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오피니언리더] `히잡 단속 완화` 온건파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 당선 `이변`
'사상 최저' 1차 투표율보다 10%p 높은 49.8% 기록
온건 개혁파 다선의원…보건장관·의회부의장 역임
이란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강경 보수 성향의 후보를 제치고 온건 개혁파 마수드 페제시키안(70) 후보가 '깜짝' 승리했습니다. 의사 출신인 그는 선거 운동 과정에서 서방과 관계 개선을 통한 핵합의(JCPOA) 복원과 경제 제재 완화, 히잡 단속 합리화 등 개혁적이고 유연한 공약을 내세워 1차 투표에서 1위에 오르는 이변의 주인공이 됐고, 그 기세를 몰아 결선투표에서도 승자가 됐습니다.
6일(현지시간) 이란 내무부와 국영 매체에 따르면 전날 치러진 결선투표 개표가 잠정 완료된 결과 페제시키안 후보가 유효 투표 중 1638만4000여표(54.8%)를 얻어 당선됐습니다. 맞대결한 강경 보수 성향의 '하메네이 충성파' 사이드 잘릴리(59) 후보는 1353만8000여표(45.2%) 득표에 그쳤죠. 지난달 28일 1차 투표에서 대선후보 4명 중 유일한 개혁 성향으로 예상을 깨고 '깜짝' 1위를 차지했던 그는 결선에서도 잘릴리 후보를 약 285만표 차이로 누르고 최종 당선자가 됐습니다.
이란에서 결선으로 대통령 당선인을 가린 것은 2005년 이후 19년만입니다. 2021년 취임한 강경 보수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전 대통령이 지난 5월 불의의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지며 갑자기 치러진 이번 대선 결과로 이란에 3년 만에 다시 개혁 성향 행정부가 들어서게 됐습니다. 이란이 개입된 가자지구 전쟁과 이스라엘과 군사적 충돌, 2018년 미국이 파기한 핵합의 복원 등 첨예한 현안에 대해 페제시키안의 당선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제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란 헌법수호위원회는 새 대통령의 임기와 관련, 라이시 전 대통령의 잔여 임기 1년이 아닌 온전한 임기인 4년이라고 밝혔습니다. 이에 따라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2028년까지 대통령직을 맡게 됩니다.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국영 IRIB 방송 인터뷰에서 "모든 이에게 우정의 손길을 뻗겠다"며 "국가를 발전시키기 위해 모든 사람을 활용해야 한다"고 당선 소감을 밝혔습니다.잘릴리 후보는 개표 결과가 나오자 엑스(X·옛 트위터)에 "나는 당선인이 강력하게 전진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 돕겠다"고 짤막하게 올렸습니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당선인은 1954년 이란 북서부 마하바드 지방에서 소수민족인 아제르바이잔계 아버지와 쿠르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1997년 온건·개혁 성향의 모하마드 하타미 정부에서 의사 경력을 발판삼아 보건부 차관으로 발탁되며 정치권에 입문, 2001∼2005년 보건장관까지 지냈죠. 2008년 총선에서 고향과 가까운 타브리즈 지역구에서 출마, 의회에 입성해 내리 5선을 했고, 2016년부터 4년간 의회 제1부의장을 지냈습니다. 장관을 지낸 다선 의원이긴 하지만 대중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은 아니어서 이번 선거가 치러지기 전까지는 '무명'에 가까웠다는 평가입니다. 대선 후보 자격을 심사하는 헌법수호위원회가 6명을 후보로 승인했을 때 그가 개혁파에서 유일하게 후보 자격을 얻자 '구색 갖추기'라는 평가가 나왔을 정도였죠.
그는 2009년 대선 후 벌어진 부정선거 항의 시위를 정부가 강경하게 대응하자 "사람들을 야생 동물처럼 대해서는 안된다"고 비판해 주목받았습니다. 2022년 22세였던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체포됐다가 의문사한 일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을 때 독립 조직을 꾸려 진상을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란 체제의 핵심이자 보수 진영의 기반인 이란 혁명수비대(IRGC)에 대해선 일관되게 우호적인 입장을 유지했고, 권력서열 1위인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를 향해서도 공개적으로 충성을 표시했습니다. 2013년 대선에 처음 출사표를 던졌다가 당시 온건·개혁파의 '거두'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한다는 소식에 후보 등록 신청을 취소했죠. 직전 2021년 대선 때는 헌법수호위원회의 후보 심사를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1993년 아내와 어린 아들을 차 사고로 잃은 뒤 지금까지 재혼하지 않고 아들 둘과 딸 하나를 홀로 키웠습니다. 정계 입문 전엔 1973년 우르미아농업학교에서 식품산업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군에 입대했다가 의학에 관심을 갖게 돼 제대한 후 타브리즈 의대에 입학해 일반의학 학위와 일반의 자격을 얻었습니다.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에 참전했으며 1993년 이란의과대학교에서 심장외과 전문의 자격을 취득했고 이듬해 타브리즈 의대 총장이 돼 5년간 재임한 이력도 있습니다.
강현철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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