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 구독료, '돌풍'엔 아깝지 않아요 [정지은의 리뷰+]
자극적 소재 내세웠지만 메시지는 '묵직'
대배우들의 등장, 인생 연기는 다 본 셈
박경수 작가 필력에 '감탄'···무게 있는 대사들
"총리님하고 나 둘 다 눈 감으면 세상은 살짝 어두워지겠지만. 알잖아요. 사람들 금방 어둠에 적응하는 거."
최근 인상된 넷플릭스 구독료에 한껏 찌푸려져있던 미간 주름이 단번에 풀렸다. '서사 없는 자극'에 목매던 넷플릭스가 오랜만에 알찬 시리즈를 내놓은 것이다. '대통령 시해'라는 자극적이고 민감한 소재를 내세우면서도 공포감만 조장하는 것이 아닌, 묵직한 메시지로 열두 개의 에피소드를 메꾸는 '돌풍'의 기세는 휘몰아치다 못해 시청자들을 서사가 주는 파란에 흠뻑 젖어들게 만든다.
"물러날 자리라면 올라오지도 않았어."
◇대통령 시해 둘러싼 대한민국 정치판의 초상 = 7일 기준 대한민국 시리즈 시청 TOP 10의 1위에 이름을 올린 '돌풍'은 장일준 대통령(김홍파)을 시해한 국무총리 박동호(설경구)와 경제부총리 정수진(김희애)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작품은 1화부터 제목처럼 '돌풍'을 일으킨다. 자신이 믿는 정의를 지키기 위해 대통령을 시해한 박동호. 시해 사건 발생 직후부터 연출은 시간, 분, 초 단위로 끊어 사건을 전개한다.
대통령의 전자담배에 독을 넣어 암살 시도는 했으나 아직은 목숨이 끊기지 않은 상태. 박동호는 이 상황을 어떻게든 전복시키기 위해 모든 정치적 수단을 이용한다. 수술대에 잠들어 있는 대통령의 옆에서 박동호, 정수진을 비롯해 대통령 비서 실장 최연숙(김미숙), 영부인 유정미(오민애), 대한국민당 대표 박창식(김종구)까지, 각자의 목표를 위해 달려드는 인물들의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이 시작된다. 5분마다 공수가 뒤바뀌는 박동호와 정수진 사이의 전세는 엎치락뒤치락 거리며 시청자들을 소용돌이에 가둔다.
"내가, 당신이, 박동호여야 했어."
◇돈 더 내고 봐야...인생 연기는 다 본 셈 = '돌풍' 시청의 묘미 중 하나는 주연 배우인 설경구, 김희애를 비롯한 전설적인 대배우들의 출연이다. 대통령 역을 맡은 김홍파, 신한당 대표 조상천 역의 장광, 대진그룹 회장 강영익 역의 박근형 등 묵직하고 굵은 연기 뿌리를 지닌 신 스틸러들이 등장해 작품의 중심을 굳건히 세운다.
이에 후배 배우들 또한 지지 않고 대립각을 세우며 연기 차력쇼를 펼친다. 대진그룹 부회장 강상운(김영민)은 전작 '부부의 세계'에서 김희애와 전혀 다른 이해관계를 지닌 역할로 연기 호흡을 맞췄으나 '돌풍'에서는 전작에서의 역할이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색다른 연기를 펼친다. 특히 정수진이 "밥 먹을 때 말고는 입 열지 말라"는 말에 스테이크를 일부러 크게 잘라 한 입에 집어먹는 연기는 강상운이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와 동시에 비열한 속성까지 드러내는 탁월한 명장면이다. 이외에도 서기태 의원의 동생 서정연 역을 맡은 임세미, 정수진의 남편인 이민호 역의 이해영, 박동호의 친우인 이장석 검사 역의 전배수 등 작품을 든든하게 받치며 서사를 밀고 나간다.
"대통령을 찾아간 그날 밤, 나는 선을 넘었다. 선을 넘은 자에게 한계는 없어."
◇박경수 작가 필력에 '감탄'...캐릭터 밀도 '물씬' = 무엇보다도 '돌풍'의 강점은 메시지에 있다. 캐릭터의 전사, 그들 간의 인간 관계는 박경수 작가에 의해 촘촘하다 못해 치밀하게 설계됐다. 각 인물이 지닌 특별한 전사나 특성들은 중대한 선택을 하는 때가 오면 큰 역할을 하는 복선으로도 작용한다. 그 선택으로 인해 서사는 요동치며 시청자들의 흥미도와 집중도를 동시에 끌어올린다.
특히 박경수 작가의 필력이 담긴 대사들이 마음을 때린다. 묵직한 딕션으로 한 자 한 자 무게를 실어 내는 배우들의 연기가 품은 힘이 더해져 강렬하게 울려 퍼진다. 그 속에 담긴 메시지 또한 강력하다. 세상은 있는 자들이 거느린다고, 불합리하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하지만 "현실이 답답해서 만들었다"는 박경수 작가의 말처럼 '돌풍'은 잃을 것 없는 자가 승리한다는 것을 픽션으로라도 보여준다. 가진 것이 많고 앞으로도 가질 일만 남은 자들에게 대항하는 힘은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이 '행동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용기의 힘’을 쥐여준다.
정지은 기자 jean@sedaily.comCopyright © 서울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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