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너무하네요"…스터디카페 차린 30대 사장님 '분통' [현장+]
'1시간 800원' 이용권에 할인까지
'줄폐업' PC방 업계 연상된단 지적도
"이러다 다 같이 망할 수도 있는데 가격을 어디까지 내려야 하나 고민이죠."
서울 동대문구의 한 대학가에서 스터디카페를 운영하는 업주 30대 오모 씨는 "어느 시장이던 유행을 타면 과열된다지만 너무한 것 같다"며 이 같이 말했다. 오씨는 "경쟁이 심화한 상황에서 최근엔 대학 종강까지 맞으니 걱정이 많다"며 "이달 초 종강 후 이번 주에만 일일 이용자 수가 30~40%가량 줄었다"고 토로했다.
현재 오씨의 스터디카페 인근에 경쟁 업체만 4개다. 사거리를 중심으로 각 업체가 바로 옆 건물이나 길 건너에 위치해있다. 그는 "경쟁 스터디카페는 또 '방학 이벤트'를 시작하더라"라며 "여기서 가격을 더 낮추기 어려운 데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를 거치면서 가파르게 증가하던 무인 스터디카페 업계가 가격을 낮추며 치열한 '출혈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일부 대학가에선 이용 시간 '1시간에 800원'인 업체까지 등장한 상황이다. 과거 우후죽순 생기다가 줄줄이 폐업의 길을 걸었던 PC방 업계가 연상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가격 언제까지 낮춰야 하나"...대학가 '스터디카페' 업주들 '속앓이'
국세통계포털에 따르면 스터디카페 등을 포함한 교습소·공부방 점포(사업자)는 2019년 3만3880개에서 올해 4월 기준 5만7046개로 무려 68.2% 급증했다. 이중 스터디카페는 약 1만5000~2만여개로 추정된다. 2016년에 설립된 한 프랜차이즈 업체는 8년 만에 점포수를 1000개까지 늘리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다만 폐업률 역시 낮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M프랜차이즈 스터디카페 분석 자료에 따르면, 최근 4년 간 전국 스터디카페 10곳 중 2곳은 문을 닫았다. 금융감독업이 집계한 지난해 자영업 폐업률인 9.5%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많이 생긴만큼, 많이 사라진 셈이다.
이처럼 업체 간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는 가운데 특히 스터디카페가 몰려 있는 대학가에선 가격 낮추기 경쟁이 극심하다. 대학 종강에 따른 매출 하락이 예상돼 이용자 수를 최대한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다.
5일 직접 찾은 오씨의 스터디카페도 현재 50시간 기준 시간권을 4만원에 판매하고 있다. 서울 내 대학가가 아닌 지역이 같은 기준으로 7~8만원대를 유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50%가량 저렴한 가격으로, 1시간에 800원꼴이다. 여기에 할인 이벤트까지 시작할 경우 가격은 더 내려간다. 해당 스터디카페와 바로 인접한 다른 스터디카페 3곳도 가격이 대동소이했다.
해당 스터디카페는 3년전 처음 문을 열었을 땐 50시간 기준 6만원에 이용권을 판매했다. 그러나 이후 학교 정문과 거리가 있는 곳을 포함해 다른 경쟁 업체가 3~4곳이 추가로 생기면서 오씨는 가격을 점차 내려왔다.
그는 "최근 몇 년 사이 스터디카페가 확 늘어나면서 이 동네는 50시간 4만원이 기본 가격이 돼버렸다"며 "가장 많이 팔리는 '4주 기간제' 이용권도 13만으로, 작년 5000원가량 낮췄다"고 말했다. 그는 "그나마 학기 중에 매출이 어느 정도 유지되지만, 종강만 되면 이용자가 확 꺾인다. 월 매출은 창업 당시 대비 평균적으로 30%가량 줄었다"며 "끝물인 사업이 되는 건지 걱정"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대학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이날 바로 인근에 있는 또 다른 대학가의 있는 스터디카페를 돌아본 결과 이용권 가격은 50시간에 5만원 수준이었다. 여기에 대부분 업체가 방학 이벤트를 시작해 실제 이용 가격은 이보다 더 낮았다.
