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톱밴드 영웅’ 게이트 플라워즈, 해체 9년 만에 정규 2집

서정민 기자 2024. 7. 7.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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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재결성…해체 9년 만에 정규 2집
12년 만의 정규 앨범을 들고 돌아온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 왼쪽부터 이인산(베이스), 박근홍(보컬), 염승식(기타), 전상진(드럼). 게이트 플라워즈 제공

2019년 강릉 바닷가에서 염승식은 지인과 술을 마시고 있었다. 지인이 음악을 틀었다. “저 언덕 너머로/ 품었던 날들이/ 언젠가 내게 다시 또/ 돌아올 거라 믿으라던/ 넌 말했지 될 거라고/ 우리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내게 말했어/ 꿈꾸는 그 무엇이라도” 염승식이 기타를 쳤던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의 2012년 정규 1집 수록곡 ‘기억의 틈’이었다.

뜨거운 시절이었다. 2005년 결성한 게이트 플라워즈는 2010년 첫 미니앨범(EP) ‘게이트 플라워즈’로 데뷔했다. 수록곡 ‘예비역’으로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록 노래 상과 신인상을 거머쥐었다. 2011년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 ‘톱밴드’(KBS2)에 출연해 4강까지 올랐다. 박근홍의 그르릉거리는 보컬과 거칠면서도 탄탄한 사운드에 록 팬들은 열광했다. 방송에서 코치를 맡았던 신대철의 회사와 계약하고 정규 1집 ‘타임스’를 내놓았다. 기세를 이어 2014년 두번째 미니앨범 ‘늙은 뱀’도 발표했다.

하지만 2015년 밴드는 멈춰섰다. 음악적 견해차에 인간적 갈등까지 겹치자 박근홍이 탈퇴해버렸다. 남은 멤버들은 “새 보컬을 영입해 이어가는 건 의미 없다”며 사실상 해체했다. 이후 박근홍은 에이비티비(ABTB), 오버드라이브 필로소피 등 다른 밴드로 활동을 이어갔다. 염승식은 ‘조이엄’이란 이름으로 솔로 앨범을 냈지만, 별다른 활동을 하진 않았다. 양종은(드럼)은 본업인 일러스트레이터로 돌아갔고, 유재인(베이스)은 다른 밴드에서 연주했다.

게이트 플라워즈가 지난해 9월 강원도 철원 고석정에서 열린 ‘디엠지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공연하고 있다. 디엠지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제공

염승식은 음악 대신 서핑, 요가 등에 빠져들었다. 아예 강릉으로 내려가 서핑숍과 웰니스 관련 사업을 운영했다. 그러다 문득 ‘기억의 틈’을 듣고 그 시절 기억의 틈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 곡을 듣는데, 근홍이 형이 노래를 너무 잘하는 거예요. 음악적으로 다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인간적으로 잘못했던 것도 사과하려고 형에게 오랜만에 연락했어요. 그렇게 다시 연이 이어져, 형이 강릉에 놀러왔어요. 만나서 ‘나중에 게이트 플라워즈 다시 해보자’고 의기투합했죠.” 1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한 카페에서 만난 염승식이 말했다.

2022년 서울로 돌아온 염승식에게 한 기획자가 연락해왔다. 강제철거 위기에 놓인 을지오비(OB)베어 살리기 공연에 게이트 플라워즈로 와줄 수 있냐고 물었다. 박근홍에게 연락하니 “하자”고 했다. 양종은과 유재인은 합류하기 힘든 상황이라 다른 연주자를 구해야 했다. 그때 급히 섭외한 드러머가 지금 정식 멤버가 된 전상진이다. “오랜만의 공연에 많은 분들이 오셔서 ‘예비역’을 ‘떼창’하시는 거예요. 죄송하면서도 뿌듯했죠.” 박근홍이 당시를 떠올렸다.

이를 계기로 재시동을 걸었다. 오디션을 거쳐 이인산(베이스)까지 합류하면서 라인업이 갖춰졌다. 지난해 7월 미니앨범 ‘올인’을 발표하며 8년 만의 복귀 신고를 마쳤다. 소속사도 홍보 채널도 없었지만, 오랜 팬들이 뜨겁게 반겨줬다. 그해 9월 ‘디엠지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무대에 섰다. 관객들이 끓어올랐다. 염승식은 “8년이면 관객 성향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고 걱정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게이트 플라워즈가 1일 발표한 정규 2집 ‘메이저스 오브 마이너스’ 표지. 게이트 플라워즈 제공

지난 1일 정규 2집을 발표했다. 12년 만의 정규 앨범은 십시일반 텀블벅 펀딩으로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정식 노래 7곡과 9개의 잼(즉흥연주) 트랙(2개는 시디에만 수록)을 담았다. ‘엠파이어’ ‘디자이어’ ‘한잔’이 공동 타이틀곡인데, 7곡 모두 타이틀곡이라 해도 될 만큼 고른 수준을 보여준다. 초창기의 패기와 숙성된 연륜이 잘 버무려졌다. 잼 트랙에선 멤버들이 즉흥연주를 하며 곡을 쌓아가는 과정을 엿들을 수 있다.

앨범 제목 ‘메이저스 오브 마이너스’는 중의적이다. 염승식은 “우리 곡이 대부분 마이너키(단조)다. 여기서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뽑아내겠다는 뜻과, 록과 인디라는 마이너한 곳에 머물면서도 멋진 걸 보여주겠다는 뜻을 담았다”고 설명했다. 박근홍은 “오랜 기다림에 사죄와 보답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다. 새 멤버 전상진은 “록 페스티벌에서 보면 재밌는 팀”, 이인산은 “멤버들 시너지로 전에 없던 걸 만드는 팀”이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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