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인가 공포인가…영화 제작도 ‘AI 시대’ 성큼
“이 모양이 아닌데? 튜브가 아니라 실린더로 프롬프트를 입력해보자.”
지난 3일 오후 경기 부천 웹툰융합센터에서 열린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인공지능(AI) 필름메이킹 워크숍에 참여한 강한서(25), 최현유(25), 최영은(26)씨가 대형 모니터에 펼쳐진 생성형 에이아이 이미지를 보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같은 영화 동아리 출신인 이들은 1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참여기회를 얻었다. 수학·물리학 등을 전공하며 코딩에 익숙한 이들이지만 이미지 생성을 위한 명령어를 정확히 입력하는 건 쉽지 않았다. “시나리오를 구상할 때 떠올린 이미지와 화면에 구현된 이미지가 달라서 이걸 맞춰 가는 게 어렵네요.”(최영은)
부천영화제가 2일부터 2박3일간 운영한 인공지능 필름메이킹 워크숍은 올해 영화제의 하이라이트다. 30명 모집에 600명 넘게 지원자가 몰렸고, 60명을 뽑아 16팀을 운영했다. 워크숍에는 젊은 영화인과 지망생뿐 아니라 촬영감독으로 20년 넘게 일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김병정 교수(목원대)처럼 영화인들도 참가했다. 그만큼 인공지능은 영화산업을 바꿀 게임체인저로 관심을 끌고 있다. 전세계 에이아이 전문가들이 모이는 국제 콘퍼런스도 개최한 부천영화제의 신철 집행위원장은 “젊은 영화인들이 예산 확보에 실패해 산업에 진입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봐오면서 에이아이 기술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올해 영화제의 큰 주제를 에이아이로 정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두바이국제에이아이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권한슬 감독의 수상작 ‘원 모어 펌킨’은 제작기간 5일에, 제작비는 전기요금이 전부였다.
이날 멘토로 참가한 데이브 클락(40)은 지난해 에이아이 영화감독으로 미국감독조합(DGA) 첫 조합원이 된 에이아이 영화업계의 선두주자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클락은 “감독을 꿈꾸며 영화를 전공했지만 쉽지 않아 테크 기업의 광고를 만들면서 인공지능에 빨리 눈을 떴다”며 “에이아이는 나처럼 가난하게 자란 아이들도 스티븐 스필버그나 리들리 스콧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날 인공지능 동영상 생성 프로그램인 런웨이, 인공지능 음악 생성 프로그램 우디오 등을 활용해 시연하며 “지금은 100% 에이아이 영화가 십분 미만의 단편뿐이지만 1년 안에 장편 영화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2세대가 나온 지 불과 6개월 만에 이날 출시된 런웨이 3세대 ‘젠-3 알파’는 2세대 프로그램보다 기량이 훨씬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공지능과 실사영화의 하이브리드가 보편화되고 이를 통해 ‘어벤져스’ 같은 대작 제작비도 절반 이하로 떨어질 것”이라는 클락의 전망은 이미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 5월 개봉한 ‘혹성탈출: 새로운 시대’는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이 배우의 연기를 유인원의 연기로 바꿔내는 딥페이크 기술이 활용됐다. 개봉을 앞둔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의 ‘히어’ 예고편에서 주인공 톰 행크스는 생성형 에이아이 기술을 통해 19살로 돌아간 모습을 보여줬다. 이는 여전히 할리우드에서 논쟁적인 에이아이 기술을 에스에프(SF) 등 특정 장르 이미지가 아닌 실사 장편영화 제작에 본격적으로 사용한 첫 사례다.
국내에서도 상업영화 제작 현장에서 실사 구현을 돕는 도구로 에이아이 활용이 늘고 있다. 에이아이를 소재로 한 김태용 감독의 ‘원더랜드’는 에이아이 기술로 배우 공유의 목소리를 복제해 일부 대사에 활용했다. 또 촬영이 끝난 뒤 세상을 떠난 배우 이얼의 젊은 모습을 생성형 에이아이로 만들어 스크린에 담았다.
에이아이의 저작권 침해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무수한 데이터를 학습해야 하는 에이아이의 특성상 초상권과 음성권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지 경계를 구분하기 쉽지 않은 탓이다. 최근 할리우드 배우 스칼렛 요한슨은 챗지피티(GPT) 개발사인 오픈에이(AI)가 영화 ‘그녀’에서 에이아이 음성 캐릭터를 연기한 자신의 목소리를 도용했다고 주장해 오픈에이아이가 서비스 프로그램을 철회하기도 했다. 이동하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대표는 “기술 수용 단계에 맞춰 법적인 정비와 함께 권리관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부천국제영화제 에이아이 콘퍼런스와 영화 상영 섹션 등을 총괄한 김종민 엑스(XR) 큐레이터는 “창작자에 대한 법적인 보호가 이뤄져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법적 문제를 넘어 에이아이를 지속가능한 사회경제적 생태계로 가져가기 위해 사회적 자원의 공유와 보상 체계에 대한 좀 더 포괄적인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김은형 선임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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