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질병 취급 안돼...랩·만화처럼 인식 바뀔것”

김형주 기자(livebythesun@mk.co.kr) 2024. 7. 7.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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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진원 주최 ‘게임이용장애 세미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교수 등 방한
WHO 질병코드 등재 강력 비판
“중독 문제, 다른 곳에 원인 있어
게임 없으면 약물 등에 빠질것”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 교수가 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미국 정신의학회가 동성애를 진단명에 포함시켰다가 1973년 삭제한 것은 질병의 외연이 과학적 근거뿐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에 의해서도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회가 어떤 현상을 질병으로 간주하는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구성원들의 시선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2019년 게임이용장애(게임 중독)를 질병으로 규정하고 국제질병분류(ICD-11)에 반영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게임이용장애를 한국표준질병사인분류체계(KCD) 등재하는 문제를 두고 국내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국콘텐츠진흥원·게임산업협회가 지난 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를 개최했다. 게임이용장애가 질병으로 분류할 만큼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치는지, KCD 등재가 게임에 기반한 문화 지형과 게임 산업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논의하기 위해서다.

게임이용장애(게임 중독)와 정신건강의 관계를 연구하는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오른쪽)과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 교수. 이충우 기자
세미나 참석을 위해 방한한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와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 교수를 매일경제가 만났다. 수년간 게임 이용과 정신건강의 관계를 연구해 온 이들은 세미나에서 각각 ‘게임 과몰입을 논하는 세계에서의 비디오게임과 과학’ ‘연구는 비디오게임과 웰빙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를 주제를 발표했다.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 교수. 이충우 기자
두 학자는 게임 이용이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과학적 근거가 없다고 입을 모았다. 과거에는 게임이 폭력적 행동이나 일상 생활의 장애 등을 유발한다는 가설을 가지고 연구가 진행됐지만 이들 가설은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학계에서 결론이 내려졌다는 것이다.

부오레 교수는 “게임을 하면 게임 중독에 빠진다거나 게임 이용 시간이 우울감 등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은 이미 근거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최근의 연구는 오히려 가상 세계에서의 사회화 경험과 자기 표현 등 게임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 이충우 기자
이들은 게임 중독의 원인이 다른 곳에 있다고 지적했다. 일부 이용자가 일상에 지장이 있을 만큼 게임에 과몰입하는 현상은 그들이 가진 어떤 정신건강적 문제 때문이지 게임이 그것을 유발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게임 중독은 병리적 마음 상태가 야기한 하나의 증상일 뿐이고 게임이 없으면 오히려 약물 등 더 해로운 것에 빠질 수 있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쉬빌스키 교수는 “비유하자면 게임은 우울증 환자가 눕는 침대와 같다”며 “우울증 환자들은 신체에 무리가 올 만큼 침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데, 과거 한국에서 시행된 셧다운제처럼 게임을 강력히 규제하거나 WHO처럼 질병으로 취급하는 것은 우울증 환자에게서 침대를 뺏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부오레 교수는 “게임을 하는 동기는 게임 자체가 좋아서, 주변 사람들이 게임을 해서, 게임 속에서 다른 사람을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서 등 다양하다”며 “게임을 많이 하면 우울증이 생긴다는 증거는 없지만 우울증이 있는 사람들이 게임을 오래 한다는 결과는 종종 보고된다”고 말했다.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가 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지난 2019년 WHO가 게임이용장애에 ICD-11 질병코드를 부여한 것에 대해서도 이들은 섣부른 결정이었다고 주장했다. 게임이용장애에 대한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게임 과몰입을 질병으로 간주할 과학적 증거가 부족한 상황에서 교육·의료 현장과 게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이다.

쉬빌스키 교수는 “어떤 현상에 질병의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것은 과학적인 근거와 정치적인 이유가 모두 작용한다”며 “게임을 낚시 등의 취미와 다르게 취급할 증거가 없음에도 WHO는 게임에 질병코드를 부여했고, 이는 과거에 동성애가 미국정신의학편람(DSM)에 등재됐다 빠진 것처럼 앞으로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 교수가 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이들은 게임이용장애를 질병으로 등재한 ICT-11을 한국의 KCD가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KCD는 오는 2025년 개정을 앞두고 있어 게임이용장애 등재 여부를 내년까지 결론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다. 민·관 협의체가 논의를 이어가고 있지만 그동안 ICD-11에 등재된 질병이 KCD에 등록되지 않은 사례가 없어 KCD에도 게임이용장애가 등재될 가능성이 높다고 점쳐지고 있다.

쉬빌스키 교수는 “과거 영국은 ICD-10을 도입하는 데 20여년이 걸렸고 많은 고민을 거쳐 일부는 도입하고 일부는 반영하지 않았다”며 “어떤 것을 도입하고 말지는 각국에서 정치적 논의를 거쳐 결정하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게임이용장애(게임 중독)와 정신건강의 관계를 연구하는 앤드류 쉬빌스키 옥스퍼드대 인간행동기술학 교수(오른쪽)과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 교수. 이충우 기자
새로운 문화 현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시대마다 반복돼온 현상이라고 이들은 지적했다. 젊은이들이 즐기는 문화에 대해 기성 세대는 늘 우려를 하고 통제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부오레 교수는 “서구 세계에서는 1980~1990년대에 랩 음악이 교육적으로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강했고 만화책 역시 그랬지만 지금은 랩 음악이나 만화책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없다”며 “게임에 대한 인식도 앞으로 달라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마띠 부오레 튈뷔르흐대 사회심리학 교수(맨 오른쪽)가 5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진행된 ‘게임이용장애 국제세미나’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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