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산투자, ‘몰빵’ 투자 실패를 예방하는 심리적 안전판
지난해 이맘때 일이다. 투자사, 증권사 등 금융계에서 일하는 친구들과 만났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최근 투자 중인 주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 관심 있는 주식이 무언지 서로 이야기하다가, 나는 미국 상장지수펀드(ETF) 가운데 TMF를 계속 매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TMF, 미국 금리 내리면 폭등
내가 TMF를 사고 있다고 말하자 금융계 친구들은 이렇게 조언했다.
"금리가 내리면 TMF가 폭등하기는 하는데, 언제 금리가 내릴지 알기 어렵다."
"올해 금리가 안 내릴 수 있고, 오히려 올라갈 수도 있다."
"만약 금리가 올라가면 크게 떨어질 텐데…."
"3배 레버리지 상품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기본 가격이 조금씩 떨어지는데…."
이에 대한 내 대답은 이랬다.
"미국 금리가 올해 안에 내려갈 수도 있고 올라갈 수도 있는데, 그렇지만 4년 안에는 떨어지겠지. 4년 안에는 TMF가 크게 오를 거 같아서 사고 있다. 그리고 3배 레버리지라서 기본 가격이 좀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금리가 내려가 폭등하면 떨어진 거보다 더 오르겠지."
4년을 보고 있다는 말에 친구들은 그렇다면 괜찮겠다고 했다. 미국 금리가 지금 당장은 어떻게 될지 몰라도, 4년 안에는 분명히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리에 있던 한 친구가 나중에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4년을 보고 있다는 말에 정말 놀랐다. TMF를 사서 4년 기다리면 정말 큰 수익이 날 수 있다. '투자는 이렇게 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친구는 내 투자 방식에 놀랐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친구의 말에 더 놀랐다. 그는 일반인이 아니라 투자 전문가다. 보통 사람이라면 당장 이익을 추구하느라 장기투자를 하지 못할 수 있다. 하지만 투자 전문가인데 왜 몇 년을 바라보고 투자하지 못할까. 그 친구의 말로는 소위 투자 전문가라도 그런 식의 투자는 힘들다고 한다. 일단 업계에서는 분기, 반기, 1년 투자수익률이 중요하기 때문에 몇 년을 바라보고 투자할 수 없다. 또한 개인적으로 투자하더라도 그렇게 몇 년을 바라보며 투자하기는 어렵다. 4년 안에는 분명히 이익이 난다고 해도 몇 개월, 1년 후에 크게 손해 볼 수 있는 종목을 사놓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또 다른 친구가 있다. 내가 TMF를 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자기도 TMF를 사겠다고 했다.
"아니, 미국 금리가 떨어지면 TMF가 크게 오르기는 할 텐데 미국 금리가 언제 떨어질지 모른다. 오히려 지금 당장은 금리가 올라갈 수도 있고, 그러면 폭락한다. TMF는 몇 년을 보고 사야 한다. 몇 년이든 미국 금리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정말로 그럴 수 있냐. 그럴 수 없다면 사선 안 된다."
"할 수 있다. 사놓고 그냥 가만있기만 하면 되는 거 아닌가. 샀다는 걸 잊어버리고 그냥 묻어두면 되는 거 아닌가."
이 친구는 거액을 들여 TMF를 샀다. 그런데 미국 경제가 인플레이션이 떨어지지 않고 고용이 좋아지면서 시장금리가 오히려 올랐다. 그 결과 올해에만 TMF가 20% 넘게 하락했다. 몇 개월 만에 전화가 왔다.
"손해가 크다. 마이너스 수익률을 지켜보기 힘들다. 미국 금리가 더 오를 수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그리고 또 몇 개월 후 TMF를 팔았다는 연락이 왔다. 4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는데, 분명히 그렇게 하겠다고 하고 샀는데, 6개월도 지나지 않아 손해를 보고 판 것이다.
대부분 단기 손해 버티기 힘들어해
이런 사례들을 보면 몇 년을 가져가는 장기투자는 참 힘든 것 같다. 일반 투자자뿐 아니라 전문 투자자에게도 힘든 일인가 보다. 장기투자를 해야 한다는 말은 참 많이들 하는데, 막상 주위에서 몇 년을 바라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거의 보지 못한다. 도대체 장기투자를 하려면 뭐가 필요한 것일까.
