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지적에도 심장이 철렁…‘불안이’가 외친다 “난 망했어!”[최고야의 심심(心深)토크]

최고야 기자 2024. 7. 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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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의 작은 지적에도 큰 타격을 받아 ‘나는 못났다’ ‘나는 무능하다’는 생각으로 괴로워하는 이들이 있다. 소심함을 버리고 타인의 평가에 담대해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게티이미지

“이렇게 했다간 선배한테 혼납니다.”

11년 차 직장인 안소심 씨(가명)는 며칠 전 신입사원 교육에 참관하러 들어갔던 날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린다. 교육을 맡은 선임이 교육생들 앞에서 안 씨에게 업무 관련 퀴즈를 냈는데, 답이 틀렸기 때문이다. 선임은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이렇게 하면 혼난다”고 말했고, 교육생들 사이에서 피식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행히 안 씨는 뒤이은 퀴즈 문제를 전부 맞혔다. 그런데도 그는 앞서 틀린 그 문제가 너무나도 신경 쓰였다. 안 씨는 “사람들이 연차에 비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할까 두렵다”며 “능력도 없으면서 승진을 괜히 했다는 생각까지 든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비판에 의연하게 대처하기는 어렵다.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부정적인 평가에 움츠러드는 것은 누구나 비슷할 터다. 더욱이 다른 사람의 시선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국 사회에서 비판을 개의치 않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안 씨처럼 타인의 지적을 애초 의도보다 확대해석해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다른 문제다. 그의 선임은 단지 오답을 지적했을 뿐, 그가 승진할 자격이 없다고 평가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안 씨는 여러 퀴즈 중 하나만 틀렸을 뿐이다. 그런데도 삽시간에 ‘나는 무능하다’ ‘자격이 없다’는 자기 파괴적 생각으로 치달았다. 자신 없는 태도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을까.

● 비판은 120% 흡수…칭찬은 튕겨내

자존감이 낮고, 자기비판 수준이 높으면 다른 사람의 지적이나 비판에 더 예민해진다. 게티이미지

비판에 대한 과민 반응은 낮은 자존감, 자기 비판적 사고, 완벽주의 등이 복합된 심리적 이유로 나타난다. 이런 사람은 타인의 비판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여기기 쉽다. 비판보다 더 센 강도로 ‘난 왜 이렇게 못났지’ 하고 스스로 질책한다. 사소한 지적에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못났기 때문이라는 잘못된 귀인을 하기 쉽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주변 비판에 귀를 더 쫑긋하는 경향이 있다. 자존감은 ‘나는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가’에 대한 주관적 인식을 나타낸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나는 못난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갖기 쉽다. 다른 사람이 나를 안 좋게 평가하면, 이는 자신의 정체성과 일치하는 익숙한 정보이기 때문에 걸러내지 않고 그대로 흡수해 버린다. ‘역시 나는 못난 사람’이라면서 정체성이 더 견고해지기도 한다.

●‘내 탓’ 하는 사람 특징

뭔가에 실패하면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실패는 나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경험이다.
성공하지 못하면 내가 얼마나 가치 있는 사람인지 의문이 든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잘 알게 된다면 나를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에게 부끄러움을 자주 느낀다.
내 목표나 이상과 현실의 나를 자주 비교한다.

자료: 자기비판 척도(LOSC) 중

안타깝게도 이들은 비판은 잘 흡수하지만, 칭찬은 되레 튕겨낸다. 캐나다 워털루대 심리학과 연구진이 자존감과 칭찬에 관한 연구를 여러 건 진행한 결과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칭찬을 부담스러워해 잘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칭찬은 ‘못난 나’라는 자신의 정체성과 불일치하는 정보라고 판단해 받아들이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타인의 칭찬을 받으면 ‘저 사람은 나를 잘 모르고 한 소리야’ ‘듣기 좋으라고 괜히 하는 소리겠지’라며 불편한 마음을 갖는다. 자신이 칭찬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에 상대방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실망하게 할까 봐 두려워하기도 한다. 연구진은 “평생 쌓아온 ‘못난 나’라는 정체성을 흔드는 것보다, 일회성 칭찬을 평가절하하는 게 이들에게 더 쉬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이와 반대로 반응한다. ‘나는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이들은 타인이 자신을 비판하더라도 나라는 사람 자체가 비판받았다고 받아들이지 않는다. 남의 비판이 자신이라는 존재 전체가 아니라 일부에만 국한된 문제라고 선을 그을 수 있기에 충격이 덜하다.

잘해도 불안다음에 잘해야”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2’의 ‘불안이’는 뭔가를 놓치거나 실수할까봐 끝없이 불안해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제공
타인에게 좋지 않은 평가를 받는 상황을 피하려고 완벽주의를 추구하게 됐다면, 악순환으로 가는 지름길을 택한 것이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잘 보이는 것이 목표인 ‘사회 부과 완벽주의(Socially Prescribed Perfectionism)’는 삶에 방해가 되는 부적응적 완벽주의로 꼽힌다. 때로는 실패가 두려워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스스로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려는 적응적 완벽주의와는 구분된다. (2023년 12월 16일 자 기사 참고: “난 무능하다”는 강박, ‘불행한 완벽주의자’ 만든다)

부적응적 완벽주의는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학생상담센터 제니퍼 그제고레크 박사 연구팀이 대학생 273명을 대상으로 적응적 완벽주의자와 부적응적 완벽주의자 그리고 완벽주의 성향이 없는 사람의 심리적 특징을 살펴봤다. 그 결과 부적응적 완벽주의자가 자기를 탓하고 비판하는 수준이 가장 높았고 자존감은 가장 낮았다.

