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고, 생활은 크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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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품은 새는 고요히 집중했고, 스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과 비와 추위를 새는 혼자서 감당했다. 수컷은 작은 먹이들을 부지런히 날랐고 가끔씩 암컷과 교대했다. 나는 생명과 생명 사이를 건너가는 온도의 작용을 생각했고 '품다'라는 한국어 동사의 경건함을 생각했다. 새가 알을 품어서 새끼를 깨워 내고, 아득히 먼 곳에서 호롱불처럼 깜박이는 생명을 가까이 불러와서 형태를 부여해 주듯이, 나는 나의 체온을 불어넣어 가며 단어와 사물들을 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당신들과 나는 오랫동안 잘못 살아왔다."
"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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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조철 북 칼럼니스트)
"알을 품은 새는 고요히 집중했고, 스스로 가득 차 있었다. 어둠과 비와 추위를 새는 혼자서 감당했다. 수컷은 작은 먹이들을 부지런히 날랐고 가끔씩 암컷과 교대했다. 나는 생명과 생명 사이를 건너가는 온도의 작용을 생각했고 '품다'라는 한국어 동사의 경건함을 생각했다. 새가 알을 품어서 새끼를 깨워 내고, 아득히 먼 곳에서 호롱불처럼 깜박이는 생명을 가까이 불러와서 형태를 부여해 주듯이, 나는 나의 체온을 불어넣어 가며 단어와 사물들을 품어 본 적이 있었던가. 당신들과 나는 오랫동안 잘못 살아왔다."
팔순을 곧 맞이할 소설가 김훈씨가 신작 에세이집 《허송세월》로 '헛되고 헛된' 지난 일들을 돌아보고 그 속에서 통찰한 '빛'나는 일들을 노래했다. '핸드폰에 부고가 찍히면 죽음은 배달 상품처럼 눈앞에 와 있다'는 첫 문장으로 죽음마저 일상으로 여기는 그는 늙어가는 것을 한탄하기보다 늙어서야 제대로 보인다며 부지런히 바라보고, 생각하고, 글을 썼다.
"햇볕은 신생하는 현재의 빛이고 지금 이 자리의 볕이다. 혀가 빠지게 일했던 세월도 돌이켜보면 헛되어 보이는데, 햇볕을 쪼이면서 허송세월할 때 내 몸과 마음은 빛과 볕으로 가득 찬다. 나는 허송세월로 바쁘다."
《허송세월》에는 김 작가가 생과 사의 경계를 헤매고 돌아온 경험담, 전쟁의 야만성을 생활 속의 유머로 승화해 낸 도구에 얽힌 기억, 난세를 살면서도 푸르게 빛났던 역사의 청춘들, 인간 정서의 밑바닥에 고인 온갖 냄새에 이르기까지 '겪은 일을 겪은 대로' 쓴 45편의 글이 실렸다. 노년에 접어든 후 술과 담배에 품게 된 애증의 감정을 털어놓는 그는 심혈관 계통의 질환 때문에 그간 크게 아팠다며 '신체 부위와 장기마다 골병이 든' 몸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어떤 것인지 자조하고, 몸이 완전히 사그라들어 마침내 뼛가루가 되기 전에 남길 유언 같은 글도 남겼다.
"가볍게 죽고, 가는 사람을 서늘하게 보내자. 단순한 장례 절차에서도 정중한 애도를 실현할 수 있다. 가는 사람도 보내는 사람도, 의술도 모두 가벼움으로 돌아가자. 뼛가루를 들여다보면 다 알 수 있다. 이 가벼움으로 삶의 무거움을 버티어 낼 수 있다. 결국은 가볍다."
허송세월로 바쁘다는 김 작가는 여전히 '밥벌이하고 싸우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지지고 볶는 일상'에 눈을 떼지 못하는데, 글쓰기가 평생의 과제일 수밖에 없는 그는 '웃자라서 쭉정이 같고, 들떠서 허깨비 같은 말'을 버리고 필요한 말만을 부림으로써 언어를 삶의 한복판에 밀착시키고자 한다. 서로에게 악다구니를 쓰는 말들로 들끓어 말하기 어렵고 듣기 괴로운 세상에 몸서리치면서도 그의 문장은 꿋꿋이 나아간다.
"꽃핀 나무 아래서 온갖 냄새들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노년은 늙기가 힘들어서 허덕지덕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태어나기를 기다린다. 이 미세먼지 속에서 아기들이 태어나서 젖 토한 냄새를 풍겨 주기를 나는 기다린다. 이 마지막 한 문장을 쓰기 위하여 나는 너무 멀리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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