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난 ‘유령도시’···자전거로 굴러가는 쓰치우라[일본 위기도시를 가다③]
일본 도쿄에서 기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이바라키(茨城)현 쓰치우라(土浦)시. 과거 상업도시로 명성을 떨쳤던 이 곳은 쓰치우라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얼굴(まちの顔)로 불리우는 상가가 모여있다. 1985년 쓰치우라역 도보 5분거리에 들어선 ‘MALL 505’도 그 중 하나다. 전체 길이 505m, 3층짜리 5개동 73개 점포 규모의 대형 쇼핑센터로 쓰치우라시의 번영을 상징하는 상권이다.
쓰치우라시 번영 상징하던 도심 상가의 쇠락
끝이 없을 줄 알았던 호황기는 저출생 고령화로 인한 인구 감소와 경기 침체로 저물었다. 외곽 지역에 대형 주차장을 갖춘 쇼핑몰과 주택 단지가 들어서면서 이용객 이탈이 가속화됐다. 모터리제이션(자동차 대중화) 확산이 상권 공동화를 부채질했다.
결국 MALL 505와 명점가((名店街)를 비롯한 쓰치우라 전통 상가는 일본 수도권의 대표적인 샷타도오리(シャッタ-通り·폐점 가게가 많은 거리)로 전락했다.
지난달 24일 낮 12시. 점심 시간에 찾은 상가는 적막했다. 문을 연 식당과 점포는 9개 남짓이었고, 내려간 셔터마다 임대 안내문이 붙었다. 인근 명점가 역시 방문객 발길이 끊겼다. 이날 영업중인 점포는 청과물 가게와 귀금속 점포 두 곳 뿐이었다.
관공서 들어왔지만…옛 상가 살리기 전략 실패
2015년 중심가 부흥을 위해 비어있던 역 앞 대형 쇼핑센터(URARA)로 시청이 옮겨왔지만 상권은 살아나지 않았다. 새로 들어선 호텔과 도서관도 몰락한 상가를 되살리지 못했다. 중심 상업지 활성화를 통해 옛 시가지의 부활을 모색했던 쓰치우라시의 전략은 실패로 끝났다.
MALL 505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데라우치 마유미씨(72)는 “주민도, 관광객도 이쪽 상가로는 오지 않고 다른 쇼핑몰로 가고 있다”며 “지금도 점심 시간인데 손님이 한 명도 없지 않나. 그나마 오랜 단골들 덕분에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각한 도심 공동화를 겪은 쓰치우라시에는 ‘유령도시’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실제로 쓰치우라시 인구는 2017년 13만9547명을 기록, 그간 꾸준히 유지하던 14만명 선이 붕괴됐다. 이후에도 지속적인 인구 감소로 2020년 13만5382명까지 하락했다.
전망도 암울하다. 지난해 일본 국립인구사회보장연구소에서 낸 ‘미래 인구 전망’을 보면 2050년 쓰치우라시 인구는 11만8000명으로 줄어든다.
쓰치우라의 돌파구 ‘180㎞ 자전거 로드’ 개통
옛 도심 상가 살리기로 쓴 맛을 본 쓰치우라시는 침체 돌파구로 자전거를 택했다. 주변 환경 자원을 활용해 일본 제1의 자전거 도시로 거듭 난다는 전략이다.
일본에서 두 번째로 큰 호수인 가스미가우라(霞ヶ浦) 일대와 함께 쓰치우라시에서 사쿠라가와(桜川)시 이와세(岩瀬)를 잇는 약 40㎞의 쓰쿠바 폐 철도를 자전거 도로로 만들었다.
인구 유출로 골머리를 앓던 이바라키현이 ‘CYCLING IBARAKI’를 내걸고 쓰치우라시와 함께 자전거 특화 지역 만들기 밑그림을 짰다. 인접한 쓰쿠바(つくば)시와 싸이클링 특화 호텔을 구상하고 JR동일본이 참여하면서 ‘자전거 도시 프로젝트’는 민·관 합동 사업으로 확대됐다.
2016년 가스미가우라 구간과 쓰쿠바 폐 철도 구간을 합친 약 180㎞ 길이의 ‘쓰쿠바 가스미가우라 린린 로드’(つくば霞ヶ浦りんりんロード)가 개통됐다.
폐 철도 활용, 입소문 타고 자전거 도시 명성
특히 가파른 경사 없이 평탄한 길이 이어지는 쓰쿠바 폐선 구간 반응이 좋았다. 해당 구간에는 구 역사를 활용해 곳곳에 휴게소를 만드는 등 개통 이후에도 시설을 보완했다. 휴게소에는 타이어 공기 주입기 등 간단한 정비 시설도 갖췄다.
2018년 쓰치우라역에는 자전거 판매와 대여, 정비를 할 수 있는 거점 시설이 들어섰다. 역 지하에는 코인 로커와 샤워 룸 같은 편의시설을 갖추고 방문객을 끌어 모았다. 싸이클링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컨셉이다. 2019년 일본 국토교통성은 쓰쿠바 가스미가우라 린린 로드를 국가 자전거 도로(national cycle route)로 지정했다.
자전거 도시로 입소문이 나면서 전국의 사이클리스트가 모이기 시작했다. 자전거 관광 활성화와 인프라 구축으로 일자리도 생겨났다.
쓰치우라역 인근 자전거 특화 호텔에 취업한 후카야 시오리씨는 “싸이클링을 목적으로 한 방문객이 늘고 있다”며 “한 번 찾은 분들은 재방문하는 경우가 많다. 자전거 덕분에 도시에 활기가 생기고 있다”고 말했다.
줄어들던 쓰치우라의 인구는 2021년을 기점으로 증가 전환했다. 2021년 14만명대를 회복한 뒤 올해 6월 기준 14만2300명까지 늘었다. 13만명대에서 하락세를 거듭하다 2040년 12만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인구 전망을 빗겨간 셈이다. 중심가는 몰락했지만 신규 주택단지 중심으로 정착 인구가 늘고 있다. 고물가 국면에 도쿄 집세·물가를 감당하기 힘든 젊은 직장인들이 통근이 가능한 쓰치우라시에 터를 잡으면서다. 자전거 관광 활성화로 청년 일자리가 증가한 영향도 컸다.
쓰치우라 외곽 기다마리(木田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장지혜씨(52)는 “시에서도 노력을 많이 해서인지 동네에 사람이 늘고 환경이 달라지는 게 체감된다”며 “자전거 타는 분들이 이곳 식당까지는 오지 않아 매출에 영향은 없지만 자전거가 도시를 살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고 했다.
“도시는 변화하는 공간, 쇠퇴 낙인 찍지 말길”
전문가들은 지역의 좁은 단면만을 보고 쇠퇴의 ‘낙인’을 찍는 행위는 위험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쓰치우라시 사례처럼 지역 내 여러 공간의 역할이 바뀌는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를 보고 ‘죽은 도시’로 간주하면 기피 현상이 심화돼 도시 활성화의 동력이 꺼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호상 인천대 일본지역문화학과 교수는 “쓰치우라시의 중심 상업지역만 보면 쇠퇴한 듯 보이지만 지역 생산매출은 오히려 증가했다”며 “지방소멸로 도시가 무너진 게 아니라 도심의 변화 과정에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지역 일부에서 나타난 현상만을 보고 지역 전체가 살 곳이 못 된다는 부정적인 프레임을 씌워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쓰치우라 | 반기웅 일본 순회특파원 b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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