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한국의 맛' 고추장·쌈장이 영국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7. 7.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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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 음식이 아닌 맛을 팔다 - 홍세지 봄봄 대표 (글 : 황정원 작가)

홍세지 봄봄 대표는 런던에서 장(醬), 혹은 소스를 만들어 판다. 봄봄의 제품들은 홀푸드와 셀프리지 백화점에 입점했으며 코스트코를 비롯 영국 대형 온라인 식재료 숍 오카도에 입점 예정이다. 패션잡지 보그의 영국판과 BBC Good Food Magazine에도 소개된 바 있다. 최근에는 한식 요리책을 집필해 영국, 미국, 캐나다 3개국에서 동시에 출간했다. 하지만 그는 정식으로 요리를 배운 적이 없다. 런던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식 붐은 실제로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에서 생각하시는 만큼 핫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장에서 체감하는 한식 붐은 어떤가'라는 질문에 한참의 망설임 끝에 돌아온 답이었다.

"인식이 바뀐 건 분명해요. 하지만 한국 음식 그 자체로는 안착이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먹는 방식이 너무 다르고, 모던하게 변형하기 힘든 부분도 있어요. 한식 붐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한식을 시도해 보려는 사람은 1%도 안 된다고 봐요. 대다수의 사람들은 시도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실제로 한식 레스토랑에 가보면 백인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죠. 그래서 마치 해외에서 한식 장사가 노다지인 것처럼 포장되는 걸 보면 답답합니다."

봄봄은 고추장을 비롯해 '쌈장소스'와 '김치마요'를 출시했다. 모두 식물성 재료만 사용한 비건 식품이다. 세 제품 모두 미식협회(The Guild of Fine Food)로부터 "그레이트 테이스트(great taste)" 별 한 개 또는 두 개를 받았다. 업계 전문가들이 블라인드 테이스팅으로 결정하는 이 평가 제도의 최고 등급은 별 세 개이다.

봄봄의 소스를 활용한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

"제가 소스를 택한 이유는 한국 장의 건강한 맛 때문입니다. 특히 채식주의자들에게 좋은 옵션이 될 수 있습니다. 그 풍미를 알거나 활용할 수 있다면 말이죠. 한국 맛이나 소스는 얼마든지 변주가 가능하고, 마케팅 포인트도 충분합니다. 고추장이나 쌈장이란 이름은 생소할지 몰라도 막상 먹어보면 너무 낯설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렇게 '맛'으로 접근하면 가능성이 많아집니다. 하지만, 우리의 먹는 방식이나 모양새를 그대로 들이대면 한계가 있죠."

충무김밥을 변형한 오징어 고수 초무침

봄봄에서 제작한 비빔밥 브로셔는 냄비밥 짓기부터 설명을 시작한다.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 압력밥솥은 말할 것도 없고 한국 쌀조차 찾기 쉽지 않은 이곳에서 밥의 물양은 어떻게 가늠할지, 언제 약불로 낮추어 뜸을 들여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인가. 한식의 문턱이 실감되는 순간이다. 비빔밥 고명, 즉 '토핑'은 '클래식'과 '비건' 두 버전으로, 비건용 야채들은 프라이팬에 볶는 대신 오븐에 굽는 방식을 추천한다. 오븐 요리에 더 익숙한 현지인들을 위한 배려다.

"이제는 고추장을 아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하지만 한국 음식에 먹는 사람은 극히 드뭅니다. 당연하죠, 떡볶이 떡을 어디서 매일 사겠어요. 그래서 저희는 영국 사람이 일반적인 식사를 할 때 활용해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합니다. 블러디 메리 칵테일에 김치 국물을 활용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도 한국에서 토마토소스에 고춧가루나 고추장을 섞어 먹고는 했습니다."

- 어떻게 '장'으로 분야를 좁히게 되었나?

"저는 원래 식당을 개업하려고 런던에 왔어요. 먹는 것을 좋아하고 창의적인 요리를 즐기는 가족 덕에 평소 음식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식당 인테리어 디자인까지 마쳤는데 코비드 때문에 락다운이 시작하더라고요. 고심 끝에 식당 계약을 철회하고 그때부터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식당을 준비하면서 1년 정도 서퍼 클럽을 운영했어요. 당시 사람들이 특히 제 소스를 좋아하던 게 생각나 집에서 만들어 시장에 나가 팔기 시작했습니다."

서퍼 클럽은 소셜 다이닝의 한 형태다. 주최자의 집 같은 개인 공간이나 상업 공간을 빌려 소규모로 식사를 준비해 대중의 반응을 살핀다. 식당 개업 전 메뉴를 개발하고 마케팅을 하는 주요 창구로 쓰인다.

"석 달 정도 팔았는데 반응이 바로 왔어요. 처음에는 김치마요랑 쌈장으로 시작했죠. 쌈장이 뭔지도 모르면서 금요일에 사 먹어 보고 일요일에 다시 사 가는 사람을 보고 이건 되겠다 싶더라고요. 한국에서 만들려고 공장을 알아봤는데 여기서 만들던 그 맛이 잘 안 났어요. 영국은 락다운 상태라 공장들이 이메일 답장조차 하지 않았고요. 그래서 한국에서 먼저 고추장을 개발해 1,000병을 비행기로 싣고 왔습니다."

"고추장을 회사 홈페이지에서, 또 주변에서 알음알음 팔았는데 비행기로 제품을 받다 보니 배송료가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영국에서 공장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국은 제조업이 발달한 나라가 아니라 공장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또 저희 제품은 모두 참기름이 들어있어 거절을 많이 당했습니다."

영국은 한국과 달리 음식 알레르기를 가진 이들이 흔하다. 특히 견과류와 씨앗 알레르기를 가진 사람이 비교적 많고, 심한 경우 사망에 이를 정도로 치명적이라 음식을 다룰 때 세밀한 주의가 요구된다. 봄봄의 제품을 맡으면 해당 공장에서 만드는 모든 제품에 '참깨를 다루는 시설에서 제조하고 있다'라는 한 줄이 추가로 들어가야 하니, 공장으로서는 생산을 꺼리는 것도 당연하다. 결국 한 달에 한 번 견과류 등의 제품을 제작하는 공장을 찾아 영국 현지에서 생산을 이어갈 수 있었다.

홀푸드, 오카도 같은 이른바 '빅 바이어'들이 봄봄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먼저 접근해 왔다. 팔로워가 수천 명 수준의 계정이었지만 재기발랄한 포스팅, 그리고 제품 자체의 매력이 통했던 것이다.

회사의 규모가 커지며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를 통해 한국의 공장 몇 군데를 소개받았지만,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장벽에 부딪혔다.

"수출에 뜻이 있는 공장들이었지만 비건 옵션이 있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습니다. 영국 기준에 맞는 친환경(bio-degradable) 용기를 갖춘 공장도 없었습니다. 너무 충격적이었요. 이 글로벌한 시대에, 굉장히 답답했습니다."

봄봄이 추구하는 제품을 만들어 줄 공장을 찾는 일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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