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판장 사태로 번진 ‘김건희 문자’···“김 여사 전대 개입” 역풍 전망도

문광호 기자 2024. 7. 7.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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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훈, 윤상현, 원희룡, 나경원(오른쪽부터)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자가 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미래를 위한 약속, 공정경선 서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박민규 선임기자

결국 연판장까지 나왔다. 한동훈 후보의 김건희 여사 문자 무시 논란이 이어지면서 국민의힘 당권 경쟁이 진흙탕 싸움으로 변질되고 있다. 한 후보는 자신의 사퇴를 요구하는 연판장을 구태로 규정하며 정면 대응했다. 경쟁 후보 측에서는 총선 책임론, ‘대통령을 흔드는 해당 행위’를 거론하며 한 후보 사퇴를 압박했다. 일각에서는 김 여사의 당 선거 개입 논란이 커지면서 오히려 문자를 공개한 측에 역풍이 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한 후보는 7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려 “선거관리위원을 포함한 일부 정치인들이 제가 사적 통로가 아니라 공적으로 사과 요구를 했다는 이유로 연판장을 돌려 오늘 오후 후보 사퇴요구 기자회견을 준비하고 있다”며 “‘예스’냐 ‘노’냐를 묻는 협박성 전화도 돌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러면서 “같은 이유로 윤리위를 통해 저의 후보자격을 박탈하겠다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한 후보는 “여론 나쁘다고 놀라서 연판장 취소하지 마시고 지난 번처럼 그냥 하기 바란다”며 “국민들과 당원동지들께서 똑똑히 보시게 하자”고 밝혔다. 그는 그러면서 “제가 연판장 구태를 극복하겠다. 당원동지들과 국민들과 함께 변화하겠다”고 했다.

복수의 정치권 관계자에 따르면 일부 원외 당협위원장들은 지난 6일부터 한 후보가 비상대책위원장이던 지난 총선 당시 김 여사가 사과하겠다는 문자를 무시해 총선 패배의 원인이 됐다며 사퇴 요구에 동참해달라는 전화를 돌렸다. 이에 당내에서 과거 친윤석열계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특정인에 대한 비토를 연서명하는 연판장 사태가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됐다.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단체 대화방에서는 10명 안팎의 원외 당협위원장들이 연판장에 대한 비판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다.

당내 비판이 생각보다 거세자 당초 이날 오후 3시로 예정됐던 한 후보 사퇴 촉구 기자회견은 취소됐다. 당 선관위가 이날 연판장을 돌리는 행위는 “줄 세우기 등 구태정치의 전형”이라며 단호한 대응을 예고한 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연판장 동참 의사를 물은 것으로 알려진 박종진 당 선거관리위원은 이날 “저녁자리에서 나온 얘기였다. 송구하다”며 사의를 표명했다.

경쟁 후보들은 한 후보 압박 수위를 더욱 높였다. 원희룡 후보는 이날 SNS에서 “한 후보가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을 전당대회 개입으로 몰아가고 있다”며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대통령실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는 행태는 당을 분열시키고 대통령을 흔드는 해당 행위”라고 덧붙였다. 원 후보는 연판장 논란에 대해서는 이날 부산에서 기자들과 만나 “보도를 통해 알았다. 저희 캠프에서는 (동참하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윤상현 후보도 SNS에서 “한동훈 후보 측이 김건희 여사 문자 논란을 당무개입이라며 대통령실을 끌어들이고 있다”며 “또 다시 대통령실을 전당대회에 끌어들이면 당과 대통령 관계는 끝”이라고 경고했다.

나경원 후보는 한 후보와 원 후보를 모두 비판했다. 그는 SNS에서 “어설프게 공식-비공식 따지다 우리 당원과 국민, 총선 후보가 그토록 바랐던 김건희 여사 사과의 기회마저 날린 무책임한 아마추어”, “이 와중에 지긋지긋한 줄 세우기나 하면서 오히려 역풍이나 불게 만드는 무모한 아바타”라며 각각 한 후보와 원 후보를 겨냥했다. 나 후보는 이날 경북 경주 당원협의회 방문 뒤 기자들과 만나 “한쪽은 피해자 코스프레 하는 것이고 한쪽은 우격다짐 하는 것”이라며 “두 분 모습이 ‘덤 앤 더머’ 같다”고 비판했다.

한 후보 측 등 일각에서는 김 여사가 당 지도부를 선출하는 전당대회에 개입했다는 논란으로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한 원외 당협위원장은 기자와 통화하면서 “이게 한 후보를 쓰러뜨리는 비장의 무기라고 생각했는데 역풍이 부는 방향으로 와버린 것 같다”며 “김건희 여사 문자 내용을 본인이 아니면 누가 깔(공개할) 수 있겠나. 이 자체가 이미 당무 개입”이라고 말했다. 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는 지난 6일 SNS에서 “내밀한 문자가 공개된 것은 김 여사의 뜻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걸 누가 해킹을 해 빼냈겠나”라며 “지난번엔 대통령실, 이번엔 아예 여사가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김 여사 문자 논란은 지난 4일 CBS 라디오에서 김규완 CBS 논설실장이 지난 1월 김 여사가 한 후보에게 보낸 문자의 요약을 공개하면서 불거졌다. 김 논설실장이 공개한 문자에 따르면 당시 김 여사는 “몇 번이나 국민들께 사과를 하려고 했지만 대통령 후보 시절 사과를 했다가 오히려 지지율이 떨어진 기억이 있어 망설였다. 당에서 필요하다면 대국민 사과를 포함해 어떤 처분도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여권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1월17일 김경율 전 비대위원이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마리 앙투아네트를 거론하며 사과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힌 전후로 김 여사는 한 후보에게 총 5번 문자를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한 후보는 1월18일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께서 걱정하실 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김 논설실장이 공개한 문자는 1월19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한 후보는 지난 6일 SBS 유튜브에 출연해 “제가 공개적으로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걸 이야기했고 그 이전에도 대통령실에다가 ‘이건 어떤 방식으로든 간에 국민 눈높이에 맞는 사과가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해왔다”며 “(그런데) 대통령실에서는 좀 부정적인 입장을 저한테 이야기하시던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상황에서 영부인께서 저한테 개인적인 방법으로 문자를 보낸다면 저는 거기서 답하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한다”며 “사과가 저한테 사과하는 건 아니지 않나. 제 허락이 필요한가”라고 말했다.

문광호 기자 moonli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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