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러브버그 없애려다 ‘더 큰 놈’ 온다
방제, 벌목 등 인간 활동이 가져온 생태 불균형
하얀 아파트 현관 벽면에 까만 점들이 보인다. 유심히 살펴보니 두 개체씩 모여 있다. 얼룩인지 곤충인지 분간이 안 된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자 빨간 점이 보였다. 1㎝도 채 되지 않는 곤충 등에 있는 반점이다. 한 쌍의 곤충이 꼬리 부분을 맞대고 있다. 비슷한 모습의 친구들이 주변에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전화를 들어 올린 순간 얼굴 옆으로 한 쌍이 날아올랐다. ‘러브버그’라 불리는 붉은등우단털파리의 모습이다.
2024년 6월25일 서울 양천구 목동의 한 아파트단지를 찾았다.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자원관)의 현장 조사가 이뤄진 날이다. 양천구는 2023년까지만 해도 러브버그가 많이 관찰되지 않은 곳이다. 2024년 6월 초중순부터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6월 중순 대규모로 관찰됐다. 이날 현장 조사에선 현관 옆 벽 그늘이나 나무에 붙은 러브버그 무리를 종종 발견했지만, 대규모 무리는 발견되지 않았다.
강서·양천·성북구 등에서도 발견
“지난주에 개체 수가 많았고요. 이번주는 확연히 줄었습니다. 2023년에도 이곳(양천구)에서 발생 기록은 있지만 많이 발생하지는 않았어요. 아마 작년에 퍼진 개체들이 이쪽에 번식해서 많은 개체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박선재 자원관 연구관이 말했다. 박 연구관은 6월 초부터 이곳을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2022년 서울 은평구에서 대발생한 러브버그는 2023년부터 서울 전역에서 관찰되기 시작했다. 2024년엔 서울 강서구와 양천구, 성북구 등 외곽 지역에서 대규모로 발견됐다. 암수가 서로 짝짓기를 하며 비행하고 무리 지어 다니기 때문에 징그럽다며 불편을 호소하는 이가 많지만, 러브버그는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곤충이다. 오히려 유충 때는 썩은 낙엽을 분해하고 성충 때는 꽃의 수분을 돕는다.
자원관은 러브버그가 대발생한 2022년 이후 ‘네이처링’이라는 시민 참여형 자연관찰 공유 플랫폼을 기반으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024년부터 서울 양천구에 현장 조사를 나온 것도 네이처링에 관찰된 사례가 많이 기록됐기 때문이다. “러브버그는 유충 시기를 낙엽이 잘 쌓인 곳에서 보내거든요. 아파트 단지여도 공원이 잘 조성되어 있으면 러브버그가 잘 살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거죠.” 박 연구관이 말했다.
양천구에 이어 찾은 은평구 진관동에선 러브버그를 거의 볼 수 없었다. 이곳은 2022년 대발생 진원지다. 2024년에도 은평구 봉산이나 은평구와 가까운 북한산에서도 많이 관찰되고 있지만, 진관동에선 오히려 줄었다. 6월 이후 매주 진관동을 모니터링한 박 연구관은 “6월 말까지도 작년이나 재작년 같은 발생이 관찰되지 않고 있다”며 “서울 전역으로 퍼져 번식하면서 개체가 계속 유지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러브버그가 처음 발견된 건 2018년 인천에서다. 2022년 대발생 전까지도 서울 종로구나 경기 등 수도권에서 발견됐다.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듯 나타난 곤충이 아니라는 뜻이다. 곳곳에서 조용히 살던 러브버그는 왜, 갑자기 은평구라는 공간에서 대규모로 발생했을까.
많은 언론 보도나 전문가들이 러브버그 대발생 원인을 기후위기로 지목했다. 박 연구관도 “이런 생물들이 대발생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으로 기후변화를 많이 들고 있다”며 “지구 온난화로 인해 곤충들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더 많은 개체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기후변화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저희도 천적의 변화라든가 서식지의 특성 등을 복합적으로 분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벌레 등 포식자 줄자 ‘대발생’ 가능성
물론 기후위기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기후 탓으로만 몰아가는 동안 다른 원인은 가려졌다. 사실 곤충 대발생은 생태계에서 종종 관찰되는 일이다. 2021년 국립생태원에서 발간한 보고서 ‘대발생 곤충 모니터링과 천적의 활용 가능성 탐색’을 보면, 1983~2020년 전국에서 대벌레 대발생만 18차례 관찰됐다. 대벌레뿐 아니라 다른 곤충들의 대발생 사례까지 더하면 셀 수도 없다. 이를 모두 기후위기 탓으로 돌리는 건 불가능하다. 2022년 대발생 이후 러브버그를 연구해온 신승관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2020~2021년 은평구에서 대벌레가 대발생했을 때 방제한 것이 러브버그 대발생의 원인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러브버그가 굉장히 느리잖아요. 다른 곤충들이 먹기 좋은 곤충 중 하나거든요. 그런데도 대발생을 한 이유는 주변에 포식자가 줄어들지 않았나 하는 거죠. 대벌레 방역을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다른 포식성 곤충들이 죽잖아요. 러브버그만 죽이는 약을 뿌릴 수는 없고,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곤충을 죽이는 약을 뿌리겠죠. 그럼 생태계 사이클에 불균형이 생기는 거예요.” 신 교수는 현재 러브버그가 다른 곤충들과 비교해 살충제에 대한 저항성이 높은 유전적 특성이 있는지 연구하고 있다.
은평구는 대벌레와 러브버그가 발생했을 때마다 화학적 방제 작업을 벌였다. 대벌레 방역을 위해선 봉산 일대에 스미치온(페니트로티온 유제)을 사용했고, 2022년 러브버그가 나타난 이후엔 베가디(디페노트린)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끈끈이 트랩과 같이 물리적인 방법도 사용했다. 페니트로티온 유제는 과수, 수목 해충 방제에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종합살충제다. 스미치온의 제품 정보를 보면, 적용 가능한 해충만 수십 종이다. 종을 구분하지 않고 죽일 수 있는 약품이란 뜻이다. 주의 사항에도 꿀벌이나 야생조류에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적혀 있다. 가정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디페노트린은 밀폐된 공간에서 사용 시 재채기나 비염 등 사람에게도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살충제다.
벌목한 뒤 방치한 나무가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러브버그 대발생 직후) 은평구에 가서 보니까 공사하면서 쌓아둔 나무가 많더라고요. 러브버그가 기본적으로 분해자 역할을 하기 때문에 나무 잔가지나 낙엽 같은 게 많이 쌓인 곳으로 모이는데, 월동할 서식처를 제공한 셈이죠. 온도 영향도 많이 받겠지만 절대적으로 꼭 그것 때문이라고만 얘기하는 건 문제가 있어요”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의 말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방제나 벌목 등과 같은 인간의 활동이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한 연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은 오로지 어떻게 ‘방제’할지에 몰린다. 서울시는 진작부터 살충제를 뿌리는 방제를 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웠지만, 2024년 민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보도가 쏟아지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살충제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모르는데, 양천구 등 일부 지역에선 방제 작업에 나섰다. 서울시의회에선 러브버그를 해충으로 지정하도록 조례 변경까지 추진 중이다. 그러나 러브버그를 아무리 약으로 잡아도 문제는 끝나지 않는다. 신 교수는 무분별한 방제로 인해 제2의 러브버그가 대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곤충 대발생이 보내는 경고-하’편 기사(https://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5758.html)으로 이어집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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