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부녀자만 노린 공포의 ‘불법체류 연쇄살인마’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정락인 객원기자 2024. 7. 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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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는 여성들 노려 금품 빼앗고 엽기 성범죄로 악명
국내 사형수 59명 중 순정 외국인 유일의 사형수

(시사저널=정락인 객원기자)

현재 국내에 체류 중인 외국인은 지난해 기준으로 약 250만 명이다. 지난 10년 사이 두 배 넘게 증가하며 전체 인구의 약 4.9%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불법체류자는 약 43만 명으로 추산된다. 체류 외국인이 증가하면서 외국인의 살인·강도·강간 등 강력범죄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다. 이를 막기 위해 정부도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시행 중이지만 범죄를 막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재 사형이 확정된 국내 사형수는 59명이다. 이 중 외국 국적은 2명으로 모두 중국인이다. 순정 외국인은 경기도 안산 지역을 공포에 떨게 했던 왕리웨이(48·한족)가 유일하고, 다른 한 명은 조선족 출신 박경수(49)다. 박씨는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입국한 후 대구에서 임아무개씨(여·45) 집에 침입해 임씨와 딸(19)을 흉기로 살해하고, 딸의 친구를 위협해 강간했다. 특수강도강간 등 혐의로 구속된 박씨는 재판에서 사형이 선고된다. 하지만 왕리웨이의 범행은 이런 박씨를 능가할 정도로 훨씬 더 잔혹했다. 

ⓒfreepik

안산 밤길에 출몰하는 정체불명의 괴한

2000년 4월28일 밤 경기도 안산시 선부동 주공아파트에 사는 남아무개씨(여·24)는 회사에서 야근하고 귀가를 서둘렀다. 오후 11시쯤 남씨는 집 근처 골목길에 들어선다. 가로등 하나 없는 아파트 후문 길이라 밤에는 누군가 튀어나올 것 같아 잘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집으로 가는 지름길이어서 종종걸음으로 빠르게 골목을 빠져나가려고 했다.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정체를 알 수 없는 괴한이 나타났고, 미처 피할 사이도 없이 돌멩이로 머리를 세게 가격당한다. 남씨는 두개골이 파열되는 큰 상처를 입었고 이내 의식을 잃었다. 범인은 죽어가는 남씨의 가방과 주머니를 뒤져 3만원을 챙겼다. 그의 범행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남씨의 옷을 벗기더니 엽기적이고 변태적인 성추행을 시작했다. 그는 음부에 나뭇가지를 찔러 넣는 것을 마지막으로 현장을 유유히 벗어났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하는 끔찍한 광경이었다. 

약 1시간 후 한 아파트 주민이 골목길을 지나다 사람 같기도 한 물체를 발견한다. 어두워서 잘 분간되지 않아 가까이 다가섰다. 그 순간 그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벌거벗은 젊은 여성이 피를 흘리며 숨져 있었던 것이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인의 잔혹함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곧바로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범인 추적에 나섰다. 당시만 해도 폐쇄회로(CC)TV 설치가 일반화되지 않았다.

범행 현장에는 피 묻은 돌멩이 외에는 뚜렷한 단서가 없었다. 범인을 본 목격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 일대에 거주하는 동일 수법의 전과자와 성범죄자 등을 상대로 탐문수사를 벌였으나 의심할 만한 우범자도 없었다. 범인의 잔혹성으로 볼 때 추가 범행 가능성이 아주 높았지만 경찰은 용의자의 윤곽을 잡아내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우려는 결국 현실이 된다. 

약 두 달 후인 같은 해 6월19일 오전 4시쯤 신아무개씨(여·41)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귀가하던 길이었다. 안산시 원곡동 주유소 앞길을 지날 때였다. 불쑥 괴한이 나타나더니 다짜고짜 쇠망치를 마구 휘둘렀다. 머리를 가격당한 신씨는 그 자리에 정신을 잃고 쓰러진다. 범인은 신씨의 목걸이를 잡아채고, 주머니를 뒤져 지갑에 있던 현금 4만원을 꺼내갔다. 금품을 빼앗은 뒤에는 신씨를 끌고 바로 옆 슈퍼마켓 화장실 쪽문 쪽으로 이동했다. 이번에도 옷을 벗긴 다음 신체 주요 부위를 훼손하는 등 엽기적인 행각을 벌였다. 멀리서 인기척이 들리자 범행을 멈추고 현장을 벗어났다. 

신씨는 지나가던 행인에 의해 발견돼 급히 병원으로 이송됐다. 하지만 머리 부분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손상됐고, 피를 많이 흘린 상태였다. 결국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사건 발생 5일 만에 사망한다. 두 번째 범행 장소는 첫 살인이 일어난 곳에서 불과 1km쯤 떨어진 지점이었다. 

경찰은 범행수법 등으로 볼 때 1차 살인과 동일인의 소행으로 판단했다. 연이어 엽기적인 살인 사건이 발생하자 경찰은 바짝 긴장했다. 베테랑 강력반 형사들을 차출해 수사팀을 보강하고 용의자 추적에 고삐를 당긴다. 하지만 범인이 투명 망토를 입은 건지 도무지 추적할 만한 단서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이 허둥지둥하는 사이에 범인은 경찰의 허를 찌른다. 마치 경찰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일주일 만에 3차 범행에 나섰던 것이다. 이번에도 안산이다. 

