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되어도 망할 국민의힘 전당대회 2 [노원명 에세이]

노원명 기자(wmnoh@mk.co.kr) 2024. 7. 7.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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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당대표 후보인 한동훈, 원희룡, 나경원 후보(왼쪽부터)가 지난 4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한국자유총연맹 창립 제7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출처=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당대표 후보가 올해 1월 김건희 여사가 보낸 문자를 다섯차례에 걸쳐 무시했다는 이른바 ‘읽씹’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동훈의 팬도, 안티도 아닌 두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한명은 “한동훈이 잘못했다”고 한다.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한때 카톡으로 미주알고주알 대화를 주고받던 상대 메시지를 그렇게 씹는 건 옹졸하다는 것이다. 또 다른 한명은 정확히 같은 이유로 김 여사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한다. 카톡 대화가 공개되어 이미 홍역을 치른 상대한테 왜 또 그런 부담을 지우는 것이며 김 여사 사과는 공적 라인에서 논의할 일이라는 의견이다.

나는 그 다섯건의 문자 내용을 전부 확인하기 전까지는 판단을 유보하고 싶다. 문자의 맥락이 중요하다. 진짜 사과를 하기 위해 보낸 문자인지, 사과를 앞세워 (자신을 비판하는) 상대를 비난하는 데 목적이 있는 문자인지에 따라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또한 그 다섯건의 문자라는 것이 하나의 메시지를 다섯차례에 걸쳐 나누어 보낸 것인지, 시차를 둔 다섯차례의 문자를 각각 무시한 것인지도 중요하다. 긴 문자를 다섯차례 끊어 보냈으면서 ‘다섯건 문자를 다 씹었다’고 주장하면 과장이고 왜곡이다. 정말 다섯차례에 걸친 무시가 있었다면 한 후보는 보통 사람은 아니라고 봐야 한다. 나도 답이 궁할 때는 간혹 ‘읽씹’을 하지만 두 번 이상 물어올 때는 어쩔 수 없이 답변한다. 보통 사람들은 그렇게 한다. 아주 완고하거나, 예의가 없거나, 유아독존인 사람들만 다섯번 씹을 수 있다. 그건 정치 지도자가 되겠다는 사람에게서 기대되는 행위 양식은 아니다.

김 여사가 또 한 번 선거판의 결정적 변수로 등장한 사실에 주목한다. 김 여사는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서울의 소리’ 이모 기자와 통화 녹음이 공개되면서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윤 대통령이 그때 졌으면 제1 패인으로 김 여사가 꼽혔을 것이다. 김 여사는 대통령 임기 1년 차 여름에 ‘서울의 소리’가 뒷배인 최모 목사로부터 디올 파우치를 받았다. 지난 4월 총선 여당의 최대 패인으로 ‘디올 파우치’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이제 국민의힘 대표 선출을 2주가량 앞둔 시점에 김 여사는 ‘문자 파동’의 주인공으로서 선거판을 흔들고 있다. 김 여사는 선거의 여왕인가.

2023년 2월 5일 자 이 칼럼의 제목은 ‘누가 되어도 망할 국민의힘 전당대회’였다. “그나저나 전당대회를 이렇게 하는 정당을 다 본다. 누가 되어도 망하는 이 구도를 남이 만든 것이 아니다. 이들은 구동존이(求同存異)는 커녕, 자기들 편끼리도 못 잡아먹어 난리인 하등 정치를 하고 있다...그 저열한 수준과 분열적 심성이 전당대회가 끝난다고 고양될 리도 만무하다.”

나는 총선 여당 참패의 씨앗이 지난해 3월8일 국힘 전당대회 국면에서 뿌려졌다고 생각한다. 그때 대통령실은 김기현을 대표로 만들기 위해 여러 무리수를 뒀다. 나는 이렇게도 썼다.

“3·8 전당대회 결과가 어찌 되든 국민의힘은 이미 졌다. 김기현이 되면 덜 시끄럽게, 그러나 확실하게 망할 것 같다. 국민의힘이 이뻐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싫어서 마음을 줬던 층들이 싹 돌아선다. 줄 세워서 다 해 먹는 그 당에서 무슨 변혁의 희망을 보겠나. 안철수가 되면 그런 민심 이반은 막겠지만 여권내 분란으로 시끄럽게 망할 가능성이 커진다.”

여당은 김기현 체제에서 죽도 밥도 못 끓이다 지난 총선에서 확실히 망했다. 만약 지난해 안철수가 대표가 됐으면? 요란하게 밥을 태웠을 것으로 확신한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서 누가 대표가 되어도 망할 정치를 여권은 하고 말았다. 혁신도 매력도 박력도 없는 정치. ‘디올 파우치’가 없었어도 여당은 참패했을 것이다.

똑같은 관점에서 7·23 전당대회에서 누가 대표가 되어도 국민의힘은 살아나기 어려울 것 같다. 저들은 언제 분열하고 언제 단합해야 할지를 모른다. 어디까지가 경쟁이고 어디서부터는 자해인지도 분간 못 한다. 내일 적이 쳐들어와 다 뺏어갈 보따리를 오늘 누가 더 챙기느냐에 혈안이 돼 있다. 기본적으로 지지층에 대한 예의가 없다. 지난 대선과 총선을 겪으며 김 여사가 또 무슨 구설에 휩싸일까 지지층은 노이로제에 걸렸는데 ‘김 여사 문자’를 떡 하니 논란으로 만든다. 이렇게 해서 누가 떨어지고, 누가 되면 김 여사는 정말 선거의 여왕으로 등극할 판이다.

여당 전당대회가 2년 연속으로 이처럼 자해모드로 치러지는 이유는 갈등관리가 안 되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싫어 죽겠는 상대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난 저자가 싫어 죽겠다’고 말하는 순간 정치는 끝나 버린다. 상대를 반드시 죽여야 하고 죽이지 못하면 내가 죽을 것이다. 상대만 죽일 수 있다면 다행일 텐데 세상일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상대와 싸우면서 뿌리가 흔들흔들하고 체력이 방전된다. 외부의 적과 싸울 힘이 남아나지 않는다. 그게 쉽게 발분하는 성격의 비극이다.

국민의힘이 완전히 콩가루가 되기 전에 윤 대통령이 화합을 독려하고 완전 중립을 선언하는 메시지를 내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지층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이대로 전당대회가 끝나면 누가 된들 윤 대통령이 외로워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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