한 스터디카페는 50시간 기준 6만원짜리 시간권 상품을 두 달 동안 이벤트 가격으로 4만8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해당 업체는 프랜차이즈라 본사가 지정한 기본 가격에 지역에 따라 가격을 조정할 수 있는 곳이다.
이 업체 대표는 "말이 방학 이벤트지 사실 종강 이전에도 각종 이벤트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있었다"며 "대학 내에도 스터디카페와 비슷한 공간들이 생기면서 경쟁이 더 심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2022년 이 업장 인수한 이후 분기별 매출이 들쑥날쑥하지만, 전체적으론 하락세"라며 "마이너스만 안 나오는 선에서 가격 경쟁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역시 대학가에서 스터디카페를 운영하고 있다는 A씨는 최근 한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스터디카페 가격 경쟁이 심해져 이젠 '1시간에 1000원대' 시대가 올 것 같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경쟁 업체가 50시간에 5만원으로 기본 가격을 낮췄지만, 자신은 도저히 그 가격대로 영업할 수 없어 종강 기간 3달 동안 그냥 버텨보려 한다"고 적었다.
여기에 카페에서 공부하는 이른바 '카공족'이 늘면서, 스터디카페는 카페와도 경쟁해야 하는 처지다. 실제로 이날 돌아본 다수의 스터디카페는 오전 11시까지 전체 좌석의 3분의 1이 채 차지 않았다. 심지어 방 형태의 고정석을 제외하면 홀에 있는 40여석의 좌석에 단 네 명만 앉아있는 업체도 있었다.
인근 스터디카페 관리 직원 20대 이모 씨는 "여기서 일하면서 무료로 좌석을 사용할 수 있다. 솔직히 일을 시작하기 전엔 나 자신도 주로 카페에서 공부했다"며 "친구들도 스터디카페보단 카페를 주로 이용하는 카공족"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줄폐업' PC방 업계 꼴 될라..."업계 재조정은 불가피"
치열한 경쟁에도 스터디카페가 꾸준히 늘고 있는 이유로는 진입 장벽이 낮다는 점이 꼽힌다. 무인 시스템으로 운영되다보니 업장에 상주할 필요가 없고, 음식점 등과 달리 운영에 큰 기술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오씨는 "오전에 잠깐 스터디카페를 들러 기본적인 부분만 관리하고 나오면 그 다음은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며 "현재 인터넷 쇼핑몰 등 다른 사업체도 같이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두고 마치 2000년대 초반 PC방 업계와 유사한 식의 경쟁이 펼쳐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당시 E스포츠 열풍에 따라 PC방은 한때 2만3000여개까지 불었다. 가격도 1시간에 500원, 300원인 곳이 생기더니, 2014년엔 부산 해운대구에서 '1시간 100원'인 PC방이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같은 가격 경쟁 끝에 현재 전국 PC방 점포 수는 7700여개로 쪼그라들었다.
산업 구조도 유사하다. 스터디카페도 PC방처럼 특별한 창업 노하우 없이 일단 시설만 갖추면 시작할 수 있고, 기본 인테리어와 집기 등 초기 창업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다. 한 프랜차이즈 스터디카페의 경우 50평대 기준 최소 1억5000만원 이상의 창업비용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코로나19를 맞으면서 급속도로 유행을 타 전국에 퍼졌다는 점도 비슷하다.
최철 숙명여대 소비자경제학과 교수는 "PC방, 스터디카페처럼 공간을 대여하는 업종은 가격 외 경쟁 요소가 상대적으로 적다. 여기에 갑자기 수요보다 공급이 과하게 급증하면, 가격을 갖고 '치킨 게임'을 벌이는 일이 발생하기 쉽다"며 "현재 스터디카페 시장이 PC방 업계처럼 줄줄이 도산할 것이라고 예단할 순 없지만, 분명 '리밸런싱'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경쟁에 따라 가격이 내려간다는 건 소비자 입장에선 당연히 반가운 일"이라면서도 "마구잡이로 창업 열풍이 불고 다시 꺼지는 과정에서 개인이 파산하거나, 관련 산업이 흔들리는 등 여러 사회적 진통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진우 한경닷컴 기자 politpet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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