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 박남규 "연구비 적게 깎였다고 '축하한다' 들어"
2012년 세계 최초로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한 공로로 2017년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던 박남규 성균관대 석좌교수가 2024년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신재생에너지 분야의 첫 수상자다. 올해 정부의 연구개발(R&D) 예산 삭감으로 자신의 연구실도 예산 삭감을 피하지 못했다고 밝힌 박 교수는 "기초연구가 내 연구를 완성시키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기초과학연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올해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자에 박 교수를 선정했다고 7일 밝혔다. 과기정통부는 10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개최하는 제2회 세계한인과학기술인대회 개회식에서 수상자에게 대통령 상장과 상금 3억원을 수여할 계획이다.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은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탁월한 연구성과를 이룬 과학기술인을 발굴하고자 2003년 제정됐다. 지난해까지 총 46명이 수상했다.
1839년에 발견된 페로브스카이트는 태양전지가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때 필요한 광(光)흡수 물질이다. 가시광선 영역에 포함된 모든 파장의 빛을 흡수할 수 있고 부도체, 반도체, 도체의 성질은 물론 초전도 현상까지 보이는 특별한 구조의 금속산화물이다. 페로브스카이트는 값도 싸다.
2017년 미야사카 스토무 일본 토인요코하마대 교수가 페로브스카이트를 태양전지에 사용한다는 개념을 처음 제시했다. 널리 쓰이는 실리콘 기반의 1세대 태양전지는 제작 공정이 복잡하고 제작 단가가 비싸 세계 각국에서는 이를 대체할 태양전지를 개발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안타깝게도 등장과 동시에 사장되다시피 했다. 빛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광전환 효율이 높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같은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의 판도를 바꾼 인물이 박 교수다. 박 교수는 2011년 기존 대비 2배 가량 높은 6.5% 효율의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했다.
다음 해인 2012년 박 교수팀은 '페로브스카이트의 아버지'라는 별명을 안겨준 논문을 발표했다. 세계 최초로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개발해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 리포트’에 발표한 것이다.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광전환 효율과 안정성이 높아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광전환 효율 9.7%를 달성했고 500시간 이상 대기 중에 노출돼도 안정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 교수의 논문은 올 4월 기준 8300회 이상 인용될 정도로 태양광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2012년만 해도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와 관련한 논문은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적었다. 현재 관련한 논문은 무려 약 3만8200개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으로 이 태양전지의 광전환효율은 26.1%에 달한다. 2017년 이 공로로 박 교수는 클래리베이트 애널리틱스가 예측한 ‘2017 노벨상 수상 유력 후보(Citation Laureates)’에 이름을 올렸다.
박 교수가 처음부터 과학자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었다. 학부 졸업 후 기업에 취직했지만 2년 뒤 서울대 화학과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연구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페로브스카이트 물질을 처음 다룬 것도 석사과정 때 초전도체를 연구하면서다.
1997년 미국재생에너지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지내면서 염료감응 태양전지를 연구했다. 이후 1999년 귀국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2005년부터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태양전지연구센터장을 지냈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에 몰입하기 시작한 건 2009년 성균관대 교수로 부임하면서부터다.
5일 서울 정부청사에서 대한민국최고과학기술인상 수상을 기념해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박 교수는 "(성균관대에) 부임했을 때 '개인기초 중견연구사업'의 지원을 받아 연구를 시작했고 이 연구가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를 완성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박 교수는 "제가 연구하는 분야는 '응용기술'이지만 기초연구가 상당히 필요하다. 지금까지 연구실이 한 분야에 선두해 나가고 있었기 때문에 연구과제를 수주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지만 올해 연구비가 삭감됐다"며 "이와 관련해 과기정통부에 문의를 하니 다른 연구실에 비해 삭감된 비율이 낮아 '축하드립니다'라는 이야기를 오히려 들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70, 80세 넘어서까지 연구를 이어가고 싶다"면서 하고 싶은 연구가 여전히 많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니어 과학자'가 과학기술 분야에서 오랫동안 축적한 연구를 바탕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기술을 개발할 수도 있다"면서 "궁극적으로 미국처럼 정년 없이 과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제도가 한국에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연구를 바탕으로 다양한 과학기술 분야에 쓰일 수 있는 우수한 물질을 개발하고 싶다고 밝혔다. 페로브스카이트 물질이 광·전자 소자에 활용하기 좋은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은 알지만 왜 그런지에 대한 근본적인 원리는 규명되지 않았다. 박 교수는 이를 규명해 새로운 물질을 디자인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박 교수는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의 광전 효율을 높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 중이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박 교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에너지 발전 기술을 모두 사용하는 '에너지믹스'를 강조하기도 했다. "태양전지는 해가 떠있을 때만 사용할 수 있어 고품질의 전기는 아니다"라면서 태양 에너지를 잘 축적해 줄 ESS 기술뿐 아니라 원자력 발전, 수력 발전 등 다양한 에너지 발전 기술을 함께 사용하며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수상 소감을 전한다면.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라는 새로운 학문분야는 연구실 대학원생들과 국내외 동료 연구자 그리고 학문적 기초를 알려주신 대학원 지도교수님, 프랑스와 미국에서 박사후 연구 시절 스승님들의 도움 없이는 가능할 수 없었다. 제자들과 동료 교수님 그리고 스승님께 고마운 말씀과 함께 수상의 기쁨을 함께하고 싶다.
또한 가족의 헌신적 응원이 없었다면 오늘의 성과도 가능하지 못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도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연구를 꾸준하게 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정부와 성균관대에 감사한 마음 전하고 싶다."
Q. 새로운 학문 분야에 도전한다는 것의 매력은.
"과학은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와도 같다. 세상에 없는 것을 발견하였을 때 얻는 성취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새로운 기술에 대한 생각과 그것을 찾기 위한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문제가 있을 때, 문제를 풀기 위한 새로운 방법을 찾고 결국 문제를 해결하게 되기 때문이다.
아주 작은 현상을 보고도 '재미있네. 흥미롭구나'라고 느끼는 것으로부터 과학기술의 매력이 시작된다. 고체형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를 발견할 때도 유기염료가 가지는 한계를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물질을 찾으려 시작한 연구 활동이라는 행위 그 자체였다."
Q. 연구자이자 스승으로서 함께 연구하는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면.
"학생들에게는 가급적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것을 하라고 조언해 준다. 현재 회자되는 기술이 아니라 10년, 20년 뒤에 나타날 기술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란다.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모르기 때문에 내가 앞으로 공부하고 배워야 할 것이 많아서 오히려 좋다’라는 역설적 사고를 하였으면 좋겠다.
그리고 석박사 과정에서는 가시적 결과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연구의 방법을 찾는 일에 더 몰두했으면 좋겠다. 결국 고기 그 자체보다는 고기를 잡는 법이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마지막으로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시기 바란다. 본인이 설계한 실험이 유의미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상심하지 않길 바란다. 실험을 하는 동안 얻어지는 지식 또한 앞으로의 연구에 매우 중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험의 시행착오 끝에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결과가 기다릴 수도 있다."
[이채린 기자 rini11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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