하루에 세 번이나 범행 저지르기도

6월25일 새벽 2시쯤 범인은 와동 상가건물 1층에서 범행 대상을 물색하고 있었다. 이때 김아무개씨(여·34)가 화장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 뒤따라 들어갔다. 범인은 쇠망치를 꺼내 공격하려고 했지만 범행이 여의치 않자 포기하고 도망친다. 

범인은 범행에 대한 집착이 대단했다. 인근 지역인 신길동으로 이동한 그는 오전 1시45분쯤 귀가하던 변아무개씨(여·34)를 발견하자 머리를 돌로 공격해 쓰러뜨린다. 범인은 현금 20만원과 10만원짜리 수표 3장을 빼앗고 이전처럼 성추행한 후 사라졌다.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발견된 변씨는 곧바로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져 응급수술을 받았고,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범인은 거침이 없었다. 그는 이날 밤 또다시 범행에 나서면서 하루에 세 번이나 같은 범행을 시도한다. 그가 나타난 곳은 원곡동 주택가 골목길이다. 늦은 밤 박아무개씨(여·20)가 혼자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뒤따라가기 시작한다. 이때까지 경찰은 비공개로 수사를 진행했지만 이미 안산 지역에서는 흉흉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이런 소문을 접한 박씨도 밤길을 걸을 때는 주변을 잔뜩 경계했다. 

그는 걷는 중에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수상한 사람이 없는지 살폈다. 얼마 후 누군가 자신을 바짝 따라붙자 순간적으로 뒤를 돌아봤다. 그때 괴한이 돌멩이로 공격했고, 박씨가 피하면서 살짝 비껴 맞았다. 이 덕분에 치명상을 입지는 않았다. 당황한 범인은 박씨가 본능적으로 반격에 나서자 머뭇거리다가 그대로 달아나 버린다. 박씨는 경찰에서 범인의 인상착의에 대해 "20대처럼 보이고, 키가 작았으며,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박씨가 범인에 대해 진술하면서 제자리걸음만 하던 경찰 수사가 모처럼 활기를 띤다.

더 이상 비공개 수사가 어렵다고 판단한 경찰은 이때부터 공개 수사로 전환한다. 언론은 연일 메인 뉴스로 이 사건을 보도했다. 여성만을 노린 엽기 살인범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자 안산 지역은 공포에 휩싸인다. 동네마다 반상회가 열리고 혼자 밤에 외출을 삼가라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주민들의 불안감도 극에 달했다.

이런 상황은 안산의 밤거리를 거리낌없이 활보하던 범인도 심리적인 위축을 받게 만든다. 7월10일 범인은 안산 시내의 한 슈퍼마켓에서 피해 여성에게 빼앗은 수표를 사용하면서 꼬리가 잡힌다. 은행에서 도난 수표가 회수됐다고 알려오자 경찰은 해당 슈퍼마켓으로 출동했다. 여기서 수표 사용자가 한국어가 서툰 중국계 외국인이라고 파악한다. 

경찰이 수표에 있는 지문을 감식하면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엽기 연쇄살인범 중국인 왕리웨이(당시 24세)의 신분도 드러난다. 경찰은 왕씨를 검거해 범행 일체를 자백받았다. 당시 왕씨는 원곡동의 한 고시원에 거주하고 있었다. 왕씨는 2건의 강도살인 외에도 8건의 강도살인 미수가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후 조사를 받고 있는 왕리웨이 ⓒKBS 방송화면 캡처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한 후 무단이탈

경찰에 따르면 왕씨는 1999년 9월 산업연수생으로 국내에 입국했다. 전남 목포시의 한 방직공장에 취업해 일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고 일이 힘들다며 두 달 만에 무단이탈한 후 불법체류자가 된다. 이후 왕씨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밀집해 있는 안산으로 들어와 공사장 인부 등으로 일하며 월세방과 고시원 등을 전전했다. 20대인 왕씨는 성적 욕구가 강했으나 발기부전으로 정상적인 성생활을 할 수 없었다. 

그에겐 또 여자의 벗은 몸을 보거나 상대에게 가학적인 행위를 통해 성적 만족과 흥분을 느끼는 성도착증이 있었다. 하루 벌어 하루 생활했던 왕씨는 여성에게 돈을 빼앗고 자기의 성적 욕구를 충족하기로 마음먹는다. 이후 밤 시간대에 돌과 망치를 이용해 여성을 공격하고 돈을 빼앗은 다음 엽기적인 성추행을 일삼았던 것이다. 10여 차례의 범행을 통해 그가 손에 쥔 것은 100여만원에 불과했다. 

부녀자를 상대로 한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왕씨에 대해 1심 재판부는 사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왕씨는 개인의 탐욕과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무고한 부녀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잔혹하게 짓밟음으로써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회복할 수 없는 정신적·신체적 충격과 고통을 가하고 사회공공의 안전과 질서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했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왕씨의 범행 동기와 방법이 인간성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열하고 잔인한 데다 범행 후 피해자들이나 유족들을 위로할 수 있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점 등에 비춰 가장 엄중한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한다는 판단에서 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을 선고한다"고 판시했다. 형량에 불만을 품은 왕씨는 우울증 등을 이유로 항소했으나 2심 재판부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항소심 재판부는 "정신감정기록에 따르면 왕씨에게 우울증 증세가 있다고 하지만 우울증세가 사리판단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다"고 일축했다. 왕씨는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원심을 유지해 형량을 확정했다. 현재 왕씨는 미결수 신분으로 25년째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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