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네 따위가 감히 벤츠·포르쉐를”…한국인이 더 조롱하던 이 차, 이젠 ‘車 한류’ 주역 [세상만車]
7년만에 글로벌 시장서 100만대 판매
‘한국인 성향’이 제네시스 경쟁력 비결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 입증
벌써 9년 전입니다. 현대자동차그룹이 2015년 제네시스 브랜드를 독립해 프리미엄·럭셔리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다고 밝혔을 때 국내·외에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많았습니다.
모르는 남이 아닌 가족이나 친구에게 욕을 먹으면 더 서운한 법인데, 한국인이 더 심하게 깔봤습니다.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에 맞서기 위해 도요타자동차가 렉서스를 출범시킨 것에서 비난거리를 찾아냈습니다.
일본차 베끼기에 맛들이더니 ‘짝퉁 혼다’를 넘어 ‘짝퉁 렉서스’를 내놓는다는 말까지 나왔죠.
지금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제네시스는 국내에서 럭셔리 자동차 시장을 장악했습니다. 해외에서도 벤츠, BMW, 렉서스와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수준으로 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한국인의 특성이라는 ‘빨리빨리’의 긍정적 효과 때문일까요.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10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에 물론 100년 역사가 넘는 벤츠, BMW 등에 버금가는 럭셔리·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슈퍼카·럭셔리카 브랜드인 포람페(포르쉐, 람보르기니, 페라리)와 롤스로이스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국뽕(자국 찬양)이 아닙니다. 글로벌 판매성적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난해 8월까지 국내에서 69만177대, 해외에서 31만8627대 등 글로벌 시장에서 총 100만8804대를 판매했습니다. 국내 판매대수가 많지만 해외 판매대수도 적지 않습니다.
제네시스는 브랜드 출범 첫해인 2015년에 384대에 그쳤지만 2020년에는 13만2450대를 판매했습니다. 처음으로 글로벌 연간 판매 10만대를 넘어서면서 존재감을 나타냈습니다.
2021년 20만대, 2022년 21만대 넘게 판매된 데 이어 지난해에는 22만대 팔렸습니다.
100만대 돌파에 가장 기여한 차종은 제네시스 G80입니다. 100만대 중 38만대가 G80 몫이었습니다.
G80이 뛰어든 E세그먼트(Executive cars, 프리미엄 중형·준대형차급) 시장은 가장 경쟁이 치열한 ‘프리미어 리그’로 불립니다. 글로벌 자동차 브랜드들이 혈투를 벌이는 곳입니다.
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렉서스 ES, 볼보 S90 등 자동차에 관심없는 사람들도 안다는 글로벌 베스트셀링카들이 E세그먼트 시장에서 브랜드 자존심을 걸고 싸웁니다.
‘이그제큐티브’(Executive)도 경영진, 중역, 고급이라는 뜻입니다. E세그먼트는 성공한 직장인이 오너드리븐(차주가 직접 운전하는 차)으로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마지노선처럼 여겨지죠.
국내에서 대기업 임원차로 인지도를 높이면서 ‘성공하면 타는 차’ 대명사가 된 G80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는 셈입니다.
제네시스는 프리미엄 차종들의 격전장인 미국에서도 존재감을 높였습니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제네시스는 지난해 6만9175대 판매됐습니다. 5년 전인 2018년과 비교하면 570% 폭증했습니다.
올해 상반기(1~6월)에도 미국에서 3만1821대 판매됐습니다. 전년동기보다 1.9% 증가했죠. 상반기 기준 역대 최다 판매 기록을 달성했습니다.
‘싼값’으로 승부하지도 않았습니다. 제네시스 차종의 평균 판매가격은 6만2000달러 수준으로 렉서스·아우디와 대등한 수준입니다.
제네시스는 미국 시장조사업체 제이디파워(JD파워)의 자동차 평가 항목인 품질, 상품성, 신기술, 내구성에서 벤츠, BMW, 포르쉐, 렉서스 등 독일·일본 프리미엄 브랜드를 압도하고 있습니다.
지난 2022년에는 제이디파워 ‘4관왕’이 됐습니다. 제이디파워는 평가가 까다롭기로 유명한 미국 시장조사 업체죠.
제이디파워 조사결과는 미국 소비자들의 자동차 구매기준으로 적극 이용될 뿐만 아니라 업체별 품질 경쟁력을 가늠하는 핵심 지표로 활용됩니다.
