 회사는 공정한 조사 결과를 얻기 위해 유족 측은 물론 민주노총과 경찰, 고용노동부 관계자, 언론사에 조사 일정을 알리고 참석 및 참관을 요청했다.
하지만 유족 측은 회사의 현장 검증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뜻을 밝히며,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회사 측이 아닌 인원은 대한산업안전협회 관계자 1명뿐인 '반쪽짜리 조사'가 진행됐다.
회사는 1차 정밀조사 때 사용한 재활용수 대신 백수(펄프 세척에 사용되는 희석수)로 청소하는 등 동일한 조건을 맞췄다. 또 사고 당시처럼 원료 찌꺼기를 남기기 위해 수십억 원의 손해를 감수하며 1주일 동안 공장 가동을 멈췄다.
1차 부검 결과 심근경색…국과수 부검 결과 '주목'
대한산업보건협회에 따르면 밀폐공간 작업에서 황화수소 농도가 10ppm 이상이 되면 중독으로 인해 질식 사망할 수 있다. 이번 현장에서 검출된 황화수소 측정값과 차이가 있는 것은 물론 사망 현장은 '밀폐공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전북대병원은 A군의 1차 부검 결과 심장비대증과 심근경색에 따른 심장마비로 보인다는 소견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 만큼, 황화수소 발생으로 인한 사망으로 결론짓기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최종 부검 결과가 중요해진 가운데 국과수는 현재 황화수소 잔류 분석 세부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는 12일 내로 부검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회사 측은 "민주노총이 유족을 대신해 협상을 지연시키고 방해하고 있어 진실규명과 고인에 대한 애도가 늦어지고 있다"며 "명백하게 사인이 밝혀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고 말했다.
이어 "근거 없는 프로파간다 형식의 의혹 제기가 정말 유족을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인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생각해 보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민주노총 전북본부 관계자는 이날 회사의 현장 검증 이후 곧바로 기자 회견을 열어 "회사의 현장 검증을 여전히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회사가 공식 입장을 밝히는 대로 곧바로 입장문을 만들 것이다"고 밝혔다.
내리는 빗속에 이번 현장 검증은 약 3시간가량 진행됐지만, 양측의 공방은 끝나지 않았다. 단식 4일째인 A군의 모친은 '내 아들을 살려내라'는 피켓에 머리를 포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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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CBS 김대한 기자 kimabout@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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