일단 지식이나 정보는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르는 정보를 가지고 있고, 주식에 대해 더 많이 안다고 장기투자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미국 금리가 4년 정도 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떨어질 거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나. 미국 금리가 올해 내릴지 안 내릴지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말이 많다. 하지만 4년 안에는 떨어질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아무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이건 지식이 아니라 상식이다. 어떤 연구원이 '미국 금리는 4년 안에 떨어질 것'이라는 보고서를 쓰면 이런 당연한 내용을 보고서로 냈느냐며 쫓겨날지도 모른다.
앞에서 말한 TMF를 살 수 없다던 친구, TMF를 팔아버린 친구도 4년 안에 미국 금리가 떨어질 것이라는 점에 의문을 품은 것은 아니다. 그런 정보는 충분히 알고 있다. 하지만 TMF를 사서 보유할 수는 없었다. 지식이나 정보는 중요하지 않다.
문제는 계좌에 마이너스 수익률이 찍혀 있는 것을 보기가 힘들다는 점이다. -5%, -10% 수익률은 참을 수 있다. 하지만 -20%, -30%가 되면 참기 힘들다. -50% 수익률이 찍히면 패닉이 온다. 20~30%가량 떨어지면 그래도 앞으로는 오르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 떨어지면 "내가 잘못 판단했나"라는 생각보다 "틀렸나"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미국 금리가 몇 년이 지나도 떨어지지 않고 현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오히려 더 올라갈 수도 있다. 수익률 수치에 따라 경제나 기업을 판단하는 기준이 달라지고 미래 전망도 달라진다. 수익률 수치가 자기 생각을 지배하는 것이다.
마음을 굳게 다잡으면 이런 오류를 피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보지 않는다. 손실을 싫어하는 건 인간 본능이다. 마음을 다잡는다고 인간 본능이 달라지진 않는다. 마음을 굳게 다잡고 손실에 힘들어도 "그래도 참아야지"라고 수없이 결심한다 해도 마음은 지옥에서 살게 된다. 수익 좀 올리겠다고 마음을 지옥 속으로 밀어 넣는 건 앞뒤가 바뀐 것이다.
장기투자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마이너스 몇십% 수익률을 버텨낼 수 있는 건 굳은 마음가짐보다 분산투자 포트폴리오라고 본다. 전 재산을 집어넣었는데 거기서 30% 넘게 폭락하면 버티기 힘들다. 이건 보통 사람만 그런 게 아니라, 워런 버핏이라도 힘들다. 전체 투자자금 1억 원을 넣어 3000만 원을 잃으면 버티기 어렵다. 신용으로 빚을 내 1억 원을 투자했는데, 거기서 3000만 원 이상을 잃으면 패닉이 온다.
하지만 1억 원 가운데 1000만 원을 투자한 종목에서 30%를 잃는다면? 1억 원에서 300만 원을 잃은 것이고, 이때는 절망하지 않는다. 속상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투자 판단과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
장투를 위해선 분산투자 필수
투자 관련 서적에서는 분산투자 포트폴리오가 큰 손실을 보지 않고 적정 수익률을 얻는 데 필요한 투자 방법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분산투자 포트폴리오는 큰 손실을 보지 않게 해준다는 점보다는 투자 과정에서 심리적 절망과 패닉을 피할 수 있게 해준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가 있다. 분산투자를 하지 않고 한두 종목에 올인하면 그 종목이 폭락했을 때 필연적으로 마음에 타격을 받는다. 이때 마음이 힘들어진다는 것보다, 이 경우 제대로 된 투자 판단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게 문제다. 분산투자를 해야 몇몇 종목이 폭락해도 심리적 타격이 최소화된다. 이럴 때만 장기투자를 계속 유지할 수 있다.
이렇게 분산투자를 하면 수익률이 낮아지지 않느냐고? 장기투자는 10%, 20% 수익을 바라고 하지 않는다. 최소 몇 배 수익을 바라고 한다. 장기투자를 하면서 몇십% 수익률을 바란다면 이는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분산투자라도 수익이 몇 배 난다면 전체 수익률은 높아진다.
장기투자에서 중요한 건 지식이나 정보도, 굳은 결심도 아니다. 몇십% 폭락해도 심리적으로 큰 타격이 없는 분산투자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것이다. 그게 장기투자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최성락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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