미국 자동차시장을 넘어 글로벌 자동차시장에서도 권위를 인정받습니다. 자동차 평가 분야 ‘오스카’로 여겨집니다.
제네시스는 신차 첨단 기술 만족도를 나타나는 ‘2022 미국 기술 경험 지수 조사’(TXI)에서 1위를 차지했습니다.
TXI는 제이디파워의 주요 조사로 꼽히는 신차품질조사(IQS)와 상품성 만족도 조사(APEAL)를 보완해주는 신차 평가 지표입니다.
제네시스(643점)는 캐딜락(584점), 벤츠(539점), BMW(516점), 렉서스(491점), 포르쉐(439점) 등을 제쳤습니다. 프리미엄 브랜드 1위는 물론 전체 브랜드 순위도 1위도 기록했죠.
이달 발표된 ‘2024년 신차품질조사’에서도 제네시스는 포르쉐와 렉서스 뒤를 이어 고급 브랜드 중 3위를 달성했습니다. 5위였던 지난해 조사 때보다 성적이 향상됐습니다.
‘B급 프리미엄 브랜드’ 딱지를 완전히 뗀 것은 물론 벤츠·BMW와 대등하게 경쟁하면서 승리를 거둬들였습니다. 품질 측면에서는 비싸도 살맛나는 ‘A급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은 셈이죠.
지난 4월 G90·G80 모델이 가장 높은 등급인 ‘톱 세이프티 픽 플러스’(TSP+)로 상향 선정됐습니다.
올해 ‘톱 세이프티 픽’(TSP) 이상 등급을 받은 차종은 현대차 9개 차종, 제네시스 7개 차종, 기아 2개 차종 등 총 18개 차종으로 늘었습니다.
현대차는 총 9개 차종이 TSP 이상 등급을 받으면서 8개 차종을 기록한 토요타를 앞서며 ‘최다 선정’ 단일 브랜드가 됐습니다. 제네시스도 7개 차종으로 3위를 기록했습니다.
디자인도 세계적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신차나 콘셉트카를 내놓을 때마다 호평을 받습니다.
‘디자인 분야 오스카’라 불리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복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올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3월 독일 국제포럼디자인이 주관하는 ‘2024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오픈카 콘셉트’ 제네시스 엑스(X) 컨버터블이 프로페셔널 콘셉트 부문에서 본상을 거머쥐었습니다.
이달에는 독일 노르트라인 베스트팔렌 디자인센터가 주관하는 ‘2024 레드닷 어워드’에서도 초대형 전동화 SUV 콘셉트인 네오룬(NEOLUN)이 수송 디자인 부문에서 본상을 받았습니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아니라 제 나름대로 분석해본 내용이니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 미리 말씀드립니다.
개인적으로는 김밥·비빔밥·부대찌개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들의 ‘창조적 어울림 정신’, ‘빨리빨리’와 ‘프로불편러’가 제네시스를 비롯한 한국차의 성장과 발전에 한몫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인들은 단순하게 베끼는 모방 수준을 넘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탁월한 재능을 지녔습니다. 고려청자, 금속활자, 신기전, 거북선 등 찬란한 문화유산이 이를 증명합니다.
음식 문화에서도 모방을 뛰어넘는 창조적 어울림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김밥, 비빔밥, 부대찌개, 치킨입니다.
김밥과 비빔밥은 넣는 재료에 따라 맛도 모양도 달라집니다. 요즘에는 불고기를 넘어 ‘음식 한류’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김치찌개도 미군 부대에서 나온 염도가 높은 햄과 소시지와 만나 부대찌개라는 같지만 다른 음식으로 거듭났습니다.
닭을 튀겨먹는 치킨도 원래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이 백인들이 먹지 않는 부위를 튀겨먹는 것에서 유래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식으면 맛도 질감도 변해 먹기 싫어지는 후라이드 치킨의 ‘불편’을 없애려다 보니 완전히 다른 음식으로 진화했습니다.
단순히 튀기는 수준을 넘어 물엿, 고추장, 간장 등 한국적인 양념과 결합한 뒤 이제는 세계 각국의 양념까지 활용해 ‘K-치킨’ 시대를 열었습니다.