이 세 부류 학생은 같은 결과를 두고도 해석하는 방식이 달랐다.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과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의 학점 평균이 거의 비슷했는데도 부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자신의 성적을 상당히 못마땅해했다.

반면 적응적 완벽주의 학생들은 성적이 꽤 괜찮다고 느꼈다. 부적응적 완벽주의자들은 ‘못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다음엔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잘했다’는 피드백을 받아도 역시 ‘다음에 더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어떤 경우에도 성과에 만족할 수 없었다.

여기에 과(過)일반화(overgeneralization)와 파국화(破局化·catastrophizing) 사고가 더해지면 다른 사람의 비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과일반화 사고는 한두 사건만으로 비논리적 결론을 내려 일반화하는 것을 말한다. 앞의 사례에서 안 씨가 단지 퀴즈 하나를 틀리고 ‘나는 무능하다’고 생각한 것이 과일반화 사고다. 파국화 사고는 부정적 사건이 하나 일어났을 때 최악의 결과로 악화할 것이라고 믿는다. 만약 안 씨가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나는 앞으로 팀장 승진을 못 하고, 결국 회사에서 쓸모없어져 쫓겨날지도 몰라’라고 생각하게 된다면 파국화 사고가 나타난 것이다.

● 끝나지 않는 자기 고문 게임

스스로를 다그치는 내면의 작용은 게슈탈트 심리치료의 상전(上典·top dog)과 하인(underdog) 개념으로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상전은 당위적이고 지시적인 목소리로 몰아붙이고 질타하는 내 안의 나를 말한다. 하인은 이 목소리에 ‘난 못 해!’ 하며 대항하지만, 끊임없이 억압당하고 괴롭힘당하는 또 다른 내 모습이다.

‘잘해야만 한다’는 내 안의 목소리는 어린 시절 어른들에게 들은 말을 그대로 따라 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게티이미지

타인의 작은 지적에도 ‘나는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상전은 ‘더 잘해야만 해’ ‘더 완벽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넌 무능해’라고 몰아붙인다. 완벽을 추구하고 이상적 목표를 이루라고 강요한다. 상전 목소리는 주로 어린 시절 엄격한 부모나 교사같이 영향력이 큰 존재가 무의식적으로 심었을 가능성이 크다.

상전 목소리가 클수록 작은 실수와 실패에 민감해진다. 하인은 자신이 못나서 상전의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다는 수치심을 느낀다. 동시에 타인에게 비판받고 거부당할 것이라는 두려움도 느낀다. 그래서 상전과 하인 개념을 처음 고안한 게슈탈트 심리치료 창시자 프리츠 펄스는 상전과 하인의 상호작용을 두고 ‘자기 고문 게임’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자기 파괴적이라는 의미에서다.

● 어떻게 고칠까?

비판받은 상황의 사실관계를 조목조목 따져 생각하면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소개한 워털루대 연구진은 계속된 연구를 통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일수록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비판이든 칭찬이든 나라는 존재 전체에 대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당시 상황과 맥락에서 특정한 일부에만 한정된 것이라고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만약 직장 상사에게서 “오늘 발표 훌륭했다”는 칭찬을 들었다면 ‘나=훌륭한 존재’라는 추상적 의미로 받아들이지 말고, 발표에서 잘했던 몇몇 구체적 행동에 대한 칭찬으로 쪼개서 생각하면 받아들이기 한결 쉬워진다.

비판도 마찬가지다.“오늘 발표가 좀 부족했다”는 말을 들었다면 ‘나=부족한 존재’라고 인식하기보다, 발표에서 완성도가 부족했던 몇몇 구체적 사안만 떠올려야 한다. 실패 경험을 과도하게 일반화하면 ‘나는 항상 실패하는 못난 사람’이 되지만, 특정 사건에 국한하면 한 번 실패한 것으로 의미가 작아진다. 연구진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하나하나 세부적으로 생각할수록 빠르고 자동으로 일어나는 ‘나는 못났다’는 사고를 막을 수 있고, 상황을 더욱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했다.

타인의 비판이나 칭찬이 나의 구체적 일부에만 국한된 것으로 받아들이면 보다 수월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이는 과일반화 사고를 막는 것에 중점을 둔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편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고 상황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를 구하면 비논리적인 인지 편향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또 자기 패배적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 같은 생각으로 몰아가는 마음속 상전에게 나만의 이름을 붙여주는 것도 상황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완벽이’ 또는 ‘불안이’라고 이름 붙이고, 사소한 비판에도 ‘망했다’는 극단적 생각이 들 때마다 ‘완벽이가 화가 났네’ ‘불안이가 또 나를 괴롭히네’ 생각하는 식이다. 그러면 자기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어디서 왔으며, 지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때그때 알아차리는 데 도움이 된다. 임 교수는 “내 안에 엄격한 내가 스스로 다그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고 스스로에게 ‘괜찮다’는 자기 위로를 건네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고야 기자 bes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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