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가능한 트럼프에 한국 ‘위험한 도박’ 내몰릴 수도

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2024. 7. 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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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파격적 대북 협상 나서면 尹 정부 선택지 복잡해져
방위비 분담금 증액·한미연합훈련 청구서 요구 가능성도

(시사저널=정대진 원주 한라대 교수)

피로스의 승리. 고대 그리스 북서부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 1세는 이탈리아 원정 당시 로마군을 상대로 여러 번 전투를 벌여 승리를 거두었다. 하지만 매번 손실이 컸다. 나중에는 피로스 1세 스스로 "우리가 로마군과 싸워 승리를 한 번 더 거두어도 우리 역시도 완전히 끝장날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이후 사람들은 이겼지만 결국 이기지 못하고 손해가 발생하는 싸움을 '피로스의 승리'에 비유하기 시작했다. 

6월27일 미국 대선 TV 토론 직후 트럼프의 최측근 책사였던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 전략가도 트럼프의 토론 승리를 피로스의 승리에 비유했다. 싸우기 쉬운 상대인 바이든 대통령이 교체되면 새로운 후보를 상대로 버거운 선거전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였다. 바이든 대통령은 결국 후보에서 사퇴하고 새로운 민주당 후보가 등장할 것인가? 세간의 관심이 현재 이 질문으로 모아지고 있다. 

한반도에 사는 우리는 이 질문에 더해 ①바이든이 완주해 승리하는 경우 ②트럼프가 바이든을 상대로 승리하는 경우 ③민주당의 새 후보가 등장해 승리하는 경우 ④트럼프가 민주당 새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는 경우를 놓고 미 대선을 바라보아야 하는, 더 복잡한 처지가 되었다.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하고 있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싱가포르 정부 제공

바이든이 이기면 현 수준에서 대북 질서 유지

하나씩 살펴보자. 첫째, 바이든이 완주해 승리하는 경우. 바이든은 이번 TV 토론 직후 쏟아져 나오는 후보 사퇴 요구를 일축하고 있다. 거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미 대선의 승리 공식(winning fornula)을 보면 바이든은 경합주 6곳(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네바다·애리조나·조지아)에서 미시간·위스콘신·펜실베이니아만 이겨도 선거인단 538명 중 270명을 확보해 승리할 수 있다. 2020년 대선에서 이 경합주를 모두 내준 트럼프는 경합주 6곳 모두에 화력을 쏟아부어야 하지만 바이든은 3곳에만 화력을 집중해도 승리할 수 있는 구도다.  

만약 바이든이 선거에서 완주해 270대 268의 선거인단 매직넘버를 확보해 승리한다면 한미 관계나 한반도 질서는 당분간 현상 유지 기조를 이어갈 것이다.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와 협력, 한·미·일 안보협력도 한층 더 강화될 것이다. 반대급부로 북한의 반발과 지속적인 군사 도발은 이어지겠지만 극적인 현상 전환 없이 상황 관리 수준에서 한반도 질서는 유지될 것이다. 오히려 2027년 우리나라 대선에서 누가 집권하느냐가 이후 한반도 질서의 중대 변수가 될 전망이다. 바이든이 승리할 경우 한반도 질서 변화를 전망하는 일은 우리의 새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할 2027~28년으로 유보될 가능성이 크다. 

바이든이 270대 268로 신승할 경우 우리가 대비해야 할 점은 사실상 총성 없는 내전과도 같은 상황으로 전개될 미국 내 극심한 정치·사회적 분열 속에서 재미교포와 한인들의 권익을 어떻게 보호하고 지원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든 정리 수순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은 러시아-우크라이나전 이후 대러 관계 복원과 우크라이나 재건 참여 방안과 실익 확보 같은 과제들이다. 한미 관계 자체야 큰 잡음이 안 생기겠지만 미국 내부 상황과 국제질서는 나아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 없이 답답하게 평행선을 그리며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철저한 모니터링과 대비가 필요하다. 

둘째, 트럼프가 바이든을 상대로 승리하는 경우. 트럼프의 입에서 시작되는 전방위적인 상황 전환이 예견된다. 미국 의회의 역할과 각종 여론이 더해져 조정 과정을 거칠 것으로 기대하지만 급격한 방향 선회는 트럼프 새 임기 내내 전 세계가 지켜봐야 할 일이 될 것이다. 한미 관계에서도 방위비 분담금 증액과 한미연합훈련 비용에 대한 개별 청구서 등이 당장 날아올 것이다. 100% 수용 혹은 반대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할 공산이 크다. 일부 수용하더라도 우리 기업의 대미 투자 보호와 한미 동맹 유지 강화에 대한 공약 등 주고받는 거래가 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한 시민단체가 2024년 6월25일 국방연구원 앞에서 방위비 분담금 증액 협상 중단을 촉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방위비분담금 협정 체결을 위해 협상단이 2024년 5월21일 회의장소인 서울 국방연구원에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이기면 보호무역주의에 적극 대응해야

대북 문제에서도 만약 트럼프가 노벨평화상만을 목표로 파격적이고도 전향적인 대북 제안을 하고 김정은이 이에 호응한다면 현 정부의 선택지도 복잡해질 수 있다. 남북대화 재개에 먼저 나설 수도, 나서지 않을 수도 없는 이상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때문에 위험한 도박을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지 않도록 교과서적인 표현이지만 '물샐틈없이 긴밀한 한미 공조'만이 답일 것이다. 

트럼프가 당선될 경우 예단은 어렵지만 미국과 유럽의 대서양 관계 변화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할 수도 있다. 막대한 예산이 드는 우크라이나 지원에 트럼프가 급격히 발을 뺀다면 대서양 관계는 원만히 전개되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전 정리를 빌미로 미국이 유럽 문제에서 손을 떼기 시작한다면 나토(NATO)의 미래도 어디로 향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놓일 수 있다. 유럽의 안보 불안은 제3차대전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는 점에서 설마 하고 넘겨서는 안 될 문제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면 향후 국제질서를 결정지을 대서양 관계도 예의주시하며 예측 가능한 국제질서 창출을 위해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셋째, 민주당의 새 후보가 등장해 승리하는 경우. 바이든의 후보 사퇴 요구 일축, 마땅한 대안 후보가 없는 점, 민주당 대의원들이 새로운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점 등에서 현실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는다. 설사 새로운 후보가 나와 민주당이 승리한다 하더라도 기존 민주당의 정책기조가 유지된다면 한미 관계와 한반도 질서도 급격한 상황 변화를 겪지는 않을 전망이다.

넷째, 트럼프가 민주당의 새 후보를 상대로 승리하는 경우. 이 경우도 역시 두 번째와 마찬가지 상황이 전개될 것이다. 또한 트럼프가 민주당의 새 후보마저 따돌리고 다시 대통령이 되면 유럽의 극우 정치 세력 등장과 맞물려 트럼피즘의 세계화 현상이 더욱 가속화될 수도 있다. 보호무역주의와 자국 제일주의, 민족주의 등장은 한반도에도 중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므로 우리 고민의 본질도 달라질 수 있다. 

한마디로 미 대선과 향후 질서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트럼프와 바이든 시대를 모두 겪은 전 세계인의 경험으로 보면 트럼프가 당선되면 황당한 일들이, 바이든이 당선되면 답답한 일들이 펼쳐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는 11월 이후 세계는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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