요즘에도 이질적인 재료로 우리 입맛을 넘어 세계인의 입맛에도 맞는 ‘퓨전요리’를 계속 창조해내는 한국인들의 ‘손맛’은 탁월합니다. 세계 각지에서 ‘힙’한 오감만족으로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제네시스에서도 처음에는 벤츠, 아우디, 벤틀리, 포르쉐, 렉서스, 링컨 등의 흔적이 많이 엿보였습니다.
이제는 모방 수준을 넘어 이제는 제네시스만의 새로운 디자인 정체성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K-기술력’은 ‘K-디자인’으로 진화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을 받은 제네시스 엑스 컨버터블과 네오룬은 디자인 분야에서도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제네시스 엑스 컨버터블은 한국적인 미와 정서를 담은 컬러를 사용했습니다. 외장 컬러에는 신성하고 기품 있는 두루미의 자태에서 영감을 얻은 펄이 들어간 흰색 계열의 ‘크레인 화이트’를 적용했죠.
실내도 한국 전통 가옥의 지붕에서 영감을 얻은 컬러 두 가지를 적용했습니다. ‘기와 네이비’는 전통 가옥의 기와에서 영감을 얻은 색상입니다.
‘단청 오렌지’는 한국 전통 목조 건물에 무늬를 그려 넣는 채색기법인 단청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네오룬은 한국인의 전통 문화도 이식했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예술품 중 하나로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달항아리’(백자대호)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달항아리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온화한 색감, 유려한 곡선과 볼륨감, 넉넉한 공간감을 추구했습니다.
한국의 전통 난방 방식인 온돌에서도 영감을 받았습니다. 온돌의 특징인 복사열 난방 시스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습니다.
저전력 고효율 난방 효과를 위해 차량 내부의 대시보드와 도어 트림, 바닥, 시트백, 콘솔 사이드 등에 복사난방 필름을 부착했습니다.
한국의 ‘열린 방 문화’를 대표하는 사랑방도 이식했습니다. 사랑방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 아이콘인 ‘방’ 중에서도 가장 다목적으로 사용됩니다.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라 바깥주인이 거주하며 손님을 접대하는 응접실이자, 서재이자, 휴식처이며 작업 공간이자 문화 공간입니다.
사랑방은 단촐하지만 단아합니다. 가구를 최소화해 공간감을 넓히면서도 아늑함을 추구합니다. 네오룬 실내공간도 그렇습니다.
별 것 아닌 일에도 불편을 느끼고 불만을 터트리는 한국인들이 많습니다. 한국인들의 행복만족도가 낮은 이유도 불편함을 많이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습니다.
프로불편러의 행동이 모두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불편’과 ‘불만’이기 때문이죠.
불편은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와 시너지 효과를 창출했습니다. 프로불편러들이 많은 한국이 세계인들이 감탄하는 ‘편한 나라’가 된 게 이를 증명합니다.
자동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로불편러들의 활약(?) 덕분에 한국차는 다른 나라 차들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편의성의 제왕’이 됐을 겁니다.
제네시스 급성장은 위기 때마다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는 한국인들의 장점 덕분일 수도 있습니다. 한국인들은 때릴수록 강해지는 강철 성향을 지녔죠.
한대 맞으면 쓰러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때려보라며 대듭니다. 욕을 먹거나 무시당하면 위축이 되기보다는 “그래, 두고보자”라며 칼을 갈고 닦습니다.
마찬가지로 프로불편러와 욕설·무시가 오히려 제네시스 성장에 훌륭한 자양분이 됐다고 확신합니다.
물론 제네시스가 벤츠·BMW·포르쉐에 ‘버금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동등한 품질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빨리빨리의 부작용 ‘대충대충’이 일으킨 역효과 때문이겠죠.
대충대충 부작용을 없애면서 프로불편함, 빨리빨리, 어울림, 강철 성향을 잘 버무리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시너지 효과가 창출될 겁니다.
버금가는 수준을 뛰어넘어 대등한 브랜드로, 결국엔 으뜸가는 글로벌 브랜드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자동차 분야에서도 한류 바람이 불게 되겠죠.
그러니 제네시스는 물론 다른 국산차 브랜드들은 ‘프로불편러’에게 고마워해야 합니다.
무플(댓글 없음)보다는 악플(악성댓글)이 좋다고 하죠. 관심이 있다는 뜻이니까요. 혐오만 아니라면 악플도 사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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